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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Oct 04. 2020

용서받지 못한 자

셋넷 영화이야기 28 : 용서


용서받지 못할 자들이 함부로 용서받는 21세기 무법 시대 


1800년대 말 미국 서부시대에 대륙을 뒤흔들던 악당이 있었다. 핸드폰과 인터넷이 없던 시대인데도 그의 명성은 바람과 말발굽을 타고 회자되면서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여자와 아이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죽여 버렸다는 소문이 무성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악당에 대한 소식은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어떤 여자를 만나 술을 끊고 총을 내려놓은 채 두 아이를 키우며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 있었다. 여자가 죽고 키우던 돼지는 병들고 빚은 늘어만 가는 암담한 상황에 처한 그에게 물리칠 수 없는 제안이 온다. 카우보이 두 명이 술집 여자의 얼굴에 칼질을 하자 술집 동료들이 천 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복수해줄 해결사를 찾고 있었다.  돼지 구덩이처럼 뒤엉켜가던 현실을 벗어나고자 악당은 다시 총을 들지만...    


그는 가까이 세워 놓은 깡통조차 맞추지 못한다. 땅을 갈던 여윈 말에 올라타기 위해서 수없이 고꾸라져야 하는 초라한 자신을 마주한다. 날렵하게 총을 뽑던 손은 농사일로 이미 굳어버렸고 수십 명을 때려눕히던 무쇠 같던 몸은 야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노쇠해졌다. 현상금이 걸려있는 마을은 평화와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보안관이 스스로 법 위의 법이 되어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현상금 때문에 원한 관계도 없이 행해지는 살인행위를 견디지 못한 늙은 악당 친구가 떠난다. 집으로 향하던 악당 친구가 보안관에게 잡혀 처참하게 죽자 악당은 분노한다.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고 빗줄기로 질퍽한 마을 술집으로 들어가 절대 권력이 된 보안관과 방관자 마을 남자들을 용서 없이 죽인다. 그리고는 다시 시대의 저편 풍문 속으로 숨어든다.      


풍문으로만 전해졌던 전설 속 서부마을에는 정의로움과 남자다움이 없었다. 찌질하게 삶에 찌든 소심한 총잡이들이 있었다. 사적인 힘과 권력에 빌붙어 사는 비겁함이 숨어있었고 분노에 찬 폭력과 무심한 살인이 있었을 뿐이다. 무법의 시대에 악당은 누구인가. 누가 누구를 용서할 것이며 누가 누구에게 용서를 받을 것인가.     


2020년 분단 나라 한국에는 70년간 남과 북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이념의 악당들이 여전하다. 그들의 명성은 황사바람과 인공위성을 타고 세계로 우주로 회자되면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윤리를 저버린다. 이들에게 공존과 우정을 향한 의로운 삶을 존중하는 인류애는 없다. 야비함이 비굴함을 용서하고 세습된 권력으로 용서받지 못할 자들이 함부로 용서받을 뿐이다. 돼지 구덩이 같은 분단의 어둠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지경인데, 용서받지 못할 자들의 밤은 오늘도 눈부시다.



* 제목 사진 : 독일 베를린에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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