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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Oct 03. 2019

셋넷 커리어스쿨, 착한 마을 희망깃발 찾기

길 위의 학교... 셋넷학교 이야기 (16)


꿈의 나라 도시빈민

통일부 통계(2019.6)에 의하면, 탈북주민 71%가 서울, 경기, 인천, 부산 등 대도시에 거주한다. 특히 서울, 경기, 인천 수도권에 거주하는 탈북자 인구는 65%에 달한다. 통계상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거주지는 지역에 배치되었음에도 교육 및 취업문제로 서울에 올라와 친구나 친척집에 머물러 있는 탈북자 숫자도 상당하다. 이들 대부분은 도시빈민층을 이룬다. 셋넷학교를 서울에서 운영할 때, 재학생 전원이 지역 기초생활수급자였으며 서울이 아닌 수원, 인천, 김포 등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이 40%를 넘었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과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서울과 대도시 중심 탈북자 지원정책을 벗어나려는 실질적인 정책이 수립되어야겠지만, 탈북 청소년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여러 직업들을 체험하도록 하고 서울과는 다른 지역의 문화환경을 이해하고 훈련하는 교육과정이 병행되어야 한다.  

 

셋넷은 무작정 서울에 집착하고 이유도 모른 채 대학에 올인하는 문제의 심각성에 주목했고, 고민을 지속적으로 구체화하면서 매년 봄과 가을에 걸쳐 2단계로 지역 소도시들을 찾아 나섰다. 평면적이고 추상적인 이론교육이 아니라 탈북 청소년들이 TV 방송이나 드라마를 통해 막연하게 꿈꿨던 직업들을 현장에서 체험하게 하고, 미래 직업선택과 수행에 필요한 문제 해결 역량을 스스로 채우도록 도왔다. 



혁이가 그리워하는 자격증

한국사회도 탈북자를 잘 모르지만, 탈북자들도 탈북자를 잘 몰라요. 특히 새터민들에게 ‘너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모릅니다. 그럴 기회가 없었어요. 생존이었죠, 생존!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면 저 같은 경우 대대로 농사를 짓는 집안이었고, 바다에 나가서 고기도 잡았고 그리고 돼지나 개 같은 것을 잡는 백정이었고, 사는 게 안 좋을 때는 절도를 하고 사기를 치고.. 그건 생존이었는데, 남한 사람들은 잘 몰라요.     

북한 교육은 집단 체제죠. 집단 체제 교육의 첫 번째 특징은 명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입니다. 위에서 한마디 하면 오케이. 이런 특수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남한에서는 무조건 알아서 해라 하는데 뭘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죠.    


탈북과정에서 처음 만난 대부분 한국사람들이 선교사들이었어요. 그래서 ‘아, 우리도 한국에 가면 목사를 하자.’ 제 주변에 있던 10명 아이들이 모두 다 목사를 한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작 한국에 와서 보니까, 먼저 온 친구들은 중국집에서 배달하고 있었어요. 하나둘 학교에 있을 때, 우리를 가르친 분들이 모두 다 교수였고 자원봉사하시는 분들도 다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야, 우리도 다 대학가자’ 했던 겁니다. 당시 나를 포함한 탈북자들은 나이가 어리고 많고를 떠나서 사진기나 복사기 같았어요. 당시에는 우리가 보고 접하는 것들을 그저 생각하고 꿈꾸고 살았으니까요. 차라리 그때 교수님들도 좋지만, 일반 직장인이나 전문 직종 사람들이 와서 자기 삶에 대해 한 마디씩만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라이선스라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 대학교에 가고 난 뒤였죠. ‘그것이 중요하구나.’ 뒤늦게 안 겁니다. 처음 남한에 왔을 당시 원하는 직업을 가지려면 이런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얘기를 해주었으면 몇 년간 겪었던 시행착오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혁.. 셋넷학교를 마치고 성대 정외과를 졸업한 뒤, 어렵사리 대학원까지 수료했다. 막상 할 일이 없어 방황하다 최근 지방에 일자리를 잡고 마음을 놓았는데 어느덧 나이 서른 중반을 훌쩍 넘어버렸다.    


