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영 Oct 31. 2019

신뢰 없는 나라, 그곳은 갈 수 없는 나라

길 위의 학교, 셋넷학교 이야기 (18)


2016년 봄 메일을 받았다. 통일을 준비하는 몇몇 뜻있는 사람들의 글쓰기 결과물에 대한 내용이었다.   

 

짐작하시겠지만, 정부의 남북 기조 변화에 따라 이 소책자도 부침이 있었습니다.

정부기관으로부터 많은 내용의 지적을 받고, 잠 못 이루는 날들이었습니다.

1. 남한 사회에 대한 모든 부정적인 표현 수정 및 삭제

2. 통일에 대한 언급은 미묘하므로 삭제

3. 남한사회는 우리나라 혹은 우리 사회, 북한은 북한으로 호칭하며, 일체의 은유적 표현 삭제

4. 정부기관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북한에서 한자 안 쓰는 거, 특례입학 혜택, 비보호의 존재 등)에 대한 실증적 증거 제시

5. 탈북 청소년 교육센터의 검토를 받은 내용 수록

6. 다양한 문화적 표현을 풀어쓰거나 삭제(경험 지혜, 문화 수용성, 삶의 기획 등)

7. 근본주의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표현 삭제

아마 지적된 것이 족히 200건이 넘었습니다. 결국 일정한 선에서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그들 입장도 있으니 삭제할 것은 삭제하고, 반드시 넣어야 되는 내용은 다소 완화를 해서 보완하는 선에서 최종본을 만들었습니다. 글을 직접 쓰신 샘들께는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특히, 박상영 샘의 글은 수정 내용이 많이 있었습니다. 최대한 지킨 것이오니, 보시고 섭섭해하시지 않기를... ^^;;    


통금이 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아득한 메일에 맥이 탁 풀렸다.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글쓰기를 감시하고 통제했던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과 가문의 영광을 위해 현재 권력자들에게 충실하게 복무하며, 통일 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금과옥조로 섬기며 충실하게 이행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신뢰는 사회적 관계성을 전제로 하고, 신뢰의 궁극적 목표는 협조다(위키백과)’. 그럼에도 아직 이 땅에서 신뢰란 사회적 검열을 전제로 하고, 낡고 사악한 권력의 가면을 쓴 신뢰의 궁극적 목표는 조작이라는 사실을 낱낱이 드러낸다.    

   

‘준’에게 엿이 되어버린 꿈의 나라

어처구니없던 메일을 받던 즈음, 고향에 남겨진 엄마를 만나기 위해 10년 넘게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졸업생 준이가 느닷없이 카톡을 보내왔다.    

  

선생님,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면서 단 한 번도 후회한 적도 없고, 내가 탈북자라서 차별이나 무시당한다고 느낀 적이 크게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제가 한국에 온 걸 후회합니다. 지난 12월인가 1월쯤에 담당 형사가 전화로 행적을 캐물었는데 오늘 또 보안계장이라면서 전화를 해서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행적을 캐묻네요. 그동안 나름 열심히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고, 최근에도 어떻게든 취직하고 여기서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데... 남한에 온 지 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감시당하고 주시당한다고 생각이 드니 너무 괴롭습니다. 그동안 제가 잘못 산 걸까요? 아니면 나란 존재가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잘못인가요? 그동안 외국으로 탈남(脫南)한 고향 친구들 보면서 얼마나 못났으면 도피할까 하고 한껏 비웃고 저렇게는 안 될 거라고 자부했던 게 너무 후회스럽고 외국 나간 애들이 부럽고 제가 초라해집니다. 정말 애들이 맞고 제가 틀린 것 같단 생각이 드니 지난 시간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기회가 있을 때 나갔어야 했는데, 지난 시간이 후회스럽고 억울하고 눈물이 납니다. 탈북자란 신분이 멍에가 되어 전과자 감시받듯이 평생 살아야 한다면 지금이라도 걍 이런 엿 같은 나라 뜨는 게 맞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진짜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하고 분하고 기분이 정말 더럽습니다. 샘,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너무 혼란스럽고 기분이 안 좋습니다.    


