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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Apr 16. 2020

고령화 가족

셋넷 영화이야기 7 : 가족


꽃 음식 다툼 여행그리고 사진.. 가족의 또 다른 이름

     

미처 알지 못했던 몸 안의 죽음을 확인하러 병원으로 향하던 봄날, “상영아, 저 꽃 봐라. 너무 이쁘지 않니?” 당신은 봄날 꽃들처럼 미련 없이 환하게 떠났다. 당신이 만들어주시던 닭요리와 삽겹살.. 엄마의 음식은 가족의 전부다. 가족의 이유다. 가족의 온기다. 주말이면 엄마가 빚어낸 온갖 음식들로 흩어졌던 우리는 다시 한 가족이 되곤 했다. 그 향기로운 음식 사이사이로 이념논쟁이 오가고, 구깃구깃 숨겨놓았던 부부싸움이 발각되어 진영 다툼으로 이어졌지만, 가족의 소소한 다툼들은 엄마가 손수 마련한 음식들로 쉽게 화해하고 순하게 용서를 나누곤 했다.  

   

꽃.. 집 건너편 담벼락 비탈에 위태롭게 핀 꽃을 보며 힘겹게 사는 아들을 떠올린 엄마의 전화가 세상을 등지려던 아들을 살린다. “니가 좋아하는 닭죽 끓여놨으니, 와서 먹어라.” 엄마의 집은 감방을 드나들던 아들과, 개봉되지 않을 영화를 꿈꾸는 다른 아들과, 수녀처럼 혼자 살겠다면서 남자들이 끊이지 않는 딸과, 그 딸을 빼닮은 싹수 노란 외손녀가 벌이는 좌충우돌 다툼으로 날마다 어지럽다.    

  

음식과 다툼.. 쥐똥만큼의 온기도 느낄수 없는 가족들은 어미가 차려놓은 음식을 맛나게 먹고, 비가 개면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제각기 지닌 이기심과 욕망을 무기 삼아 쉼 없이 으르렁댄다. 보잘것없고,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서로를 향해 거침없이 무례함을 쏟는다. 어미는 다시 음식을 장만하여 먹이며 애써 가족을 기억하게 하지만, 어미의 먹이로 힘을 얻고 다시 서로를 향한 적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여행과 사진.. 날이 밝고 달이 차면, 그들은 비좁은 차 안에서 서로를 하잘 것 없이 여기며 시끄러운 여행을 떠난다. 일상을 잠시 감춘 그곳에서 한 컷 사진 같은 가족의 행복과 느낌을 남기고.. 다시 먹고 또다시 격렬하고도 장엄한 다툼을 지치지도 않고 시작한다. 꽃이 피고 음식을 장만하고 틈틈이 다투고 다시 화해의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먹고 으레 당연한 듯이 싸우고 잠시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다시 아름답고 찬란한 꽃이 피고, 가족은 그렇게 낡아가는 서로의 모습을 확인한다.      


올봄 다시 꽃이 피고, 봄밤 뒤척이며 진다. 겨울을 이겨낸 아기 고양이가 마당을 기웃거리는 능청스러운 봄날, 삼겹살 구우며, 한판 욕지거리하면서, 가족사진도 한 장 찍고 싶은데... 다들 어디 간 거지?  


 *제목 사진.. 2010 통일 연습 국제청년교류 및 봉사활동(베트남 하노이, 셋넷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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