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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Nov 28. 2019

평화연습,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

길 위의 학교, 셋넷학교 이야기 (20)


평화가 모두에게 똑같은 느낌이나 상태로 오지 않는다. 아픈 이에게는 건강이 평화일 것이고, 가난한 자에게는 돈이 평화일 것이다. 사랑으로 절망하는 이에게는 애인이 평화 되어 꽃다발처럼 안길 것이고, 깨어진 가족에게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평화의 엽서가 되어 눈물겨울 것이다. 갈라진 한반도에서 지금 우리는 평화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지치지도 않고 미워하고 대립하고 시기하고 있다.  


셋넷에게 평화는 무엇인가?

강자가 일방적으로 정한 정의와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과 탐욕으로, 낯선 땅 아버지들이 오래도록 지켜온 정의를 짓밟고 가족들의 소박한 행복을 산산조각 내었던 비극이 베트남 전쟁이다.

남베트남 독립 해방군(그들은 베트콩으로 불렸다.)이 잡혀온 한국 위문공연단을 심문한다. 우린 돈 벌러 왔고 한국군은 평화를 위해 왔다고 답하자, 베트콩 대장이 너희에게 평화가 뭐냐며 권총을 들이댄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일촉즉발 살벌한 상황에서 붙잡혀 온 공연단 싱어인 주인공 여자가 말도 통하지 않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노래한다.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 산다 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랑...’(영화, 님은 먼 곳에)    

평화는 거창하지 않고 사소하고 시시하고 하찮은 무엇일 게다. 평화는 저 아득하고 거룩한 곳에 있지 않고 우리 가까이 있는 어떤 것일 게다.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이 땅의 평화도 사소하고 시시하고 소박한 것들일 텐데...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 텐데... 망설이다가는 영영 가버릴 사랑일 텐데...    



무엇이 평화를 거부하고 훼방을 놓는가?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라는 편견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편견 없이는 부모든 자식이든 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으니까 필요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해석할 때 자신은 객관적이고 편견 없이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착한 편견 나쁜 편견을 가를 게 아니라, 내 안에 편견이 있고, 우리는 늘 편견의 유혹과 원죄에 빠져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게 중요하다.  

   

서강대 김영수 교수는 우리의 통일(統一)을 통이(通異)로 바꿔서 이해하자고 주장한다. 둘 중에 하나, 강자의 논리로 하나 됨을 이루자면 반드시 편견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내게 익숙한 방식과 습관이 논리와 합리라는 착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할 때 편견의 해악은 일본 바다를 오염시킨 방사능 수치보다 크고 넓다. 다름이 통하게 하자는 소박한 뜻을 품고 서로를 바라보고 소통한다면 그만큼 편견이 끼어들 여지는 좁아질 수 있고,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힘의 논리와 지배의 방식으로 평화를 이해하고 공존의 행복을 논하는 모든 시도는 사기이며 지독한 편견이다.    

 

통일(統一)을 이룬 사랑과, 통이(通異)로 살아가는 사랑을 잠시 상상해보라. 남자라는 이유, 학벌이 높다는 이유, 좋은 가문이라는 이유로 통일을 이루며 사는 사랑은 불행하다. 조만간 헤어질 사랑이거나 사랑을 가장한 독선이다. 완전한 통일(統一)로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가정과, 매 순간 살피고 배려하는 통이(通異)로 조율해가는 가정은 현실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명분, 가장이 더 오래 살았고 경험이 많다는 협박, 기족 구성원이 미숙하다는 지독한 편견으로 하나 된 가정은 오늘도 밤늦도록 불이 꺼져있고 반려견만이 외롭게 짖어댄다.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존재 이유로 소중히 하는 사랑과 가족들과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게, 내 안의 편견을 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정답은 연습이다.        

결국 내 안에 숨어 있는 편견을 알아차리고 내 것으로 인정하는 힘겨운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작업 너머 비로소 내 밖 일상의 편견을 살피고 평화를 방해하는 편견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디딤돌 작업이 가능하겠지만, 그러면 평화가 오는가. 이제껏 우리가 논의만 하느라, 연구만 하느라, 협상만 하느라 무시하고 미뤄두었던 ‘평화연습’을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 여건이 허락하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에서 무작정 시작해보자. 보고 느끼고 알아차리고 살피고 관찰하고 성찰했던 것들을 마음속 머릿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구체적으로 행동하고 작고 느리게 체험해보자. 바로 그때 비로소 행복한 상태, 자존의 삶에 다다를 수 있다. 셋넷이 평화연습을 시작한 이유다.     


