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에서 제작한 <남도지오그라피>는 오랜 세월 힘겹게 살아온 시골 노인들을 찾아가 고단하고 멍든 기억에 귀 기울인다. 할머니의 살아있는 남편이나 저 세상으로 떠난 남편들은 대책 없는 술꾼들이다. 일과 가족보다 술과 방탕으로 아내의 앳된 청춘을 함부로 더럽혔다. 10대 시절 어리둥절 시집와서 찢어지게 가난한 시댁과 못된 시부모와 염치없는 남편을 짊어지고 무심코 낳은 여러 자식들을 지켜내며,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놓지 않았다. 덧없이 세월은 흐르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그럼에도 자신을 폐허로 만든 남편과 시부모를 잊지 못한다. 원망과 저주로도 모자랄 사람들에 대한 애틋한 기억의 정체는 무엇인가. 저들 기억 속 그리움과 용서를 어찌 헤아려야 하나.
엄마는 그 시절 결혼하기 전 여자로는 드물게 전문직 직업인이었다. 육사생도였던 남편을 만났을 때 당신이 간과한 삶의 무게가 있었다.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38선이 막히고 전쟁이 터지자 함경도에서 내려온 남편의 가족은 보급선이 끊어진 군대처럼 지리멸렬했다. 남편은 5남 2녀의 둘째였지만 아프고 무기력했던 형을 대신해서 맏이 역할을 해야 했다. 남편의 밑 빠진 짐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다. 결혼식 비용과 결혼반지를 마련하고 결혼식 부조돈마저 시동생 대학 등록금으로 내주었다. 신혼의 엄마에게 간절했던 그 돈으로 일류대를 나와 사장까지 지낸 시동생은 술 취한 심정으로도 형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를 용서할 수 없다.
달콤해야 할 신혼생활은 분단 최전선 첩첩산중 오지에서 시작되었고, 육군 중위의 봉급은 턱없이 가벼웠다. 월급날이면 남편의 엄마는 멀고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빚쟁이처럼 들이닥쳤다. 따박따박 거르지 않고 봉급의 절반을 가져가면서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시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늘 낡은 성경책을 지니고 온화했던 친할머니가 의지하던 신의 정체가 궁금했다. 엄마의 시댁은 불광동 골목 주택가였다. 반지하처럼 푹 꺼진 아득한 부엌에서 온갖 모진 일을 하면서도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다. 엄마를 못되게 대했던 손아래 시누이들의 거칠었던 말과 근본 모를 행동들이 선명하다. 그녀들을 용서할 수 없다.
궁핍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은 엄마의 퇴직금과 친정에서 가져온 은밀한 돈으로 가능했다. 시아주버니의 연이은 사업의 실패가 엄마의 삶을 집요하게 늪으로 빠뜨렸지만 주늑들지 않았다. 머나먼 전쟁터에서 전사와 행방불명 소식을 전해왔을 때도 철없던 어린 아들 둘을 붙잡고 흔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남편은 살아 돌아왔고 빛나는 훈장들로 온몸의 상처를 가렸지만, 훈장은 돈이 되지 않았고 집안 살림에도 보탬이 되지 않았다. 살아계셨다면 91세가 되는 울 엄니 임경숙여사는 여전사였다.
기억은 저장된 사실이 아니란다. 뇌는 오래도록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삶의 과정에서 생기는 맥락의 영향으로 기억의 디테일이 조작되거나 왜곡되거나 편집 변형된다는 것이다.(뇌인지과학자 이인아) 험한 놈의 세상에서 징하게 살아남은 남도지오그라피의 늙고 병든 엄마들과 내 엄마는 어떤 삶의 맥락脈絡 때문에 한 맺힌 기억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냥 놔두면 썩지만 한 입 깨어물면 내 몸의 일부가 된다’(영화 페노메논)는 에덴동산 사과가,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엄마를 흔들리지 않게 지켜주었던 운명의 맥락이었을까. 올 명절에는 유난히 여전사 임여사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