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의 추억

by 박상영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면 진실함이 생기고, 진실함이 드러나면 분명해지고, 분명함이 사람을 움직이고, 움직임은 변화로 일어서고, 거듭된 변화가 마침내 사람을 변화시킨다.’(중용 23장) 과연 그러한가.


1960년대 내가 태어나고 자라던 시절은 뭐 하나 아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지금은 전통문화의 우아한 유산으로 재탄생했지만, 닳고 해지고 색이 바랜 가족의 삶을 잇고 덧대어 만든 지친 헝겊들의 그물망이 ‘조각보’다. 조각보는 늘 엄마의 밥상을 덮고 있었다. 닳고 해지고 빛바랜 가족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밥을 뜨던 아비와 자식들은 잊지 않았다. 우리 서로 연결되어 내일을 지키겠다는 가족의 맹세를 기억했다. 무기력하게 흩어졌던 희망의 조각들이 모여 모진 현실을 견뎠다. ‘조각보’의 기억과 맹세를 잊어버린 시대는 가엽다.


1990년대 NGO 간사시절, 6대 종교(유교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천도교) 예비 성직자들의 다름과 차이를 잇는 조각보 활동(평화고리)을 기획했다. 인간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존재 너머의 삶을 갈망하는 종교의 길은 산 정상을 오르는 여러 갈래 루트와 방법이라 믿었다. 타 종교에 대한 배제와 적대로 군림하면서 정작 절망하는 인간의 생생한 일상을 외면했던 한반도의 종교들은, 민족의 고단한 체온이 스민 역사의 지친 ‘조각보’다. 처음정신으로 돌아가야 했고, 전생과 사후 세계에 대한 배타적인 독점을 내려놓아야 했다. 갈등으로 뒤엉킨 사회를 향하여 종교가 회심悔心해야 했다. 살아있는 기쁨과 살아갈 의미를 찾기 위해 삶의 자리에서 협력하는 젊은 종교인들의 인간적인 만남을 시작했지만, 이웃종교들의 ‘조각보’ 활동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2000년대 셋넷학교 시절, 학교는 가난했지만 학생과 교사 50여 명의 식사를 거를 수 없었다. 식당에서 감당할 수 없었기에 직접 식자재를 구입했는데 조리문제를 해결해 준 분들이 <자유총연맹 영등포지구> 어머니들이었다. 독재정권에서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완고한 이념집단이 7년간 점심저녁 식사를 만들었다. 북조선 청소년들은 대립하는 분단 이념으로 이은 ‘조각보’ 식사로 굶주렸던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채웠고 다음 세상으로 나설 채비를 했다. 내 인생 가장 황홀했던 ‘조각보’ 경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조각보의 심정은 배신이 아니라 솔로몬의 지혜다. 조각보의 행위는 부역이 아니라 중용의 실천이다. 살면서 과하거나 부족함이 있을지언정, 비록 떳떳하지 못하게 살아왔을망정, 한쪽 치우침을 떨치고 엄마 자궁 같은 진영의 안온함에 혹하지 않을 조각보 삶의 선택은 진정한 용기다. 분노와 이간질로 흩어졌던 이념의 조각들 너머 다시 희망을 세우는 것이 시대의 조각보 정신이다. 허기진 생존을 당당한 존재의 삶으로 변화시켰던 ‘조각보’의 맹세와 기억을 배신과 부역으로 왜곡하고 더럽히는 내 나라 내 겨레가 절망스럽다.


양극화된 사람들로 변화는 힘을 잃고, 참과 거짓이 뒤엉켜 흐릿해지니, 마침내 진실함은 자취를 감추고 사소한 정성조차 비웃음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