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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하 Oct 11. 2020

나는 이런 정신과 의사를 내 주치의로 선택한다

장은하의 정신건강 칼럼



나는 이런 정신과 의사를 내 주치의로 선택한다     


“한 시간 반 이상은 기다리셔야겠는데요”


며칠 전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급하게 인데놀 1알이 필요했다. 평소 다니던 곳은 집에서 1시간 반 거리. 멀리 갈 시간이 없어 집 앞에 새로 생긴 정신 건강 의학과를 찾았다. 매주 수요일은 예약 없이 가도 되는 날. 오픈 하자마자 갔는데도 내 앞엔 벌써 7~8명의 손님이 대기하고 있었다. OO예술종합학교라 써진 가방을 메고 열심히 대본을 보고 있는 20대 초반의 여대생부터, 3개월째 잠을 못 잔다며 남편 손을 꼭 잡고 오신 할머니까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다양해 보였다. 


여전히 정신과에 대한 편견 때문에 방문을 꺼리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대학병원은 물론이고 개인병원 역시 손님이 없어 고민하는 정신과 의사들은 드문 것 같다. 정신 건강 생태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노력 덕분에 확실히 정신 건강 의학과에 대한 문턱이 낮아졌다. ‘정신과 의사를 한 번 찾아가볼까?’ 용기를 냈다면 다음은 ‘그럼 어떤 병원, 어떤 의사한테 가야할까?’라는 고민을 마주하게 된다. 


“들어가자 마자 의사가 시간 없으니까 빨리 말하래요. 다른 과보다 비싸면서 무슨 시장처럼 빨리 처리하려는 느낌이었어요.”


“상담 잘해주는 정신과 의사 10년 동안이나 찾아 헤맸어요. 마음 아프고 살기 힘든 사람들 상대로 비즈니스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의사든 상담사든 사람을 대하는 마인드가 정말 천차만별입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게 그만큼 괜찮은 정신과 의사가 별로 없고 찾기 힘들어서 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옮기고 싶어서 옮긴 거 아니였거든요. 별로여서 옮겼었죠.”


만약 별다른 생각 없이 ‘집에서 가까운 정신 건강 의학과에 가야지’라고 생각했다면 당신 역시 이들과 같이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 정신 건강 의학과 방문이 처음이라면 더욱 더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첫 번째 방문한 곳에서 어떤 상담과 진단, 어떤 약을 처방 받는지에 따라 향후 경과에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첫 번째 받은 서비스에서 되려 상처를 받거나 큰 실망을 하게 되면 그 이후 아예 마음을 닫고 더 이상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즉 도움을 받으려 갔다가 공감능력이 완전히 결여된 의사를 만나 심각한 상처를 입기도 하고 조기치료의 중요한 기회 자체를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 나에게 최선의 정신 건강 서비스를 제공해줄 주치의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온라인 상에는 정신 건강 의학과, 정신과 의사의 서비스에 대한 부정적 후기가 난무하지만, 멘탈 헬스 코리아라는 정신 건강 컨슈머 무브먼트 단체를 운영하며 수집한 수 많은 소비자 후기에는 ‘생명의 은인, 나를 다시 살게 해준 의사’로 평가받는 정신과 의사들이 의외로 많이 존재했다. 이들은 사람들이 마음의 병을 회복하도록 돕는 의료적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할 뿐 아니라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임무, 고통의 경험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와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지 함께 고민하며 발전을 도우려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진단명, 그것을 뛰어넘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하는 의사의 진실한 관심과 호기심, 신뢰로 맺어진 인격적인 관계는 환자로부터 회복의 확신과 희망을 끌어냈다. 나 역시 운이 좋게도 정신과 의사로서의 소명이 남다른 의사 분들을 진료실에서, 또 업무 현장에서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이달의 친절 의사상, 다른 과는 다 있는데 왜 정신 건강 의학과만 없는지 모르겠어. 나도 고객들한테 평가 받고 싶다고!’라고 말하는 한 대학병원의 교수님. ‘서비스 퀄리티에 대한 소비자 평가가 정말 잘 이루어지고, 그런 병원들이 잘 되게 하는 시스템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거에 신경 안 써도 되고 말이죠. 그럼 나는 자신 있어요’라고 말하는 개원의 선생님. 


