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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리 Oct 29. 2023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2023.10.29.

반도체 연구개발을 하는 사람과 이야기할 일이 있었다. 업무상 반도체 분야도 잘 알아야 하지만 너무 어려워서 공부를 기피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니까 '어차피 기자들이 깊게 알 필요 없지 않냐'면서 시니컬한 답이 돌아왔다.


'저희 회사 기사 나온 것 중 기술적으로 디테일한 건 못 봤어요. 성과급이 얼마다, 엔비디아에서 수주했다, 이 정도 아니면 아예 내부자가 써 준 것 같은 기사밖에 못 본 것 같네요.'


왜 그렇게 되는지 너무 잘 알고, 왜 그렇게 시니컬하게 말하게 되는지도 너무 잘 알아서 마음이 참 복잡했다.


기술 기업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겪는 딜레마가 있다. 기업 측에서는 기술의 우수성과 차별성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만... 그런 내용들은 기사에 넣기에는 화제성이 떨어진다. 그나마 사람들에게 와닿을 만한 언어를 찾다 보면 '이 기업의 기술력이 이렇게 뛰어나서 투자를 이렇게 많이 받았다', '여러분이 아는 이 대기업에서도 협업을 할 정도다', '이 회사 사람들이 성과급을 이렇게 많이 받을 정도로 이 회사 돈 잘 벌고 잘 나간다'. 이런 식으로 풀게 된다.


사실 취재를 하다 보면 취재원과 동화되기 때문에 그들이 하고 싶어하는 말을 기사에 넣고 싶다는 욕심을 느끼게 된다. 웬만한 기자나 콘텐츠 크리에이터들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 회사와 우리 기술을 잘 이해하고 깊게 풀어 준 기자 없다'는 말, 왜 안 듣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런 욕심을 잘 접어두고 '사람들이 이 기업/사람에게 뭐가 가장 궁금할까?'부터 잘 풀어내는 사람이 실력 있다고 본다. 아무리 잘 써도 사람들이 안 읽으면 소용없으니까. 기업에 대한 대중의 일차적인 관심을 구축하는 데에 성공한다면 우수성이나 차별성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는 언제고 오지 않을까.


최근 '스우파2'에서 탈락한 레이디바운스를 향해 모니카가 한 이야기는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모든 걸 초급적이고 단편적인 언어로 풀어 버리는 미디어에 대한 냉소를 넘어서, 왜 미디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고 왜 그걸 수용하는 게 더 이득인지 깨달은 사람의 말이었다.



(위의 영상 0:40부터)


"저도 결승전을 못 갔어요. 근데 그때가 너무 생각이 나요.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무대가 있었거든요. 근데 아직도 못 했어요. 그래서 그 아쉬움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조회수가 주는 슬픔이 얼마나 큰지 알아요. 고작 숫자인데. 저번에 누가 그렇게 얘기했죠. 다 우리 팀을 부정하는 것 같다. 저도 그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너무 알아요. 그리고 그 부정하는 사람이 제가 된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승부는 대중들에게 춤이라는 것을 숫자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게끔 제작진 분들이 배려하신 프로그램이라고 생각을 해요. 모두가 그 열정을 느낄 거예요. 여러분들의 실력을 느끼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의 삶을 느낄 겁니다. 그리고 용기를 얻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 너무 자랑스럽고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제작진이 아닌 출연자의 입에서 나오다니. 모니카는 정말 시야가 넓은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스우파 제작진이었으면 울면서 자막 달았다. 절대로 편집하고 싶지 않은 멘트였을 거다.



어쩌면 중간에 있는 존재, 말 그대로 '미디어'들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대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그들이 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대로, 전문적으로 보여주고 싶지만 동시에 대중의 솔직한 궁금증이 가 닿는 지점부터 콘텐츠를 풀어내야 하는 어려움. 둘 중 어느 한 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는 것도 일종의 업무 방임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렵고 심도 있는 세계를 어떻게 조금이라도 덜 왜곡되게, 하지만 재미있고 흥미롭게 전달할지 고민하는 것이 미디어들의 의무고... 그게 어려우니까 돈 받고 이 일 하는 거 아닐까. 하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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