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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Dec 26. 2019

운명이거나 바람처럼 떠다니거나

길 위의 학교.. 셋넷학교이야기 (22)


스물네 살 철이가 품은 한국이라는 거대한 꿈과 짱돌 이야기

자유로운 곳, 굶주림이 없는 곳을 찾아 고향과 부모 형제를 등지고 중국으로 무작정 넘어갔다. 경찰에 쫓겨 도망가다가 연길 도시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불법 탈북자 신분 때문에 눈이 채 녹지도 않은 야산에서 보름이 넘는 날들을 자기도 했고, 폐가에서 잠을 자야 했던 나날들도 많았다. 살아남기 위해서 살다 보니, 누가 나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까 두려움 때문에 사람을 믿지 못하고, 늘 두려움과 긴장 속에 살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적으로 보였다. 쫓기던 중에 TV를 통해 한국이라는 거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 한국에 가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줄 알았고, 돈도 많이 벌고 금방 부자가 되는 줄 알았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 처음에는 중국과 다른 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한국말인데도 이상하게 통하지 않았고, 탈북자를 바라보는 한국 사람들의 알 수 없는 시선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부자가 되겠다던 야무진 꿈과 환상이 깨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국에서와 같은 두려움과 외로움이 다시 찾아왔다. 큰 운동장에 버려진 짱돌 같은 느낌이랄까...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 찾아간 학교가 셋넷학교였다. 중국에서 오갈 데 없이 굶주리며 도망 다니던 나를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연길 한국교회 목사였기에 종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북한에 계신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오면 막연히 불안했다. 엄마 아빠가 굶어 죽지 않나 하는 생각에 무작정 돈을 벌어야 했고, 북에선 먹고살기 위해 공부를 모르고 살다 보니 막상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흔들리고 방황할 때마다 잡아주고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줬던 분들이 셋넷에 있었다. 의지할 곳이 생겼다. 남 눈치 보지 않고 세상 원망하지 않고, 나만의 삶과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지금의 내가 행복하다. 내 삶을 향해 달리는 마라톤을 시작했다. 삶의 길 위에서 다시 꿈을 꾼다

...  2013년 1월 9기 졸업식에서, 철(함경북도 회령)


2014년 봄 졸업생 향이와 철이 첫 아이 세아 돌잔치를 졸업생 교사 후원자들이 함께 축하했다. 


소년 소녀들, 길을 찾는다 

아빠는 아프다. 몹쓸 병이 그 몸을 갉아먹고 있는 것인지..장군님 외에 아무도 꿈꿀 수 없는 겨울왕국 북조선에서 아빠들은 몸도 마음도 병들었고, 엄마가 부재중인 집은 생기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어린 내가 이 집을 감당하기 벅차다. 버틸 힘이 없고 굶주림에 지쳤다. 밤마다 칠흑 같은 어둠에 갇히지만 강 건너 중국 동네는 불야성이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사회주의는 너나 지키고 장군님은 알아서 버리고 떠나자. 무작정 엄마를 찾으러 강을 건넌다.


세상의 모든 꽃제비는 슬프다 

무작정 강을 건넜지만 막막하다. 아는 이 하나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다. 빌어먹는 수밖에 없다. 그도 귀찮다. 그냥 팔려가 버리라지. 가진 게 몸뚱이밖에 없지 않나. 날을 춥고 배는 쓰려오는데, 저 한족 놈 사장은 오늘도 임금을 주지 않을 심산이다. 어쩔 수 없다. 신고하면 잡혀가 생사를 기약할 수 없으니, 처분만 바라고 눈치로 배를 채울 밖에. 적당히 눈치 까다가 사장 몰래 돈이나 훔쳐 달아나야지. 세상이 왜 이 모양인가. 북조선과 남조선이 전쟁이라도 터져 너도나도 몽땅 뒈져버리든지, 세상이 확 뒤집혀버리면 좋겠다. 

  

소년 소년들, 세상을 만나다  

연변은 거대하고 어지러울 정도로 휘황찬란하지만, 속 빈 강정 같다. 법 지키는 사람은 바보고, 정직하게 장사하면 병신이 된다. 속고 속이고, 목소리 크면 되고 주먹 세면 만사 오케이다. 어차피 이 바닥 곧 뜰 건데, 나라고 순진한 척 양심대로 살 필요가 있을까. 썩어빠진 사회주의는 북조선이나 매한가지다. 더럽고 무지한 떼 놈들에게 꿀리면 장군님께 죄송하지. 여차하면 맞받아쳐버리자. 한 번 밀리면 끝장이다.