십 년 넘게 성실하게 감시하는 보안계장 전화를 받고는,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하고 분하고 기분이 정말 더러워져서, 자신이 뭘 잘못한 것인지조차 알지 못했던 준이는 2004년 여름 남한에 왔다. 그해 가을 셋넷학교에 들어와 검정고시로 남한 학력을 취득한 뒤 2007년 3월 성균관대학교 중문과에 입학했다. 우여곡절 끝에 8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원어민 수준의 중국어와 기본적인 영어회화가 가능한 그가 기댈 만한 직장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그가 셋넷에 머물 적에 습관적으로 들려주던 말이 있다. ‘우리 성공하는 삶에 매달리지 말고, 행복해지는 삶을 살자.’ 그 말이 부끄럽게 들이닥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2019년 가을, 준이는 아기 옷을 만드는 중견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2010 한국전쟁 60주년 의미를 돌아보는 특별전시와 공연을 위해 망채들이 만들었던 작품 (인사동 토포하우스)


응답하라, 불온한 시대여! ... 영화 <변호인> 이야기        

이 시대가 얼마나 불우한가? 이제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확인해야 한다. 이 시대가 어찌 이리도 불온한가? 민주주의의 신성한 주권이 누구로부터 비롯되는가를 새삼 되물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시대의 불빛은 온기를 잃고 햇살 아래 눈발처럼 방황하는데, 아무도 이 불온한 시대의 불우함을 기억하려들지 않는다.


영화 속 변호인의 삶은 지극히 속물이어서 평범했고,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욕심 때문에 다정했다. 그가 영화 속에서 늘상 찾던 허름한 국밥집이 주인공 변호인이 상식 속에서 머물고자 했던 일상의 골목이었다. 허나, 그 골목이 막다른 골목이 되고 마침내 운명의 비수가 되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이야...영화가 암시하는 시대는 1970대 말 부산, 감각을 상실한 광기와 도무지 자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폭력이 부끄럼 없이 이 나라 주인들을 우롱하고, 신성한 주권을 시궁창에 매일같이 던져버리던 야만의 시절이었다. 

가난하던 고시생 시절을 지켜주던 국밥집주인 아들이 어느 날 이유도 모른 채, 최소한의 민주적인 절차도 무시된 채 실종이 되었다. 그 아들은 주인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개들에게 물리고 뜯기며 허위자백을 강요당했고 아무런 희망조차 놓아버려야 했다. 이 아들의 어처구니없는 무죄를 지켜주기 위해 세속에서 평범했고 가정에 따뜻했던 속물 변호인이 변화되어야만 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안락한 변호사 사무실에 앉아 배달된 다방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가족과의 사소한 약속조차 지킬 수 없다. 불온한 시대의 무법천지 길거리에서, 불우한 나라의 여린 주인들과 함께 기약도 할 수 없는 물음들을 차가운 벽에 던져야 한다. 도무지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도 않고, 쪼개지지 않을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바위에 매번 계란을 던져야만 한다. 허름하고 미약하기만 한 계란들이 아우성치고 몸부림치며 거대한 벽에서 처참하게 깨어지는 순간, 그건 불법이고 불온하며 나라의 안녕을 위협하는 파렴치한 폭력이 된다. 

