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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Oct 26. 2023

좋은 나 수집가

동기, 동기부여. 긍정적 자기개념

  내가 열어젖히기는 힘들어서 미루고만 있다가 불어나는 부담감과 불편함을 모른 체 하고만 있는 것. 그러다가 누군가가 빵! 하고 터트려서 결국은 날 움직이게 하는 것은?

'시작'

이 시작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월요일 아침이라는 것은 그 부담스러운 시작들이 모두 내게 달려드는 시점이다. 분주한 워커홀릭 월요일이 가져오는 온갖 시작들은 대부분 숫자로 나를 압박한다. 숫자는 꽤나 단호하고 집단적이다. 8시 30분까지, 9시까지, 12시 30분까지. 이런 식으로 나와 내가 속한 집단에게 공통적인 가이드라인을 세워놓곤 한다.



  아무리 봐도 주말의 여운이 남겨진 나와는 결이 다르다. 주말의 나는 어떠한가. 그야말로 느긋한 개인주의자가 아니던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느지막이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주말 루틴으로 아이 옷 빨래를 돌리고 소파에 나를 던진다. 소파의 품에 안겨 스마트폰을 켜고 자잘한 텍스트들을 읽는다. 밥을 먹고 싶으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아이만 챙겨주다가 생각한다. 오늘의 가장 중요한 생각. 오늘 뭐 하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늘은 뭐 하고 놀지?



  이러 내가 어떻게 숫자의 세상으로 쉬이 진입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도 안다. 투정을 부려도 유치원 버스는 왔고,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어김없이 머리를 감고 젖은 머리카락을 내 걸음으로 휘휘 말리며 30여분을 걸어 학교에 도착할 때쯤 반곱슬 사자머리를 한 채로 12년 개근을 해낸 사람이 나다.



  "응, 너라면 해냈겠지."

이불 밖으로 나가기엔 온갖 게으름이 떠다녀 어수선한 내 마음에 이 목소리가 천천히 떠올랐다. 느린 속도는 때론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며 지축을 뒤집는 일을 하곤 하는데, 이 목소리가 그랬다.



  한창 코로나로 내일을 예측하기 어렵던 시기였다. 코로나의 직격탄으로 전례 없이 4월에야 겨우 문을 연 학교는 혼란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배움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은 학생도, 선생님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우리는 배움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기에.


  

  등교와 원격 수업이 병행되었다. 예측 불가능과 그에 따른 혼란을 긴장과 불안으로 감수했다. 출석수업을 했어도 마음을 졸였다. 행여 어제까지 수업을 받던 학생이 오전 8시 30분에 확진 문자를 받으면 오후엔 다 같이 전수조사를 받아야 했다. 무사히 수업이 끝난 날이면 과연 다음 날은 수업을 할 수 있을까. 행여 몇몇이 보건소에 가서 확진을 받고, 그 수가 기준치를 넘으면 수업 중지인데 당장 내일 수업은 어떻게 하지?



  결국 그런 날들이 오고야 말았다. 한 밤에 온 연락엔 내일 수업을 원격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소식이었고 불행히도 나는 내일 수업을 현장 수업으로만 준비했기에 원격 수업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었다. 내일 오전 9시까지는 수업을 업로드해야 하는 상황. 지금이 이미 늦은 밤인데.



  언제나 마감엔 불꽃 파워가 혈관에 흐르는 건 아마도 인간 진화의 역사가 아닐까. 책상에 앉아 현장 수업 내용을 원격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만들어 놓은 파워포인트에 내 설명을 입혔다. 미처 마이크를 챙겨 오지 못한 탓에 생목소리를 녹음했는데 기특한 노트북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내 목소리를 제 기기에 넣어주었다. 참 똑똑하기도 하지. 강의 중간중간에 관련 영상도 끼워 넣으며 2시간 분량의 강의 하나를 완성했다. 2시간 강의자료를 만들기 위해 4-5시간을 써야 했는데 그렇게 2시간을 더 만들어야 했으니 아마도 그날 잠을 자기는 글렀구나 여기던 밤이었다.