소년 소년들, 십자가로 뗏목을 만들다

시장통 국밥집 티브이에서 우연히 본 남조선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렇게 하루살이처럼 사느니 저기라도 가보자고 무작정 궁리하다가 남조선 사람을 만난다. 그가 데려간 은신처에서 하루 종일 몇 날 몇 개월을 성경만 읽는다. 읽을 수밖에 없다. 읽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고, 읽기를 게을리하면 남한에 안 보내준다고 다그치니, 아무 생각 없이 읽고 또 읽는다. 성경책이 끔찍한 지상에서 탈출시켜 줄 유일한 동아줄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왜 한 두 번도 아니고 몇십 번씩 읽으라 하는 건지, 뜻이 궁금해 질문하면 믿음이 부족하다고 화를 낸다. 조금만 더 버틴다. 어차피 한국에 가면 이 미친 짓거리도 때려치울 거니까. 강을 건너면 뗏목이 무슨 소용이람.


기나긴 여정, 동남아 나라들에서 두려움을 떨쳐버리다 

중국 땅을 가로질러 몇 날 며칠인지 알 수 없는 날들을 어디가 어딘지 모른 채 조마조마하게 국경으로 향한다. 몽골, 미얀마, 라오스, 태국으로 장님 문고리 잡듯이 브로커를 따라 어둠 속 길 없는 강과 깊은 산들을 타고 넘는다. 국경을 넘다 재수 없게 걸리고 만다. 도무지 군인 같지 않게 차려입은 국경수비대 군인이 알지도 못하는 말로 다짜고짜 권총을 들이댄다. 그래 죽여라. 남은 건 악밖에 없다. 너는 죽고 소녀는 산다. 그녀는 잡히고 소년은 용케 도망친다. 더 이상 무서울 것도 없고, 미련도 없다. 악이다 깡이다. 서러운 인생, 갈 때까지 가보자.    


소년 소녀들, 드디어 대~한민국에 왔는데 

남한에서 신용불량자가 창살 없는 감옥에 사는 것처럼, 북조선에서는 사상범으로 낙인찍히면 살아 있지만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사상범들이 그리워하는 나라, 평양에서 살고 싶은 욕구가 뼈 속 깊이 사무친다. 남조선 평양 서울에서 사람답게 살아보리라. 환상 속 나라에서 코리안 드림을 기어코 이루고 말겠다 다짐한다.  

서울에 사는 남한 사람들이 꿈꾸는 대학을 향한 은하철도 999에 무작정 올라타려고 몸부림친다. 시험 없는 특례입학을 제공한 남한 정부의 배려가 소년 소녀에게 가능성과 용기를 주지만, 대학 수학능력과 기본적인 문화적 응력을 갖추지 못한 탈북 청소년들에게 잔인한 유혹이자 장기적 부적응의 주된 원인이 된다. 


소년 소년들, 동포와 간첩 사이를 오가며 살아남기에 급급하다.

남북관계는 짧은 평화와 길고 깊은 원한이 수없이 반복 재생되는 고질적인 부부 싸움과도 같아서, 자식들의 삶은 이유도 모른 채 고달프다. 사랑한다면 싸우지나 말던지, 같이 살고자 한다면 불편한 당신의 문화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던지... 탈북자의 남한 살이 또한 남북관계의 긴장 정도에 따라 동포와 간첩 사이를 오간다. 변태 고래들의 더럽고 추악한 파워게임 때문에 한반도 생명체 민물 새우들의 복장은 시도 때도 없이 터지고 등창이 가실 날이 없다.

 

2007년 셋넷 첫 공연 '나의 길을 보여다오. 우리가 꿈꾸는 세상' 중, 슬픔을 넘어서서 퍼포먼스 장면


경계를 얽힌 이방인과 분단에 갇힌 우리

이렇게 살려고 사랑을 내세웠나? 결혼을 약속했으면 책임 있고 성실하게 공존의 삶을 위해 애쓰고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닌가? 대체 통일이 무엇이길래... 탈북 청소년과의 만남과 소통은 70년 가까이 쌓인 남한과 북조선 관계의 연장선에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온 전쟁의 비극과 오래된 이념적 편견들(뱃속까지 시뻘건 것들을 어찌 믿을 수 있겠어)에 대한 솔직한 집단 고백이 먼저 이루어져야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다.