‘아 또 얘기 길어지겠구만, 밀린 메일이나 체크해야지’라며, 환자가 뭐라 얘기하든 지루하게 모니터만 응시하는 의사보다는 한 사람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마음의 변화에 진실한 호기심을 느끼고 사회학, 철학, 신학, 심리 등 다양한 지식을 더해 환자의 모든 측면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의사 분들이 더 알려지고 잘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야 정신과 의사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부정적 인식이 사라질 수 있고, 소비자들은 의심과 불신보다는 의사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 치료에 임할 때 더욱 더 자신의 회복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정신과 의사를 내 주치의로 선택했다’를 주제로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나의 경험을 정리함과 동시에 10년 이상 정신 건강 의학과를 이용해본 프로 정신 건강 컨슈머 130여 분의 인사이트를 더했다. 수 년을 헤맨 끝에 만난 내 주치의. 과연 어떤 것이 달랐을까. 어떤 의사를 찾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초보 컨슈머들, 혹은 지금 좋은 치료를 받고 있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아 마지못해 다니던 곳을 다니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의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개인적이고 다양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의사는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은 ‘좋은’ 치료사를 찾는 나만의 기준을 수립하는 데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정신과 의사를 선택할 때 아주 기본이자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의사의 ‘자격’과 ‘전문분야에 대한 경험 숙련성’에 대해 충분히 조사하는 것이다. 


가장 쉽게는 병원 홈페이지에 방문해 치료진 소개를 확인하는 것이다. 의사 약력 소개는 아주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원장 약력 소개가 아예 없는 병원도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어느 의과대학을 나왔고, 의학 석사, 박사는 어느 대학에서 했으며, 어디서 수련을 받았고 전공의와 전문의는 어디서 취득했는지, 또 졸업과 취득한 ‘년도’까지 표시해놓은 병원이라면 가기 전부터 기본적인 신뢰가 생긴다. 이 분의 경력이 몇 년인지도 파악할 수도 있다. 


약만 받는 것이 아닌 훌륭한 상담 퀄리티를 기대한다면 상담 공부와 수련을 어디서 했고, 얼마나 오랜 기간 상담 서비스를 제공해왔는지 확인하자. 상담 공부를 별도로 하지 않은 의사를 찾아가 ‘상담 실력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예를 들어 정신분석의 경우 미국 어느 그룹 정신 분석 연구소에서 수료를 했고, 누구에게 몇 년 간 분석을 받았으며, 몇 년도부터 어떤 상담을 본인이 진행해왔다고 자세히 소개를 하는 의사 분들도 많다. 약만 받고 오는 게 아니라 질 좋은 상담을 원하시는 분들은, 상담 공부를 추가로 하신 의사 분들을 찾아간다면 일반 정신과 진료를 받을 때에도 내가 기대했던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상담 받다가 상처만 받고 올 확률은 대폭 줄일 수 있다. 


물론 반드시 유명한 의과대학을 나오고 의학박사, 교수라고 해서 무조건 우리가 찾는 훌륭한 의사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의사의 학력과 자격에 대한 정보 제공은 소비자의 알 권리이고, 소비자들에 대한 배려이며 충분히 정보가 제공되었을 때 의사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치료 효과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지만 의사의 경험이 중요하다.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 설명서》 책에서는 정신과 의사가 어떤 상황에 대해서 임상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환자에 대한 파악을 더 정확히 할 수 있고 치료 또한 더 잘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개원을 하는 분들은 대학병원이나 큰 정신 병원에서 오랜 기간 경험을 쌓고 중년 이후에 개업을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정말 젊은 의사분들이 원장으로 있는 병원도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물론 젊은 의사 분들이 좀 더 오픈 마인드일 수 있고, 얘기가 잘 통하고, 열정이 있고 등등 장점도 많다. 그러나 얼마나 그 분야에 많은 환자들을 치료 했는지, 그 분야에 필요한 훈련이나 기술, 경험이 풍부한지 따져보는 것은 중요하다. 만약 인터넷에서 그 정보를 찾을 수 없다면 직접 병원에 물어보도록 하자.


두 번째, 의사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평가해보는 것이다.


병원에 가기 전 의사의 자격 증명과 경험을 조사했다면, 이제 병원에 갔을 때 체크해야 할 것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부분에서 병원을 추천하느냐 비추하느냐 판단을 하게 된다. 의사의 진료 방식 혹은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평가를 위한 체크리스트이다.  


1)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인지 느껴본다. 

뭐 좀 말해보려고 하면 ‘시간 없으니까 빨리 말해라’라고 한다든지, 다짜고짜 반말 하시는 분, 그리고 차가운 표정으로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 분을 보면 ‘에휴 내가 뭔 얘기를 하겠냐. 입 닫고 약만 받아가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그 의사와 마주 앉았을 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지, 혹은 냉담하고 불편한 느낌인지는 내가 느끼는 그 느낌이 맞다.

나는 내 주치의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그의 환한 미소가 떠오른다. 나를 마주할 때 짓는 환한 미소는 순간적인 몇 초이지만, 그 표정과 미소에 대한 기억은 때때로 영원히 지속된다. 따뜻한 미소는 마음이 지친 사람에게 큰 안식이 된다.


