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일이었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국어담당이었는데, 주번(매일 혹은 매주 돌아가는 당번)들에게 수업 전에 명언을 칠판구석에 적어놓으라 했다. 당시 인터넷은 당연히 없었지만,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내용이나, 신문이나 책에서 찾아 적는 아이들이 대부분이 이었다. 혹자는, 본인이 뻔지르르할 법한 글귀를 적당히 적는 아이들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명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어떠한 사건에 대해 당시 유행처럼 유명해진 말, 예를 들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혹은 마터 루터 킹 주니어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명언이면서도 뭔가의 시대상을 반영한, 그래서 그 말이 유명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와는 다르게 내가 말하고 싶은 명언은, 나는 그들의 유언과도 같은 것이라 본다. 또는 [내가 살아보니 이렇더라. 그러니 너희들은 시간낭비하지 말고 이렇게 하면 좋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처음이다. 그리고 매일매일이 같은 삶의 반복이라 내가 살고 있는 것인지 조차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문득 [나는 왜 살고 있지. 나의 삶이 의미는 뭔가]에 한두 번쯤 고뇌하고 나면, 뭔가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삶의 의미를 조금씩은 이해할 나이가 되지 않나 싶다. 아쉬운 건, 그 이해를 좀 더 어린 나이에 했다면, 나의 인생은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갔을지 모른다는 후회가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 나는 그때의 나를 후회하진 않지만, 지금과는 많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시간은 금이다]라는 고전 명언을 이해하는데, 꼬박 40년이 걸렸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내가 지키는 몇 가지 말들을 적어본다. 이걸 보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쉽지만,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분명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다양한 표현으로, 심지어 NIKE의 Just do it나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Just do영상을 봐도 알겠지만, 그냥 하면 된다. 우선 작은 거부터 말이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지. 일찍 일어나서 동네 한 바퀴를 뛰어야지] [이번 주 주말에서 등산을 해야지] 등등 우리는 수많은 [~해야지] 계획들을 세우면서도 막상 안 하는 경우가 많다. 귀찮음이며, 생각을 많이 하면 할수록 자기 합리화에 빠진다. [내일 출근인데, 오늘 너무 무리하면 안 돼. 역시 등산은 무리야. ] [이번 주는 너무 힘들었어. 이럴 때는 많이 자야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어.]등등의 나름의 붙여, 결국은 계획이 무산된다.
방법은 심플하다. 보통 우리가 세우는 계획은 [나에게 좋은 것]들이 많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빨리 시작하는 것도 인생에서 좋은 것이고, 등산을 하는 것도 신체활동에 좋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하면 된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면, 군말 말고 일찍 일어나면 된다. [등산 가야지] [동네 한 바퀴 뛰어야지]하면,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옷 입고 신발 신고 나가면 된다.
이 단순한 내용을 나는 50살 가까워진 시점에서 이해했으니, 지난 시간이 나는 너무 아깝다. 그 게으름에 지키지 못한 나와의 약속이 너무 야속하기도 하다. 이 간단한 내용을, 이제 와서 이해하다니...
점점, 내가 하는 일은 매일매일의 반복이고, 뭐가 잘하는 건지, 뭐가 잘 못하는 건지도 모르고 산다. 이젠 내 주변에 나에 대한 존재의 의미를 인식시켜 주는 사람들도 적어진다. 나의 선의는 그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 버리는, 그래서 나의 행동에 대해 칭찬해 주는 이가 점점 줄어든다. 40~50대의 가장들이 집에서 느끼는 감정중에 하나가 무력감인데, 그 무력감의 근본에는 가족 구성원들로부터의 무관심이 많이 작용한다. 이건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못하지만, 그럴 때 이걸 써먹으면 된다.
'넌 오늘 너무 잘했어'
위에 [그냥 하면 된다]와 연결하면 조금 이해하기 쉽다. 실제로 나는 지난주 토요일 아침에 5km 러닝을 하고 들어와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에도 뛸지 말지가 개인적으로는 꽤 중요했다. 당연히 [너무 더워. 이러다 병나... 내가 무슨 20~30대도 아니고, 이 정도면 됐어]라고도 잠시 생각해다. 그러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침에 눈뜨고 그냥 옷 입고 신발 신고 나와서 5km를 뛰었다. 몸은 천근만근. 그렇게 40여분을 뛰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수십 번 나 자신에게 말했다.
넌 오늘 너무 잘했어. 너무 멋있다. 넌 좋은 선택을 한 거야.
별 것 아닌 거 같아도, 뭔지 모를 전율이 몸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뿌듯하다. 비록 나의 몸은 피곤하지만, 나의 기분은 최상이었다.
이와 같이, 명언까지는 아니지만, 삶의 좋은 말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나의 삶에 많은 이로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선대의 사람들이 살아보니, 이렇더라, 저렇더라를 말해준 것에 불과하겠지만, 지금이라도 이해하고 몸에 익혀 쓰려고 한다면, 그래도 남은 내 인생은 조금은 풍족해지리라 믿는다.
물론, 요즘에 나는 장자크루소의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나, 비트겐슈타인의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와 간디의 [네가 보기 싶은 세상의 변화를 스스로 실천하라]와 같이, 이미 뭔가로 묶여있는 세상에 대해, 나의 방식과 나만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깨닫는 그 무언가를 치열하게 고민 중에 있다. 꽤 많은 철학자들에게서 비슷한 결의 명언이 많은 것을 보면,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알려주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명언은 나에게 [야. 내가 살아보니깐, 인생이 이렇더라. 너도 같은 인간이니깐, 나중에 비슷하게 생각하게 될 거야. 근데 좀 빨리 알아두면 여러모로 좋아. 그러니깐 너도 참고해 둬]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