오토바이 타는 목사 성표샘이 주는 금과옥조

한국 축구가 역사상 가장 좋은 기록을 낸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팀 감독은 고도의 기초체력 훈련을 시켰다. 당시 한국이 좋은 성적을 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 체력훈련이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은 대다수가 인정하는 바이다. 통일을 연습할 수 있다면, 그게 가능하다면 반복해서 ‘차이’를 인정하는 훈련이 아닐까. 흑인과 백인은 멜라닌 세포의 차이고, 동성애와 이성애는 사랑하는 대상의 차이고, 어류와 양서류는 호흡법의 차이고, 개미와 코끼리는 크기의 차이고, 디지털카메라와 필름 카메라는 센서의 차이이고, 탈북자와 남한 사람은 고향의 차이다. 각각은 틀림/옳음이 아니라 다름의 문제이다. 그뿐이다. 근육을 단련하듯이 차이를 인정하는 공부를 하고 훈련을 한다면 그것이 통일연습이 아닐까.    

 

스펙이라는 그림자를 위해 공부하지 말고, 내 삶을 위해 연습하자. 평화연습 사랑연습 우정연습

통일을 궁리하지 말고, 평화연습을 해야 한다. 사랑타령과 유혹할 계략을 짜는데 몰두할 것이 아니라, 끈기 있게 나와 다른 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사랑연습을 시도해야 한다. 오래전 kbs에서 주관하는 ‘청소년 문화 이해하기’ 학부모 특강에 강사로 초대받았다. 평일에도 불구하고 50쌍의 중년부부가 진지하게 모여 있어서 놀랐다. 중고교 자녀를 둔 부모세대였는데 이렇게도 자녀들에게 관심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뜨거운 분위기였다. “제가 장담하건대, 이 강의 끝나면 오늘 저녁 애들 좋아하는 피자나 치킨 사 가지고 애들 방에 용감하게 들어가실 분들 많을 겁니다. 하지만 10분도 채 되지 않아 그 방에서 쫓겨나고 말 겁니다. 썰렁한 거실에서 씩씩거리며 흥분하고 있는 자신들을 보게 될 겁니다.” 두 시간의 특강을 마치면서 강조한 말이다.

과거 자신에게 익숙한 문화방식과, 새롭게 주워들은 몇 개 정보들로 상대방을 이미 다 파악했다고 자만하고 일방적으로 대응하는 낡은 방식은 지난 몇십 년간 남북이 평화를 위해 대화를 한다면서 보여주었던 실망스러운 모습들로도 차고도 넘친다. 머리로 판단하고 결정하지 말고, 몸으로 낯선 문화방식과 태도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어색한 연습을 천천히 조금씩 일상에서 시작해야 한다.


손흥민과 방탄소년단

피나는 연습 없이 축구 변두리 아시아를 넘어선 손흥민이 탄생할 수 없었고, 스스로를 넘어서야 할 목표로 삼아 끊임없이 상투성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연습이 아니었더라면 길거리 스타 방탄소년단이 월드스타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을까. 디지털 시대 가상 소통으로 생생한 체험이 거세된 이 시대에서 성숙하게 진화하기 위해서는 체험 연습이 필요하다. 서서히 해체해가는 가족을 향해서, 사라져 가는 일상과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서, 오로지 생생하게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관계 맺기 실존 연습이 필요하다. 이제껏 너 나 할 거 없이 가문을 걸고 대를 이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오로지 성공하려는 삶에만 매달렸다. 이제 성공 공식과 결별할 시간이다. 