그럼에도 주인공 변호인은 매 순간 불온한 시대에 온몸으로 응답한다. 벽이 아무리 무시무시하고, 바위가 제아무리 견고하다 해도 죽은 것이고, 닭알은 여리고 허무해도 살아 있다고 두 눈을 부릅뜨고 항변한다. 죽은 것들은 살아있는 것들을 이기지 못하고, 살아있는 것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죽음을 넘어서고야 만다고 절규한다. 어떤 나라가 살아있으려면 그 나라의 주인이 살아있어야 하고, 그 시대가 살아있으려면 시대의 주권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불우한 시대를 향해 온몸으로 변호한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고 했던가. 평화가 곧 길이다. 평화로 가는 전략을 세우고, 평화를 위한 담론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의 삶과 일상이 평화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의 쓸씀함이 우리 앞에 있다. 평화를 돈으로 사고, 평화를 협상으로 타협하는 시대의 불온함을 넘어서서 살아있는 닭알들의 외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셋넷이 지난 시절 뚜벅뚜벅 사뿐사뿐 헤쳐 온 길이다. 이 시대의 평화와 통일은 일란성쌍생아이기에 통일을 가로막는 벽과 바위 앞에서 우린 기꺼이 고단한 닭알들이 되어야 했다. 그 닭알들은 지금 따뜻하다. 


하나의 시대를 변호하는 변호사는 태어나지 않는다. 그저 만들어질 뿐이다. 영화 <변호인>이 우리에게 던지는 이 시대의 메시지다. 우린, 그저 태어나지 않고 시대에 응답하며 스스로 길 위에서 만들어졌던 수많은 닭알들에 대한 기억을 품고 있다. 그래서 아직 이 불온하고 불우한 시대에 희망은 있다. 응답하라!         


모멸감, 서울의 달은 따뜻하지 않았다

탈북 청소년들과 함께 살아오며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얘들은 왜 이렇게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울까?’ ‘자신이 명백하게 잘못을 하거나, 뭘 잘 모르는데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아는 척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왜 자신의 처지와 능력을 제대로 보지 않고 허황되고 무모한 꿈을 꾸는 걸까?’  

  

아이들 대부분 10세 전부터 그 나이답게 살지 못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매를 맞거나, 엄마로부터 이유도 모른 상태에서 버림받고 어린 가장이 되어 가난한 집을 지키고 꾸려가야만 했다. 이래저래 사람으로서의 기본적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존재감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성장기 중요한 나날들을 살아온 것이다. 이들의 불행한 삶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0대 중반 이런저런 이유로 홀로 고향을 무작정 떠나야 했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떠나간 엄마를 찾아 목숨을 걸고 국경의 강을 건너야만 했다. 짧게는 몇 개월부터 길게는 7~8년을 넘기며 이들이 낯선 중국 땅에서 단지 살아남기 위해 겪어야 했던 삶은, 삶이 갖춰야 할 기본 조건조차 없었다. 분명 살아있고 존재하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으로 살아야 했고, 존재할 수 없는 ‘비밀’로 기묘하게 살아남아야만 했던 시절들이 기약도 없이 지속되었다. 타인과의 관계성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형성해가는 10대 전후 시기에, 온갖 부정적 시선과 굴욕적인 소통으로 자신의 내면을 누더기처럼 기워내면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값싼 희망조차 없이, 무가치하고 없는 존재로 업신여김을 당하며 욕되게 살아온 그들 삶이 모멸의 삶이었고, 그들이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거치며 갇혀있었던 어두운 골짜기가 모멸감의 긴 터널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그 터널을 거치면서 단지 살아남기 위해 애써 스스로를 무장했던 무기력한 자존심이 마음의 칼날이 되어 폭력적으로 무분별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내면이 구겨지고 헝클어 질대로 갈라진 채 남한에 온 탈북자들은 남한 사람들이 은연중에 베푸는 적대적 경멸과 멸시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또다시 모멸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모멸로부터 생겨난 수치심으로 자기 존재의 마지막 방어막을 치게 된다. 문제는, '상당수 남한 사람들이 이방인들을 향해 드러내는 모멸이란 것이,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압축적으로 이룬 기적의 나라가 치러야 하는 사회적 부작용과 무한경쟁 때문에 생겨난 결핍과 공허라는데 있다.'(모멸감, 김찬호) 이러한 사회구조적 결핍이 남북한의 오랜 갈등과 반목을 해소시키지 못한 채 결정적인 장벽이 되고 있다. 


