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영 Apr 02. 2020

위플래쉬

셋넷 영화이야기 6 : 배움


배움의 주인이자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속을 만나면 친속을 죽여라.

- 임제록, 임제선사     


나 아닌 다른 경계에 동요하지 말라. 온갖 경계가 앞에 오거든 무조건 다 부정하고 끌려가거나 흔들리지 말라. 부처님이나 조사(祖師)나 아라한이나 그 어떤 권위나 관념들로부터도 벗어나라. 인정하지 말라. 깡그리 부정해 버리고 끌려가지 말라. 불조(佛祖)에 대한 모든 잘못된 관념들을 때려 부수라. - 무비스님 강설(講說)     

영화 ‘위플래쉬’는 음악영화가 아니다. 스승과 제자가 OK목장에서 한 판 뜨는 현대판 서부영화다. 문명화된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미국식 무협영화 와호장룡이다.


앳된 젊은이 홀로 드럼을 미친 듯이 연습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그렇게 미친 듯이 드럼을 연주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이 난다. 주인공은 음악대학에 갓 진학한 드러머다. 그의 방과 연습실에는 전설의 드러머 사진들이 걸려있다. 그의 삶은 온통 최고가 되기 위한 길로 향하고 있다. 그의 길 앞에 폭력적인 카리스마로 무장한 스승이 나타난다. 음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스승이 이끄는 재즈밴드에 마침내 발탁되지만, 그의 연주는 스승의 괴팍하고 독선적인 교육방식과 폭언과 폭력으로 서서히 병들어간다. 결국 재즈 콘서트 경연대회 무대에서 스승의 멱살을 잡고 퇴학조치를 당한다. 그의 증언으로 폭압적인 교육을 하던 스승 또한 학교에서 쫓겨난다.      


음악의 길을 접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주인공은 스승이 연주하는 라이브 재즈카페에서, 우연히 스승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스승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스승은 자신의 교육방식이 비록 독선적이었지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거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하고 쓰잘 데 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라고 격려하는 거라면서, 자기 안에 안주하게 하는 삶을 경계하라고 일갈한다.      


자신을 교수직에서 쫓겨나게 한 주인공을 파멸시키려는 스승의 못된 계략으로 주인공은 재즈 콘서트 오프닝연주 무대에 드러머로 다시 서게 된다. 하지만, 예정에도 없고 악보도 없는 연주곡을 느닷없이 주문하는 스승 때문에, 연주는 엉망진창이 되고 주인공은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스승의 비웃음과 모멸감으로 쫓기듯이 무대를 퇴장하던 주인공은, 돌연 다시 무대로 돌아와 스스로 지휘자가 되어 드럼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의 미친 듯한 연주가 공연장을 숨 막히게 하고, 마침내 싸늘하던 스승마저도 연주에 빠져들게 한다. 주인공의 광기 서린 연주는 마침내 최고가 되려는 외나무다리 인생길에서 스승을 만나 스승을 죽이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다. 스승의 독선적 권위와 비틀린 소통들을 때려 부수는 영화의 마지막 드럼 연주 장면은 오랜만에 느끼는 전율이다. 자신의 경계를 넘어 홀로 연주하던 주인공이 당황해하는 스승에게 외친다. 

“내가 연주 시작 사인을 주겠어요.” 마침내 그가 부처를 넘어선다.



*제목 사진.. 2015년 독일 통일 25주년 기념 베를린 초청공연 '철망 앞에서, 하나를 위한 이중주'

작가의 이전글 가족의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