일그러지고 병들어가는 소박한 욕망들

아이들 욕망은 참 단순했다. 정상적 가정을 꾸리고 살았으면 원이 없겠다고 했다. 북한에 있는 엄마 아빠 모시고 동생들과 같이 살고 싶은 그것 이상 없었다. 그런 소박한 생각들이 변형되고 왜곡되는 계기가 대학생활인 것 같다. 셋넷학교에서 2~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학을 갔다. (탈북 청소년은 무시험으로 정원 외 특례입학을 하며, 대학 4년간 등록금도 전액 지원받는다. 다만, 성적이 평균 70점 이상 C학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셋넷학교는 명문학교다. 선택한 대학들이 남한 청소년들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성균관대, 서강대, 외국어대, 중앙대 등등이었으니까. 문제는 대학에 진학한 뒤, 졸업한 학생들이 열 명도 안 된다는 거다. (셋넷만 그럴까?) 소박한 가정을 꾸리는 평범한 욕망을 꿈꾸다가 대학에 특혜로 들어가고 난 뒤, 남한 또래 애들을 보면서 새롭게 자신들을 비교하게 된다.  

   

대학에 진학한 졸업생들을 만나면 새내기 대학생활이 어떠냐고 매번 물어본다. 대체로 남한 대학생들의 무절제한 생활과 부모에 의존하는 무책임한 모습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비판적이다. 그런데, 몇 개월 지나면 그 애들처럼 되지 못해 안달한다. 방학 때 얼굴도 뜯어고치고 알바(아르바이트)해서 명품 백이나 가방 사들고 학교 놀러 와서 은근히 자랑한다. 그런데 정작 대학 수학능력은 비교할 수 없이 떨어진다. 실력이 모자라 못 따라가면서 한다는 말이, ‘남한 아이들이 차별하고 무시하기 때문에 공부를 못하겠다.’며 스스로를 속인다.     

차별이 있기 이전에 기본적 절대 학습능력이 모자라 탈락하는데, 차마 자존심상 못 따라가겠다는 말은 못 하고 다른 핑계와 이유를 둘러댄다. 결국 이런 식으로 아이들이 분열되면서 소박하고 순수하던 욕구가 병들기 시작하고, 자신을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미래로 이끈다. 자본주의가 선사한 정교한 사교육과 무한한 부모 지원을 받으며 대학에 진입한 남한 또래 대학생들과 비빌 언덕 하나 없는 자신을 비교하면서, 탈북 아이들의 욕망 자체가 일그러지고 병드는 게 아닌가 싶다.     



백문(百聞)이 불여일체험(不如一體驗)

셋넷에서 경험했던 커리어 스쿨이 좋은 이유가, 뭘 하든 간에 일단 자기가 해보고 싶은 걸 시킨단 말이에요. 근데 마냥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걸 했을 때 뭔가 맞아떨어지는 게 딱 있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약간 예술 쪽으로 생각해서 공방엘 갔거든요. 거기서 도자기를 만들었어요. 힘들었지만 재밌었어요. 제가 거기서 목걸이를 오백 개 만들었는데 세계 도자 비엔날레에서 사은품으로 주는 거였어요. 제가 만든 거를.

망채샘이 이 교육을 한 이유가, 애들이 무턱대고 막 명문대 갔잖아요. 말 그대로 정말 수능 점수 잘 나온 애들이 갈 만한 대학을, 그것도 농담 따먹기 같은 면접으로 가잖아요. 그래서 망채가 “니네 뭘 모르고 만날 명문대, 명문대 하는데 일단은 이런 여러 가지를 경험해 봐라.” 해서 만든 게 커리어 스쿨이었어요. 꼭 대학 아니더라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서. 아무튼 재밌었어요. 저는 확실히 뭐가 싫고 좋은지를 구별하게 됐으니까.

란.. 1988년 용띠,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 서울예술대학 진학해서 극작을 전공했지만 중도에 탈락했다.   

  

진로탐색과 직업능력개발을 위한 커리어스쿨

셋넷은 2008년부터 한국 청년정책연구원 라일엽 부장과 함께, 탈북 청소년을 위한 실질적인 직업준비교육시스템(진로탐색과 직업능력개발을 위한 커리어스쿨)을 선구적으로 구축하고, 진로교육 매뉴얼과 워크북 연구개발을 실시했다. 아울러 오작교 프로젝트(2009-2010), 착한 마을 희망깃발-소도시에서 새싹 틔우기(2011-2013),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탈북 청소년 지역정착 직업교육 대화모임(2013)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면서 현장중심 진로탐색과 청소년 직업교육의 대안을 마련해왔다. 

