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방식

by 박상영

몬태나

1800년대 말 북아메리카는 아름다운 세상을 지키려는 원주민 인디언의 생존싸움으로 처절하다. 자연의 일부로 자유롭게 살던 인디언은 유럽 백인들의 탐욕과 정예화한 기병대에 쫓겨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병들고 죽음을 맞는다. 살인과 파괴로 저항하던 인디언 부족 추장이 기병대 감옥에서 병들자 백인 추장 미국 대통령은 고향땅에서 죽음을 맞도록 정치적 회유를 선택한다. 잔인한 방식으로 인디언에게 복수하던 기병대 대위가 귀향을 돕는 임무를 억지로 떠맡는다. 추장의 고향 몬태나로 향하는 험난한 길 위에서 서로의 생존을 돕고 허무한 죽음들을 지켜보며 두 사람은 몸으로 화해하고 마음으로 용서를 나눈다.(영화 <몬태나>) 죽음에 이른 추장에게 대위가 말한다. “뒤 돌아보지 말고 좋은 곳으로 가라. 내 일부도 당신과 함께 죽는다.” 추장이 화답한다. “당신은 내 안에 있고 나는 당신 안에 있다.” 용서와 화해의 말이다. 사랑의 방식은 어쩔 수 없었던 미움들을 천천히 받아들인다. 시간과 상황이 만든 타인의 처지에 진심으로 공감한다.

충주

충주 산기슭에 졸업생 부부가 산다. 지난가을 그 집 헝클어진 창고를 고치고 다듬어 제법 아늑한 집으로 꾸몄다. 어쩌다 졸업생 가족들이 모여 세상의 상처들을 위로하고, 내팽겨진 꿈의 조각들을 다시 모아 서로의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셋넷의 가족들은 사람의 울타리가 없다. 10대 시절 단신으로 집과 가족과 고향을 떠나 머나먼 낯선 땅에 뿌리를 내렸다. 어느덧 30대 중반 직업인이 되고 가장이 되고 엄마아빠가 된 셋넷 졸업생들은 위로와 격려와 용기를 나눌 사람과 사랑이 필요하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이방인의 삶은 막연하고 막막하다. 저들의 오늘은 ‘밀물과 썰물 사이에, 참혹과 환희 사이에, 분노와 슬픔 사이에 있다’(나희덕 시인) 기다림도 없고 온기 사라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나는 충주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부부가 딸 세아 방에 마련한 따뜻한 잠자리는 오랜만의 위로다. 깊고 맑은 잠을 자고 일어나니 머리맡에 봄날 아지랑이 같은 글이 있다. ‘세아 깨울 땐 안아서 깨워줘’ 참 아름다운 말이다. 사랑의 방식은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이 아니다. 사랑하는 이의 요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인다. 내가 지켜온 굳건한 신념의 방식은 사랑이 아니다. 소중한 이의 요청에 정중하게 응답하는 마음의 움직임과 몸짓이 사랑의 방식이다.

문경

서울 원주를 떠나 7년째 떠돈다. 나의 우유부단과 알량한 배려 때문에 삶의 시간은 망가진 엘피판처럼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뭘 그리 잘못하며 살았는지 원망하고, 잘못한 일들이 빚은 저주가 일상의 조건을 무력하게 하는구나 자책도 하지만 삶의 자리는 잇몸 드러난 이처럼 시리다. 어찌 살아야 하나. 술잔을 기울이며 영화와 여행 이야기로 시간을 잊곤 했던 큰 아이는 전화도 받지 않고 카톡도 외면한다. 엄마아빠가 남긴 상처의 기억이 마음의 옹이가 되었을까. 부모와 가족을 힘겹게 하면서 꿈꾸던 아름다운 세상은, 고작 한 살 아래 동생의 먼 생각과 다른 태도조차 품지 못하는 촌로村老의 정의로움으로는 ‘갈 수 없는 나라’(해바라기 노래)다.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사랑할 수’(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없는 걸까. 어떻게 사랑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