2016년 7월, 2차 독일 초청공연 '철망 앞에서 하나를 위한 이중주' 중 절망하는 장면 (베를린 자유대학)


'통일은 대박'이라며 좋아하던 장사치들에게

잘 지냈나? 오랜만일세. 문득 오래전 보았던 영화가 떠올랐네. 십자군과 이슬람군의 전쟁을 담은 영화였지. 전쟁의 승기를 잡은 십자군 장군들이 그들 막사로 이슬람군 대장을 불러 항복할 것을 종용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네. 십자군 대장격인 장군이 그들의 힘을 자랑하기 위해 굵은 쇠파이프를 테이블 사이에 걸어 놓고 길고 무시무시한 칼로 힘껏 내리쳤고 쇠파이프는 간단하게 절단이 나더군. 십자군 장군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고, 이 광경을 보고 미소를 짓던 이슬람 장군이 말없이 일어났어. 그리고는 목에 두르고 있던 실크 스카프를 공중으로 던져 올리고는 민첩하게 칼을 빼어 들었지. 그리 길지도 않고 두껍지도 않은 반달 모양처럼 생긴 칼을 스카프가 떨어지는 허공에 가만히 대고 있으니까 스카프가 그 칼 위에서 소리 없이 갈라져 두 조각이 나버리더군. 두 문화의 단면을 잘 드러낸 멋진 장면이었어.     


공중에서 제 멋대로 떨어지는 스카프를 향해 가만히 칼을 내미는 장면을 떠올리며 진정한 평화와 통일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 그저 계몽하려 들고 무언가로 만들기 위해 정의롭고 도덕적인 칼로 내리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나름대로 품고 있는 향기와 색깔들을 자기 방식대로 삶 속에 풀어내도록 격려하고 돕는 것 말일세. 독일의 대안학교 발도르프학교를 세운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는‘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고 했다네. 우리가 꿈꾸는 한반도 평화의 품격은 진정성으로 통일 과정을 엮어가는 한반도 사람들 수준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 그래서 통일시대를 상상하며 그날을 준비하는 이 시대 외로운 파수꾼들에게는 끊임없는 자기 수련과 자기 계발이 요구되지.    

 

이제 무시무시한 그 칼 좀 그만 내려놓게나. 자네 안에는 해답이 없어. 우리 함께 풀어야 할 과제지. 남한 사람과 북조선 사람과 갈라진 한반도를 잊지 못하는 해외 동포들과 상처와 슬픔 가득한 세상의 모든 난민들과 함께 길을 내어야 한다네. 그러니 부디 칼을 거두게나. 바람에게 길을 묻자고. 지금은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 아닌가.  

참 그거 아는가, 장사꾼과 장사치의 차이. 장사꾼은 그래도 미래를 내다보며 이익을 재지만, 장사치는 순간 이익에 급급해한다는군. 오로지 자신과 가족만 생각하는 장사치에게 평화니 통일이니 하는 민족의 중대 역사(役事)를 맡겨서야 쓰겠나. 제발 정신 좀 차리게.    



* 평화로 가는 길 없다평화가 곧 길이다.’간디가 했던 말을 무스테가 인용했다갈라진 한반도의 평화는일상을 살아가는 개개인의 평화들이 연결되고 모여진 조각보 평화의 풍경일 것이다일상의 주체이자 주인인 개인들의 평화는 더 이상 전문가나 권력자들이 만들고 조작할 문제가 아니다스스로 깨어 작고 소박한 평화의 존재와 평화의 상태가 되어가족과 이웃한 지역 공동체를 평화로 물들여야 한다보잘 것 없는 실개천들이 모여큰 강을 이루어 생명을 담아내듯이... 

작가의 이전글 셋넷은 무엇으로 사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