2011년 11월, 마침내 학교를 강원도 원주로 옮겨 본격적인 생활중심 지역 살기 정착을 실험했다. 서울을 근거로 삼고 대학 의존적인 탈북 청소년의 의식개선이 여전히 미미한 상태지만, 서울과 지역 소도시를 연계하면서 상호보완적인 적응과 정착을 지원하는 교육과 활동의 기본 토대를 구축했다.    


탈북 청소년의 남한 정착을 위해 셋넷이 추구해온 진로직업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탈북과정에서 겪은 다문화적 경험, 고난을 극복한 놀라운 능력과 역동적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도록 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의 진로를 진취적으로 탐색하게 돕는 것이다. 탈북과정에서 파생된 기억들은 남한화 되기 위해 즉각적으로 폐기 처분해야 할 것들이 아니라, ‘한반도 다문화 평화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차별화된 경험이며 특화된 능력’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셋넷 예비 직업교육은 이론과 도구적인 차원에서 탈피한다. 자신이 선택할 직업군을 현장에서 직접 찾아보고 스스로의 선택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정보화 탐색과 분석능력을 쌓도록 돕는다. 또한 지역정착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지역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문화예술활동을 매개로 지역민과 관계 맺기 현장체험활동을 실시한다. 


2013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탈북 청소년 지역정착 직업교육 대화모임

비록 15명이라는 많지 않은 탈북 청소년들이지만, 지난 2008년부터 수행해온 셋넷학교 직업교육 모형은 진로개발 역량과 진로 탄력성(진로 장벽을 만났을 때 탄력적으로 대응하여 장벽을 뛰어넘거나 극복하려 하는 대응역량) 강화라는 진로교육 기본철학에 부합합니다. 특히 기초역량강화와 마음 설거지라는 치유 과정은 적확하게 청소년들의 진로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구현하고 있어요. 

탈북 청소년 직업교육이 종국적으로 지향하는 목표가 이 아이들이 이 땅에서 뿌리내리고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삶터와 일터, 그리고 학습터를 하나로 아우르는 모형을 갖고 있는 셋넷학교는 이 목표를 잘 실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음 설거지 과정은 탈북 청소년들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좋은 자산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활동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셋넷학교가 지향하는 직업교육 철학과 방향성은 여타 모든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미석.. 한국 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원

      


세아 엄마 아빠가 충주로 간 까닭

세아 엄마 아빠는 고향에서 못다 한 중고교 과정 학업을 셋넷에서 마쳤다. 너나 할 것 없이 서울로 가서 준비되지 않은 채 허겁지겁 대학에 진학할 때, 두 사람은 원주지역에 남아 일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국가자격증들을 취득하고 그에 합당한 직업을 선택했다. 2014년 가을 원주, 셋넷 후원자와 지역 분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 오순도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2017년 가을, 세아 아빠가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해 손가락 일부를 절단당하는 산재를 당했다. 그 사고 이후 도시빈민으로 생존을 연명해야 하는 삶과 직업의 한계를 고민하다 후원자와 멘토의 도움을 받아 충주 작은 마을에서 농부의 삶을 시작했지만, 그 삶이 고단하다.     

세아 엄마 아빠의 새로운 선택과 출발은 단지 두 사람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분단시대를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는 한반도의 불행한 젊은이들은, 그들 출신이 남한이건 북한이건 상관없이 이미 시작된 다문화 세계화 시대를 거부할 수 없다. 이전 시대들이 보여준 변혁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 시대 삶의 환경은 무엇보다 상호의존적이고 개방적이라는 점이다. 나의 행복과 너의 불행이 연결되어 있고, 내가 속한 집단의 평화가 우리와 이웃한 먼 나라들의 평화와 유기적으로 관계 맺고 있다. 내 삶의 진로가 내 가문이 걸어오고 닦아온 길에 수동적으로 갇혀있지 않고, 낯선 다문화 세계로 활짝 열려있다.     


분열된 한반도의 거세된 꿈은 이웃한 나라들과의 새로운 만남과 이해 속에서 비로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꾸는 꿈과 추구하는 복된 미래는 서로의 삶을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진로선택이, 결국 각자 삶을 위한 생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는 슬기로운 자각과 창조적인 상상력이 요구된다. 세아 엄마 아빠가 선택한 삶의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지금 배타적인 농촌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지만, 뿌리 깊은 나무로 우뚝 서서 평화의 동산을 꾸려내기를 바라는 맘 간절하다. 셋넷이 안정적인 서울을 떠나 연고 하나 없는 원주로 무작정 떠난 이유였고, 셋넷수호천사들이 셋넷 교육철학을 지지하고 셋넷아이들을 지켜준 보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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