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넷 여행 이야기 40 : 2017 다시 인도
인도양 바닷가(8월 12일)
꼬깃꼬깃 흘러내리는 원색의 천들로 몸을 감싼 사람들 사이로 멧돼지 일가가 주눅 들지 않고 거리를 누빈다. 오토릭샤가 딸딸거리며 쫄랑거릴 지면, 흠씬 두들겨 맞은 3류 복서 얼굴처럼 생긴 버스가 사정없이 빵빵대며 으르렁거린다. 하지만 심술만 남은 못생긴 버스마저도 팔자 좋은 인도의 소들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염소인지 양인지 구분이 안 되는 요상한 것들이 이 집 저 집 기웃거리고, 헝클어진 야채들이 가득 실린 손수레가 삐걱대는 거리는 한가롭다. 이곳에 '채소만도 못한'(영화 아멜리에) 인간은 없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거리낌도 없다. 연원을 알 수 없는 실개천들이 만나 사이좋게 흘러가는 동네 빨래터에서 수다를 떨듯 한 줌 긴장도 느낄 수 없다. 애써 공존하려 들지 않는다. 자연스레 놓아두니 자기답게 흐른다. 스스로 편안하니 사람과 동물과 사물의 구별이 희미해져 웃음이 절로 번진다. 유연한 공존이 아닌가.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풍경, 시인과 촌장)
낯선 길에서 생존을 위한 소통이 필요할 때마다 넘치는 미소를 동반한다. 인도의 원주민들이 무지막지하게 느낄 우람한 손에 온기를 담아 저들 어깨에 얹고 허전하고 가난한 영어를 떠듬떠듬 던진다. 저들은 봄바람에 여린 잎 흔들리듯 고개를 좌우로 살랑이며 나를 안심시킨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난 두툼하고 거추장스러운 여행 책을 매번 들추고 밑줄을 긋는다. 현지인들에게 몇 차례 거듭 확인한다.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다 애타게 찾던 뜻밖의 장소를 선물 받는다. 구글이 하사한 길과 새벽장터처럼 신선한 인터넷 정보는 내 생존법이 구질구질하고 답답하다 비웃겠지만, 나는 길 위에서 비로소 나다워진다. 홀로 낯선 길을 열어가는 내가 참 좋다. 망채가 인도에서 살아남는 법이다.
* 망채 : 셋넷 아이들이 선사한 별명이다. 망둥어의 함경도 사투리라는데, 경상도에서 격의 없는 친구 사이에 오가는 문둥이(문디)의 쓰임새와 비슷한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