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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Feb 16. 2022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셋넷 여행 이야기 39 : 2017 다시 인도


마두라이 가는 밤기차(8월 8)

평화공연과 봉사활동을 마치고 삼삼오오 자유여행을 준비하면서 맥주 집을 찾았다. 시원한 생맥주가 나오고 소박한 건배라도 나누려 했지만 모두들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맥주 집 와이파이가 길을 열어 핸드폰이 작동하자 가벼운 눈 맞춤조차도 무너져 내렸다. 인도에 도착한 이후 숙소를 정하거나, 일정을 의논할 때면 선택의 중심에는 늘 와이파이 신이 강림했다. 신들린 모세에게 홀려 약속의 땅으로 향하듯 와이파이가 되는 곳으로 속절없이 끌려다녔다.     


몇 달간 공연과 활동을 준비하고 함께 떠난 여행의 원칙과 기준이 와이파이라는 것이 억울했다. 여행의 시작과 끝이 와이파이고 여행의 목적과 과정이 와이파이로 귀결되는 진풍경 앞에서 여행 내내 외로웠다. 저들과 나 사이 건널 수 없는 소통의 심연을 인정하련다. 와이파이로 꿈꾸고 음식을 먹고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풍경들은 익숙했던 관계를 수동적으로 만들곤 한다. 와이파이가 열어준 길은 실존적 체험을 외면하게 한다. 와이파이가 인도하는 길에서 도타운 사랑은 추방당하고, 온기를 빼앗긴 우정들은 길을 잃고 헤맨다. 


반짝이는 눈망울을 마주하며 설레는 만남이 좋다. 오해와 고집으로 관계가 엉망이 될지언정, 용서와 화해의 시간을 기다리는 삶의 불편함이 좋다. 상처받고 또 받으면서도 인간에 대한 그리움을 놓지 않는 피곤한 일상에 취하고 싶다. 정보화시대 원시인이 낯선 나라 밤기차에서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그럼에도 와이파이의 평등성과 무궁한 정보역량은 가히 매력적이니 이를 어찌할꼬.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청춘을 거세당한 이 시대 젊은이들의 삶은 우울하다. 자기 앞에 던져진 삶들이 대책 없이 빡세다고 주문을 걸면서도, 자기 생을 설레게 하는 소박한 설계조차 미룬 채 가상의 즐거움에 숨어든다.    

  

'우리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원했던 내일'(신의 장난, 김영하)인데, 나와 당신은 참 바보처럼 사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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