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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Nov 14. 2019

셋넷예술단, 우리는 지금 평화 연습 중입니다

길 위의 학교... 셋넷학교 이야기 (19)


철망 앞에서, 하나를 위한 이중주

2015년 3월 초, 독일 드레스덴 국가 총무부에서 독일 통일 25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셋넷학교 창작극 공연을 초청하는 메일을 보내왔다. ‘ 탈북난민들을 위한 셋넷학교 문화통합 교육활동’을 주제로 발표(2010 베를린자유대학 국제세미나, 박상영)한 내용을 인상 깊게 기억하는 독일인들과 베를린한인회의 노력으로 성사되었다. 현지 체재비만을 지원한다는 제한된 초청 형식 때문에 서울, 원주 단체와 개인들 도움을 받아 공연 제작비와 왕복항공료, 베를린 체제비를 가까스로 마련할 수 있었다. 셋넷학교 소속 20대 탈북 젊은이 6명과 원주지역 청소년 3명, 전문 공연 스텝 4명으로 팀을 꾸렸다.    


7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매주 수요일, 금요일 저녁에 모여 늦은 시간까지 연습했다. 독일 관객을 염두에 두고 한국 분단 배경, 탈북난민 발생과 탈북과정, 남한에서의 적응과 한계들을 셋넷 학생들이 겪었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우리가 염원하는 한반도 통일이 약육강식처럼 일방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과 통합을 위한 이중주라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다. 언어장벽을 넘어서기 위하여 총 70분간 전체 공연을 대사 없이 집단 마임과 인형극, 영상, 그림자극, 퍼포먼스, 뮤지컬 등 비언어극으로 꾸몄다. 이렇게 하여 <철망 앞에서, 하나를 위한 이중주 / 구성 연출 박상영>가 탄생했다,    

 

2007년부터 매년 이어져온 셋넷 문화예술 워크숍 아홉 번째 창작극이다. 독일 공식활동은 2015년 11월 22일부터 12 월 5일까지 구동독 시절 중요 도시였던 드레스덴과 수도 베를린에서 2주간 진행되었다. 총 4회 정식 공연 외에 현지 대학교와 고등학교들을 직접 방문하여 공동 워크숍을 진행하였고, 베를린 장벽과 브란덴부르크 앞에서 현장 퍼포먼스를 통해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한반도 평화 메시지를 전했다. 한반도 평화가 동아시아 문제를 넘어서서, 아시아와 유럽 전체의 평화질서를 구축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부각시키고 호소하는 활동을 펼쳤다.


2015년 11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간절함을 퍼포먼스로 공연했다.


봄희의 통일 연습 여행

독일 가기 전 국내 공연(원주, 서울)을 세 번 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아 실망이 컸다. 통일에 대하여 관심이 많아야 할 한국 사람들도 외면하는데 통일이 된 독일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연극에 주목해줄까 하는 의구심으로 걱정을 하며 독일에 갔다. 그런데 의외로 드레스덴과 베를린에서 매번 공연 때마다 독일 현지 사람들로 가득 찼고, 공연을 보면서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통일을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으로 독일 무대에 섰던 나는, 그 관심과 열기에 뜻밖의 감동을 받았다. 


공연을 마친 뒤, 즉석에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매번 가졌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성공적인 통일 뒤에 어두운 그늘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독일이 통일된 지 25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직접 들었다. 통일이 되면 마냥 좋을 줄만 알았는데 통일이 되고 난 후로 수많은 실업자가 생기고 거리에는 노숙자가 늘어나자, 오히려 구 동독 시절이 더 좋았더라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형식적으로 통일이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여전히 차별과 혼란으로 통합이 안 돼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나라와 나라가 합친다고 해서 개인과 개인도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 봄희(셋넷 11기 졸업생, 외대 중문과 재학)     


한반도 평화원정대 ‘셋넷예술단’의 탄생

드레스덴과 베를린에서 공연을 마친 뒤 통일독일 현장들을 둘러보면서 새로운 구상을 하였다. 가까운 미래로 구체화되는 한반도 평화시대를 열어갈 남북한 젊은이들이, 새로운 생존조건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세계시민역량을 훈련하고 체험할 새로운 그릇이 필요했다. 이제는 조사와 연구와 논의와 발표를 넘어서서 평화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연습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러한 연습은 낯선 현장에서 다름들과 용기 있게 부딪치는 것이고, 불편한 차이들을 온몸으로 느끼고 기억하는 집단 작업이다.  

