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시절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험난했던 길은 이제 국경과 인종을 넘어서서 중심에서 변방으로, 도시에서 지역으로 향하는 길이 된다. 21세기 지구촌 곳곳 여리고 가는 길에서 묻는다.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어제의 이웃.. 이사떡
어릴 적 낯선 곳으로 이사하면 이삿짐 풀기도 전에 이사떡을 뽑아 돌렸다. 새로 맺은 이웃에 대한 정중한 인사이고 지역 공동체의 다정한 이웃이 될 것을 다짐하는 오랜 집단의식이었다. 네팔 인사 나마스떼는 ‘내 안의 신성함이 당신 안의 신성함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뜻이다. 이사떡은 새로운 이웃과 만나며 나누는 아름다운 나마스떼다. 가정을 꾸리던 30대 청년시절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아파트에서도 이웃소통 나마스떼는 멈출 줄 몰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굳게 닫힌 철문을 두드려 떡을 건네면 떡을 담았던 접시에는 으레 소박한 선물이 담겨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웃을 만들고 이웃으로 제법 단단한 사람의 울타리를 쳤다. 그 울타리에 낯선 이방인은 감히 들어설 수 없었다.
오늘의 이웃.. 골목 바리케이드
바리케이드는 프랑스혁명에서 유래한다. 탐욕의 끝판이던 왕과 귀족들의 무소불위 특권이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했다. 견디지 못한 레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이 어지러운 파리의 골목에서 생활의 잔해들로 대항 장벽을 급조했던 것이 바리케이드의 시작이다. 바리케이드는 소수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직되지 않았던 민초들의 정의로운 싸움을 상징한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쫓기던 사람들이 골목으로 몰렸을 때 골목을 둘러싼 건물 창문에서 집안 가구들이 성난 우박처럼 쏟아졌다. 부서지고 보잘것없던 연약한 생활의 도구들이 십시일반 모이고 쌓여 저항의 힘이 된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새로운 시대의 이웃을 본 것이다. 바리케이드 이웃은 소수의 독선적인 지도력으로 오염되지 않는다. 고작 작은 이해관계에 얽혀 셈하고 어울리는 인증된 사람들만이 이웃이 아니다. 길들여진 일상을 의심하고 관습과 집단 시선에서 자유로운 자기다움으로 세상을 살도록 돕는 뜻밖의 사람들이 이웃이다. 떡 한 덩이 건네지 않았고 어색한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지만, 막힌 경쟁의 담을 허물고 기울어진 공정公正 운동장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셋넷 이방인들이 새 이웃이다. 셋넷 학교를 길 위에 세우고 만났던 다양한 국적과 문화 배경의 사람들이 내가 찾던 참된 이웃이었다.
내일의 이웃.. 학생인권조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인권이다. 학생이라는 성장 단계는 스스로의 권리를 인식하고 집단으로 지켜내기 위한 사회적 조건이 허술하고 미약하다. 유교문화는 학생신분을 보호와 지도가 필요한 존재로 경시하는 인식이 뿌리 깊다. 비단 청소년에게만 국한할까. 뿌리를 드러낸 허약한 나무처럼 기본 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허물어지는 힘없는 소수자와 주변인이 너무 많다. 상처받는 레미제라블에게는 상처 입은 사람을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돌보던 사마리아 이웃이 절실하다. 큰 아이 어릴 적 이웃 영구임대아파트 사는 친구를 멀리하게 하려던 아내에게 절망했다. 제3세계 음악 레게의 전설 밥 말리는 자신의 음악을 ‘민중의 연대’(영화 <원 러브>)라 했다. 이웃은 나를 우아하게 하고 내 존재를 풍요롭게 하는 이로운 존재만은 아니다. 홀로 살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기대어 사랑해야 하지 않는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조건 없이 생명을 나누는 우정의 파트너가 나와 당신의 이웃이다. 당신이 낯선 사마리아사람이고 나는 당신이 찾아 헤매던 이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