2) 내가 요구하는 정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응대하는지 확인해본다.

나의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답변하는지 체크해 보는 것이다. 회복에는 몇 개월 또는 수 년이 걸릴 수도 있기에 상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데 관심이 있고, 호기심이 있고, 의사 결정 과정을 존중하는 의사를 찾아야 한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증거를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의사인지 무시하고 발끈하는 의사인지 판단해보라. 


예를 들어 처방해준 약에 대해서 ‘이 약은 어떤 약이에요?’ 물었을 때, ‘일단 드셔보세요’라고 귀찮은 듯이 말한다거나, 의학적인 지식을 얘기했을 때, 기분 나쁘다는 듯이 ‘당신 의사세요?’라고 반응하는 것. “제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 건가요?”라고 물었을 때 “그건 환자분 본인이 더 잘 알텐데요.” 말하는 의사라면 당장 병원을 바꾸길 권한다. 


3) 짧은 시간이라도 진심과 열의를 가지고 진료에 최선을 다하는 지 확인한다.


아무런 감정 없이, “잠은 잘 주무세요? 식사는 잘 하세요? 요즘 뭐 특별한 건 없으세요?” 갈 때마다 똑같이 물어보면서 관망하는 의사의 태도는 의사를 찾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결코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사는 데 굉장히 어려움을 겪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치게 된다. 인간의 모든 실패는 바로 이런 유형의 인물에서 비롯된다.”

내 주치의가 인간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는 사람으로 느껴진다면 그곳을 굳이 계속 다닐 이유는 없어 보인다. 


세 번째로는 주치의의 약 처방 스타일이 어떤지도 체크해야 한다. 

약 조절을 섬세하게 잘하고 약물 치료 효과가 좋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환자에 대한 파악을 잘한다는 것이다. 기계적인 약 처방이 아니라 환자가 표현하는 것들을 감각적으로, 종합적으로 잘 캐치하여 약을 조절해나가는 분들이 있다. 환자의 얘기를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기록하고 쌓아놓고, 차트를 보고 또 열심히 연구하시는 분들이 환자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높은 좋은 의사라고 볼 수 있다. 약을 추가하거나 바꿀 때도 의사 독단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최대한 반영하면서 의논하듯이 맞춰나가는 의사를 추천한다.

소비자들 역시 치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함께 노력해야 한다. 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의사도 있지만, ‘일단 드셔보세요’ 하는 분들도 있다. 의사에게 약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해야 하며, 인터넷과 커뮤니티를 통해서라도 자신이 먹는 약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아야 한다. 효과와 부작용, 그리고 하루하루 컨디션 변화를 관찰 기록하면서 의사와 상의해나가야 한다.


네 번째, 때때로 의사의 젠더도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정신과 의사는 다양한 성 정체성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이들을 대하는데 능숙해야 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지식과 최근 이슈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지, 관련 상담이 가능한 분인지 첫 진료 때 대놓고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온라인 상에 퀴어 프렌들리 병원 명단이 있지만 이 병원들도 퀴어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다른 병원에 비해 좀 있다는 것이지, 퀴어 상담을 전문적으로 잘 하는 곳들은 아니라는 것이 아쉬운 현실이다. 미국이나 유럽권 국가들은 의사나 상담사 자신이 LGBT라고 오픈하고, LGBTQ+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곳들이 많다. 국내 유명 대학 상담센터의 한 상담학 박사라는 분이 ‘퀴어가 뭐예요?’라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던졌던 질문은 충격이었다. 


마지막으로, 다른 소비자들의 만족도와 평가를 확인하고 나에게 맞는 곳을 추천받는 것이다. 


‘나한테 딱 맞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아니다. 더 이상 운에 맡기는 시대는 지났다.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것이 투명해졌으며 소비자들은 서로 연결되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한다.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소비자들이 남긴 리뷰와 인사이트를 누구나 언제든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 의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읽으면 환자가 그 의사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의사는 질문에 얼마나 성실히 대답하는지, 약을 처방하는 방식과 진료 방식, 친절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사사건건 잘잘못을 따지는 의사, 환자 탓을 하는 의사, 혼내는 의사, 진료 시간에 수업하는 의사, 범죄피해에 대해 2차 가해를 하는 의사를 만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1,000년 전 인간의 정신건강을 관장하는 것은 오직 신의 영역이라 믿었다. 그리고 정신의학이 발전하기 시작한 수 십년 전부터는 이 문제를 다루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정신과 의사들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전부터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스마트한 컨슈머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서로 연결되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다. 오늘날 정신건강을 이야기하고 생태계를 건강하게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은 정신건강 서비스를 소비하는 개개인이며 즉 우리 모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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