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코어 라이터 프로젝트 (1)
하드코어라는 말은 대체로 서브컬처 분야에서 쓰인다. 그리고 아주 대부분은, 19금 콘텐츠, 그러니까 포르노에 주로 쓰인다. 명사를 관형적으로 꾸며주어 아주 극단적이거나 강렬한 속성을 지녔음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하드코어 포르노, 하드코어 펑크, 하드코어 유저, 하드코어 힙합, 하드코어 코믹스 등등.
원래 영어에서는 조직의 핵심 집단, 강경파라는 의미도 있었던 모양이다. 핵심 집단이라고 하면 원의 가운데가 떠오르는데, 강경파라고 하면 긴 스펙트럼 막대기의 양쪽 끝이 생각난다. 하드코어는 과연 더 안쪽에 위치한 것을 말하는 걸까, 더 바깥에 위치한 것을 말하는 걸까. 일단 지금 나의 감각에서 하드코어, 라고 하면 안보다는 바깥에 가깝게 느껴진다.
"다들 하드코어 라이터야." 김맥주의 그 말에서 이 글은 시작됐다. (글의 흐름을 위해 경칭은 생략한다.) 그때의 하드코어는 '열심히' 정도의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드코어라는 말에 이토록 집착하며 쓴 글을 보면 김맥주는 뭐라 할지. 사실 그 말은 나보다는 매일 글쓰기를 실천하는 정하이볼에게 더 맞는 말이라고 본다. (성실한 쓰기의 결과로 정하이볼은 이제 질투 날 정도로 잘 쓰는 사람이 됐다!)
나는 하드코어 라이터인가? 가끔은 그렇고 아주 대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감한 주제를 피하며 나에 대해서밖에 쓸 줄 모르는 내가 감히. 퇴근 후 술 한 잔 마시고 할거 다 하고 들어와서 취한 머리로 대충 인스타그램에 한두 줄 두들기는 내가 감히.
독자가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적인 글쓰기를 하셔야 해요.
사적인 글쓰기만 하면 책임지지 않는 글밖에 나오지 않아요.
은유, '다가오는 말들' 출간 기념 강연회 @스틸북스, 2019.03.29.
어크로스 인스타그램에서 재인용
며칠 전, 블로그를 정리하다 내가 3년 전 만들었던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봤다. 복수전공 수업 과제로, 학과 학생회비 문제를 조사했던 영상이었다. 욕도 먹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응원을 받았던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영상을 만들면서 완성도에 좌절했고, 결국 수업에서만 공개하고 유투브에는 올리지 않았다. 흑역사로 기억하고 있는 프로젝트였다.
영상을 보면서 계속 놀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단 말인가. 이렇게 많은 것을 찾아봤단 말인가. 이렇게 좋은 주제를 선정했단 말인가. 그런데 공개하지 않았단 말인가. 3년 후의 내가 영상을 다시 보고 느낀 감정은 아까움이었다.
예술대학 전공생인 동시에 저널리스트를 지망하던 그때 내가 꼭 이야기해야 했고, 잘 이야기할 수 있던 주제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 봐도 옳다. 그런데 고작 작은 두려움과 완벽주의 때문에 마지막 단계를 포기했다. 그때 내 인터뷰에 응해 줬던 20~30명의 영상 취재원, 그리고 구글 설문조사에 응해줬던 70명 가량의 익명 취재원과의 약속도 어기고. 스스로와의 약속도 어기고.
그때 나를 꺾었던 마음은 3년 동안 스멀스멀 자라 나의 코어를 점령하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비겁해진다.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순간이 늘어날수록 마음에 드는 글을 쓰는 날도 줄어들고 있다. 페미니즘이나 지적장애나 가난이나 차별에 대해 쓰지 않으면서 다른 일에 대해 쓰는 건 기만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일상적으로 발언을 삼켰다. 매일 얼굴 볼 사람들과 서로 힘 빼고 싶지 않았다. 다대일의 힘겨운 상황에 나를 던져 넣고 싶지 않았다.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말들을 매일 삼켰더니 어느 새 소화가 되어버린건지 요즘은 잘 역류하지 않는다.
입장을 공공연하게 보여주는 일을 피했다. 공적인 글쓰기가 두렵고 독자가 두려웠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주장하고 설득하고 입증해야 하는 책무에서 나를 보호했다. 저런 당연한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공들이지 말자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다르지 않다. 둘다 본질은 생각과 주장이다. 따라서 언쟁으로부터 나를 보호한 것은 글쓰기로부터 보호한 것이기도 했다. 글이 내게서 달아난 게 아니라 내가 글에서 달아났던 거다. 제 스스로 저지른 일인줄도 모르고 나는 매일 글 쓰는 마음을 그리워했다.
하드코어 라이터가 되는 것. 글의 초점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바깥으로 내던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오늘은 무엇을 했다 어떤 것을 느끼고 있다 정도의, 내 의식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나의 가장 바깥, 사회와 가장 격하게 부딪치는 빨간 경계선을 강렬하게 문지르는 일. 그 경계선 위에 아픈 딱지를 덕지덕지 붙여 그 지점의 내 생각을 도드라지게 하는 일. 말 그대로 하드코어(강경파) 작가가 되는 일이자 하드코어하게(아주 심하게) 글쓰기에 몰입하는 일.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하드코어 라이터 되기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