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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Oct 10. 2020

아름다운 비행

셋넷 영화이야기 29 : 엄마


당신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시동을 끄세요.


연주 활동으로 뉴질랜드를 여행하던 엄마를 교통사고로 잃고 헤어진 아빠를 만난 열세 살 소녀는 혼자다. 기억 속에서도 낯선 아빠, 아빠의 엉망진창 작업실 겸 집, 마지못해 나선 학교는 소녀를 더 외톨이로 만든다. 소녀는 빛바랜 햇살만이 훔쳐보는 헛간 구석 거울 앞에서 엄마에 대한 기억으로 화장하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단장한다.      


소녀는 불도저가 밀고 지나간 늪의 잔해에서 엄마 잃은 야생 거위 알들을 발견하고 정성으로 부화시킨다. 알에서 깨어나 처음 본 소녀를 엄마로 믿고 따르는 거위들과 홀로 된 소녀가 부재중인 엄마의 사랑을 채워가지만, 거위들을 따뜻한 서식처로 인도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와 부딪친다.      


어미를 통해 나는 법을 배우고 어미를 따라 서식처로 이동하는 습성 때문에 고심하던 소녀와 아빠는 거위들의 엄마와 아빠가 되기 위해 애쓴다. 캐나다에서 미국 플로리다까지의 대장정을 위해 일인용 비행기를 만들어 어미 거위의 날개를 씌우자 마침내 거위들은 아름다운 비행을 시작한다. 이들이 펼치는 머나먼 비행은 제각기 사연으로 가슴을 다친 지상의 우울한 인간들을 위로하는 희망의 비행이 된다.     


서식지로 예정된 습지에는 자연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저항 소리와 서식지를 밀어버리려는 불도저의 굉음 소리가 뒤섞여 난장판이다. “시동 꺼!” 누군가의 고함 소리에 사람들이 다툼을 멈추고 기계의 시동을 끄자 노을빛 하늘 가르고 날아오는 생명의 비행 소리가 들려온다. 어미 잃은 거위들이 엄마 잃은 소녀의 인도로 무사히 비행을 마치고 안식을 찾는다.  

    

시동을 끄자. 하루 종일 지지고 볶듯 몰아치는 생존의 몸부림을 잠시나마 멈추고 엄마가 떠주었던 밥 냄새를 기억하자. 눈물 한 방울 없이 울어대는 핸드폰 소리도 끄고 나를 지키기 위해 잔걱정으로 밥상을 차리던 엄마의 기도를 떠올리자. 증오에 찬 진영 싸움의 고함들도 꺼버리자. 멍텅구리 TV 전원도 끄자. 생기를 잃은 삶들 위로 아름답게 날고 있을 거위들에게 치진 몸을 활짝 열자. 엄마를 잃었지만 거위들을 이끌고 아름다운 비행을 했던 소녀처럼 무모하게라도 날아보자. 한번뿐인 인생이다. 머뭇거리지 말자. 주저할 시간이 없다. 누구를 위한 변명이 아니라 자신만의 선명한 목표를 향해 힘차게 비행하는 소리를 듣고 나의 비행을 설계하자. 그동안 잠시라도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세상의 시동을 끄자. 



* 제목 사진 : 2018년 여름, 탈남한 셋넷 졸업생을 찾아가는 여정(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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