   

2003년 똘배학교를 같이 꾸몄고, 셋넷을 함께 세운 문수 샘이 기꺼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 셋넷 재정문제로 늘 노심초사했던 짐을 그가 거들어 예술단 운영과 재정문제를 맡았고, 나는 예술감독으로서 작품과 메시지의 질적 완성도에 집중하기로 역할분담을 했다. 한반도 문제의 중요성과 복합성을 염두에 두고 남북한 청년에만 국한하지 않고, 한국에 유학 온 아시아 여러 나라 유학생들을 참여시켜 그들과 함께 아시아 평화를 연습하고 형상화하는 국제청년 문화네트워크를 조직했다. 무엇보다 10년을 훌쩍 넘긴 셋넷학교의 시대적 의미와 변화된 역할을 고민했던 게 셋넷예술단 탄생의 중요한 이유였다. 2016년 가을 한반도의 갈라진 땅 젊은이들과 러시아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유학생들로 구성된 최초의 아시아 평화원정대가 아름다운 비행을 시작했다.  


2017년 여름, 인도 잘가온 시골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문화를 매개로 200명의 아이들과 즐거운 놀이를 하며 봉사활동을 했다.


셋넷예술단의 아름다운 비행

한반도 평화원정대 셋넷예술단은 매년 여름과 겨울 방학기간에 예술단에 참여하는 단원들 나라를 순회하며 평화공연, 문화교류 워크숍, 국제봉사활동, 다문화 체험 탐사여행을 하였다. 2015년과 2016년 독일에 이어, 2017년 베트남 하노이 타이응엔대학, 인도 델리 아쇼카대학과 잘가온 간디리서치재단, 2018년 베트남 호찌민 문화예술전문대학, 캄보디아 프놈펜로얄대학,  2018년 영국, 2019년 미얀마까지 총 7차에 걸쳐 다양한 체험과 활동을 했다.    


베트남 호찌민 문화예술대학에서 진행했던 평화공연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 비언어극(non-verbal performance for Peace, 40분), 구성 연출 박망채.

1. 평화를 향한 몸짓 (오프닝 영상, 사진 임지은 영상편집 오원환) 

2. 밤과 꿈 (전래집단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3. 겨울 나그네, 낯선 이방인 (비발디 4계 중 겨울, performance)

4. 사랑과 우정 ‘아름다운 사람’ (치유 집단 춤, 안무 박주선) 

5. 담쟁이의 꿈 (애니메이션 영상, 그림 강희진) 

6. 평화를 연습할 수 있다면... (한국어&베트남어 낭독, 글 전성표) 

7. 아침이슬 & 담쟁이 (집단 마임)

8. 새의 노래, 철망 앞에서 (뮤지컬)

(윤도현밴드가 각색한 김민기 노래를 뮤지컬로 만들고 졸업생 철만이가 지도하고 함께 공연했다.) 

9. 우리 기쁜 젊은 날을 위하여 (쿵따리 샤바라 집단 춤, 졸업생 봄희가 지도하고 함께 공연했다.)  

   

우리는 지금 평화 연습 중입니다.

단순히 공연을 통해 보이고 전해지는 것만이 메시지라고 여겼는데, 베트남 친구들과 함께하며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어주었던 공연의 감동과 느낌 역시 평화의 언어가 되었다. 평화의 언어는 비일상적이고 특이한 것이 아니다. 베트남 친구들과 한국 청년들이 나누는 미소, 언어가 다른 서로를 이해하며 보내는 눈짓, 함께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 이토록 사소한 일상의 풍경들이 서로를 끈끈하게 만들고 차이를 이해하며 평화를 연습할 수 있는 평화의 ‘언어’가 되었다. / 하연(한국)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집단 춤 ‘아름다운 사람’을 연습하면서 내 안의 어둠을 처음으로 직면했던 시간이었다. 타국에서 힘겹게 생활하면서 좌절하고 외로울 때가 적지 않았지만 나의 아픔, 외로움, 좌절들을 외면했었다. 그런데...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연습하던 노래 가사에 온 몸을 내어놓고 춤을 추면서 나를 가두었던 어둠을 조금씩 밝혀 주었다. / 응옥(베트남)    