‘북한이란 세상'과 '목숨을 건 탈북과정’은 낯설다. 두 개의 삶과 경험이 주는 특이성향과 행동 패턴을 이해하기 어렵고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다. 우리가 해오던 소통방식이나 문제 해결 습관들이 적용되지 않는다. 익숙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제3의 방식을 찾아 익히려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데 과연 가능할까. 우리에게 '탈북자'는 어떤 존재인가? 통일을 하면 여러모로 이익이 될 듯싶지만 통일문제는 생각만 해도 버겁고 골치 아프다. 탈북자의 딱한 처지는 같은 동포로서 안타깝지만, 탈북자 존재는 무척 부담스럽고 성가시게 다가오는 걸 어쩌란 말인가. 이 모순적인 현실을 어찌하면 좋은가? 


셋넷이라는 집을 지으며 20대 전후 탈북 청소년들이 남한에서 맞닥뜨린 거대한 벽들을 함께 만났다. 과거 탈북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난 트라우마와 마주할 수밖에 없는 두려움을 지켜보았다. 아득한 문화 차이로 인해 생겨난 비현실적인 욕망과 박탈감, 고향땅에서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다문화사회에서 겪게 되는 어색한 동거와 3등 시민으로의 추락, 막연하고 급속한 낯선 문화로의 편입과 준비 안 된 취업을 보며 안타까웠다. 더 이상 북조선인도 아니고, 명쾌하게 남한 사람이 되지도 못한 채 낡은 이념과 일방적인 편견의 틀 안에 갇혀 어정쩡하게 서성거리는 이들 존재의 자리는 얼마나 어둡고 깊을까. 거기 있지만 갈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그리움의 공백을 채워주고, 결여된 가족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우정과 배려의 그물망은 지상에서 가능한 걸까?


은희가 가꾸는 작은 행복 

제 고향은 함경북도 경성, 도자기가 아주 유명한 곳이지요. 1996년 엄마와 함께 탈북했고 중국에서 헤어졌다가 한국에서 15년 만에 극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2008년 한국에 왔습니다.

2008년 셋넷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25살에 덜커덕 아기를 가졌습니다. 같은 북한사람끼리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경제적 여유가 없다 보니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속상했습니다. 맞벌이 부부다 보니 같은 아파트 단지 애기 엄마들이랑 어울리지 못하고 우리 애들은 혼자 놀아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놀랍고 속상했던 것은, 남과 북이라는 단어가 엄마들 속에서도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왜 서로를 분리하려 하지? 같은 사람이고, 같은 부모 마음이고, 같은 엄마 입장이고, 얼굴 생김새도 비슷하고, 피부색도 같고, 말투만 조금 다를 뿐인데...


'긍정의 자기 삶지도'를 그리기 위한 시간여행

탈북 청소년들이 살았고 지나왔던 과거(북조선, 탈북과정)는 근대의 삶과 닮아있다. 나는 60~70년대 일본 적산가옥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여덟 가구가 빼꼼하게 살면서 하루라도 다툼 없이 지나간 날이 없었지만, 집 뒤편 평상에 둘러앉아 서로 먹을 것들을 장만해서 왁자지껄 떠들던 날도 쉬지 않았다. 그 시절 기억이 선명해서 놀랐고, 따뜻하고 편안해서 그립다. 나와 셋넷 아이들의 삶이 닮아있는 이유다. 

셋넷 아이들이 기대하지 않았고 경험하지도 못했던 현재(남한, 자본주의)의 삶은 최첨단의 현대를 관통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60년 가까이 살아온 내게 이 시대는 여전히 정답지 않고, 인맥 학맥들로 제법 단단하게 무장했지만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 하물며 셋넷아이들에게는 얼마나 낯설고 두려울까. 생존 차원을 넘어서서 지속 가능한 한반도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 근대와 현대를 지나 다시 생기 넘치는 근대의 생명력을 복원시킬 수 있는 '긍정의 자기 삶지도'가 필요하다. 


나와 너를 생생하게 존재하게 하는 지도는 오랜 시절 의심 없이 익숙했던 언어의 방식을 넘어서서, 비언어적 감성소통방식과 공감 감수성으로 채워야 한다. 평화와 공존에 걸림돌이 될 언어문제들을 넘어서기 위해, 25년간 다양한 문화예술 소통방식들을 실험했다. 황지우 시인의 간절함처럼 '이 세상에 아름다움과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기 위해서만 있을 필요가 있는, 신분 없는, 다만 정신일 뿐인 귀족주의! 시장에 대한 강력한 항체로서' 교육의 귀족성을 요청한다.



* 제목은 영화 '포레스트 검프' 주인공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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