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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Mar 19. 2020

새벽

2019.2.19.

새벽에 읽고 쓰는 습관이 있다. 희한하게도 밤 열두 시 전에는 쓰는 마음이 깨어나질 않는다. 햇빛이 좋아서, 끊임없이 핸드폰에 뜨는 빨간 카톡 알림이 좋아서, 텔레비전 앞에 늘어앉은 가족들의 옆자리가 좋아서. 너무 많은 것들이 깨어 있는 시간이라 글자처럼 조용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기 쉽지 않다.

열두 시가 넘어가면 세상은 내가 들어앉은 네 평 남짓 조그만 방으로 좁아든다. 하루 종일 방문을 울리던 뉴스 소리도, 회사에서 울리던 전화기 소리도, 노랗게 반짝이던 사내 메신저 알림도, 버스와 지하철 안을 꽉 채우던 사람들도 사라지고 없다. 내 주의를 끌던 외부의 것들이 모두 전원을 끄고 하루를 종료하는 시간. 그제야 나는 다이어리를 펼치고 만년필을 든다.

새벽에 뭔가를 끼적거리는 일이 점점 사치가 되어 간다. 매일 아침 아홉 시까지 일정한 컨디션으로 출근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두니 새벽 작업 시간에 점점 인색해진다. 이제 새벽 작업은 가끔 수면리듬이 깨졌을 때, 혹은 주말에나 가능하다.

가뭄에 콩 나듯 마주하는 새벽 작업 때마다 내가 원래 어떤 것을 어떤 기분으로 좋아했는지 상기한다. 모두 잠들어 있을 때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이 되어 아무 말이나 다이어리에 쓰는 일은 얼마나 외롭고 재밌는지. 내 인생이 재미 없어진 이유는 사실 더 이상 새벽에 쓰지 않아서다. 이 사실은 새벽의 나만이 알고 있다.


201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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