평화라는 단어가 어려운 단어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은 곳이 캄보디아였다. 대한민국에서 평화를 느끼기가 가장 어려웠다. 왜 다른 나라만 가면 마음이 진정되고 평화라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났다. 다름으로 살아왔고 다름 속에서 배워왔다. 다름 속에서 살아온 우리가 만났는데 왜 다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그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해주는 것이 평화로 가는 길이 아닐까. / 현수(한국)  

  

아름다운 풍경과 로컬 음식 매력에 빠져보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여행은 다른 느낌이었다. 계산적일 수밖에 없는 사회생활 속에 맞춰진 나를 돌아보며 비록 때 묻었지만, 순수함을 되찾을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고 마음에 작은 평화가 깃들었다. 어렵게 떠났던 여행이 지친 내게 좀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 철민(셋넷)    


2019.9 전북 남원으로 학교를 옮긴 뒤 첫 문화행사, 다문화 청소년들과 함께 평화 감수성을 주제로 남원시민들과 함께했다.


셋넷의 유목 정신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뚫는 자는 흥한다’ 셋넷은 여행을 많이 떠나는 학교다. 동해로 서해로 남해로, 산과 들로, 백두산부터 히말라야까지 우리는 길을 타고 길을 찾아 지독히도 많은 여행을 떠났다. 셋넷에게 학교라는 것은 여행을 다녀와서 잠시 쉬고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기 위한 베이스캠프였다. 셋넷에게 여행은 싱싱하게 꿈틀거리는 배움과 채움의 공간이었다. 학교라는 베이스캠프에서 만들고 연습한 공연은 여행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고, 가슴 시린 여행의 순간들은 다시 이야기가 되고 다큐멘터리가 되어 우리 안의 학교를 채웠다. 검정고시가 다가오면 선생과 학생들이 함께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잠을 좇으며 어느 학교보다도 많이 합격자를 배출하였지만, 검정고시도 학교 밖 세상으로 나가는 기차를 타기 위한 최소한의 승차권이었다. 여행은 그렇게 나를 확대하고 우리를 엮어내고 세상을 담아내는 배움의 과정이었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강줄기였다. 돌이켜 보면 셋넷의 길은 처음부터 여행의 길이었다.  

셋넷예술단 단장 문수 샘은.. 글로벌 어학교육 서비스 BeNative를 창업하여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며 맹활약하고 있다. 늘 거침없는 눈길과 온화한 미소로 지칠 줄 모른다.   

 

셋넷예술단 평화 연습이 우리에게 준 선물 넷

첫째, 우리가 맞이할 한반도 평화는 위대한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여럿의 힘과 정성으로 만들어진다. 매번 공연과 여행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모든 과정에 수많은 사람들의 구체적 지원과 정성이 담겼다. 둘째, 우리가 상상하는 평화는 멋진 결과가 아니라 참고 인내하는 힘겨운 과정이다. 여러 나라에서 했던 공연은 알찬 열매를 거두었지만, 준비과정에서 서로에게 아픔과 상처들을 주었다. 다르게 살아온 문화적 배경과 용납하기 힘든 개인적 태도와 습관들 때문에 매번 긴장과 충돌이 생겼다. 평화와 공존으로 가는 과정은 오랫동안 대립하며 달라진 시간들 때문에 빚어지는 오해와 실망들을 감당하며 견뎌야 하는 기나긴 여정이다. 셋째, 우리가 감당할 평화는 한순간에 결정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독일 통일을 이룬 후 2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채 힘들어하는 통일 이후 문제들을 분단의 심정으로 지켜보며, 한 번의 성공사례보다 수 십 번의 실패사례들을 소중하게 품고 다수가 행복할 평화와 통일을 느릿느릿 채워가야 한다. 넷째, 한반도 평화는 세계 여러 나라와의 이해관계와 네트워크를 통해 해결해 가야 한다. 독일과 유럽은 난민 문제에 집중하고 있고 그들 시선으로 볼 때 탈북자들도 국제난민이다. 한반도 평화문제와 국제난민 문제를 긴밀하게 연계시켜 국제적 연대 속에서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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