2006년 가을, 춘천 고슴도치섬에서 셋 넷 가족 후원자들과 함께 한 개교 2주년 '빛과 꽃망울' 축제


셋넷 평화연습

평화의 궁극적 도달 지점은 '자립적 자기 삶의 지도'를 그리기 위한 것이지만, 외로이 혼자만 덩그러니 있는 지도는 상상하기 끔찍하다. 평화연습은 홀로 깊은 산속에서 면벽하며 득도하는 게 아니다. 성가신 짝이 있고 부슬부슬 비가 내릴 때 떠올릴 친구가 있어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낯선 삶, 낯선 직업, 낯선 공연, 낯선 여행은 혼자로는 외롭고 심심하다. 힘을 얻고 재미를 나눌 우정을 공들여 재발견해야 한다. 내 평화와 너의 평화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우정은 짝을 이뤄야 평화를 이룰 수 있고, 흩어진 가족은 한때 성가셨던 서로를 그리워하며 잔잔하게 평화를 전염시키며 잃어버린 가족의 온기를 되살릴 수 있다.    

더 이상 타인의 시선과 안전한 삶에 대한 환상으로 쫄지 말아야 하고, 자신이 지닌 고유한 가치에 대해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말과 생각과 계획과 전문가 멘토의 조언을 넘어서서, 개인과 집단의 연습과 체험활동이 필요하다. 셋넷 평화연습 풍경이다. 


이 시대를 사는 개개인이 평화로운 자각과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자 삶들이 자치로 기획되어야 하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일상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달렸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치와 자존은 독자 생존능력, 네트워크 능력, 문제 해결 능력을 자양분으로 커가고 튼실해진다. 역량은 목표와 전략을 필요로 하지만, 일상에서의 부단한 연습으로 완성된다.  

    

세상의 모든 평화는 소통이다.

셋넷의 모든 교육활동은 ‘소통’을 지향한다. 아이들이 어떤 직업을 갖거나 어떤 도덕적 인품을 가져야 한다는 건 각자의 몫이지, 타인이 간섭하거나 규정할 문제가 아니다. 내가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나들과 치우침 없이 긍정적으로 소통하는 데 온 정성과 전력을 다할 뿐이다. 나와의 소통을 삶의 징검다리로 삼을 때 비로소 나와 세상, 나와 사물들 간에 건강한 소통이 가능하다. 무릇 개인 생명은 혼자 있을 수 없고, 이웃과 동식물 개체들을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한 물리학자 장회익 교수의 온생명론이 그것이다.  

   

건강한 소통을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해나가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편견을 알아차릴 수 있는 평화 감수성을 쉼 없이 연습해야 한다. 소통을 방해하고 병들게 하는 편견에 결연하게 맞설 용기와 행동을 훈련해야 한다.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한 용기에서 비롯된 행동들이, 나를 나답게 하고 우리를 우리답게 한다. 자기다움은 주인 된 자의 신성한 덕목이고 비굴해지지 않고 정의롭게 맞서는 최고 역량이다. 개인들의 용기가 새로워지고 행동이 이분법적 선악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여럿의 우정을 모을 공감 감수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셋넷은 평화를 학습하지 않는다. 다만 상상하고 연습한다. 지속적인 연습은 일상을 뒤덮고 있는 사소하고 하찮고 시시한 것들에서 성스러움과 신비를 알아채고 공감하는 힘을 줄 것이고, 그 힘으로 다시 일상에서 소통의 틀과 내용을 새롭게 일구어 간다. 



*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 영화 <쇼생크 탈출> 중 삽입되었던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 이중창'. 억울하게 옥살이하던 주인공이 교도소장 일을 돕던 중, 교도관이 화장실 간 틈에 이 음악을 틀고 한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창 너머 세상과 성난 교도관들을 느긋하게 쳐다보는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감동 없이 내세우며 공허하게 떠들어대는 평화의 오래된 살진 풍경을 문득 마주하는 듯 편안했다.


* 평화연습 글은, 서울 노원에서 진행했던 청소년 평화교육을 마친 뒤 서울시에 제출한 글을 수정하고 보완했다. 그동안 셋넷이 해왔던 남북 미래세대 평화연습이 위축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탈북 청소년 숫자가 급격하게 줄었고, 평화연습 파트너인 남한 청소년들은 너무 바쁘고 두려움에 갇혀 있다. 이제 작은 지역을 중심으로 평화연습의 깃발을 올린다. 지난여름 서울 노원, 가을 전북 남원에서 시작한 청소년 평화연습이 소중하다.  


* 제목 사진은 2015년 독일 공연 '하나를 위한 이중주' 중 담쟁이 퍼포먼스 장면.. 도종환의 담쟁이 시를 집단 퍼포먼스로 형상화했다. -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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