  

  새벽 동이 틀 때쯤 4시간 분량의 수업을 완성했다. 이 순간, 노동의 신성함을 쇠뇌받으며 자란 나는 스스로가 대견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피로감이 온 어깨와 목을 덮쳐왔는데 목을 뒤로 젖혔을 때 느껴지는 통증도 시원하다 느낄 정도였다. 그 온 밤의 피로가 내겐 훈장과도 같이 느껴졌다. 나는 해냈으니까.



  업로드를 하기 위해 빨리 감기로 다시 수업 영상을 점검하는데, 그 훈장이 내 뒤통수를 쳤다. 수업 동영상 하나에서 영상 자료를 삽입한 후, 그 영상을 끄지 않고 내 설명 녹음을 동시에 진행한 것이다. 화면엔 수업 ppt가 보이는 와중에 뒷 배경으로 자료영상 소리와 내 설명이 동시에 녹화되었다. 그것도 마이크 없이 녹음한 내 목소리가 듣기 싫은 잔소리 같은 bgm으로 깔린 듯했다.



  뿌듯함으로 둔갑한 피로는 짜증과 만나 본연의 피로함보다 더 큰 화가 되었고, 자비 없이 내 마음에 떨어져 핵폭탄이 되고야 말았다. 계속해서 분열하는 폭탄을 두고 보기엔 내겐 시간이 없다. 언제나 단호하고 자비 없는 건 시간이라는 숫자 아니던가. 다시 할 수밖에.



 해당 부분은 다시 녹화를 했고, 그 녹화한 부분과 만들어 놓은 부분을 편집해서 동영상으로 변환을 하느라 꽤나 오랜 시간을 또 써야 했다. 우여곡절의 곡절을 여러 번 지난 후 다행히 업로드를 했다. 다급함과 분주함, 뿌듯함, 핵폭탄급 짜증을 겪어낸 그 밤과 새벽의 내 마음과 다르게 업로드된 영상은 너무나 평온하고 깔끔하고 자연스러웠다. 늘 그랬다. 자연스러운 결과를 위해서는 무수히도 반복적이고 자잘하고 큰 실수들이 깔려있기 마련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교수님과 나누었다. 교수님과 나는 마스크를 쓰고 마주 않아 서로가 겪은 혼란의 경험을 나누었다. 나는 그제야 교수님께 세상에 이렇게 다급한 일도 있었다며 하소연을 했고, 그때 교수님께서 해주신 한 마디였다.


  "넌 그래도 해냈겠지."



  내가 존경할만한 사람이 내게 해주는 한 마디는 힘이 세다. 그 말들을 수집하며 나는 내가 그래도 이건 잘하는구나 하는 효능감을 얻기도 하고,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는 자기 개념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그 목소리들은 내 능력을 의심했던 날, 원하던 일에 실패했던 날, 내가 보잘것없어 보이는 날들이 만든 뿌연 앙금으로 내 마음음이 엉켜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천천히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 목소리가 놓인 지점은 파동을 만들어 잔잔하게 내 마음의 앙금을 걷어내어 준다. 나는 그 목소리라는 구명튜브를 타고 겨우 숨을 쉬고 올라온다.


 

  그 목소리에 더해 내가 가진 긍정적인 면들이 돋보였던 경험들을 편집해서 이어 붙여본다. 나 이런 사람이야. 나는 좀 느리긴 하지만 내가 맡은 일은 책임감 있게 해내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 내 비록 어제 남자친구와 헤어졌지만, 내일 대학원 발표과제는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 그것도 꽤나 괜찮게. 대학원 과제로 논문을 해석해서 발표하는 과제 말미엔 반드시 내 생각을 더해서 제출해야 하는 사람. 제시된 가이드라인을 채운 후, 내 것을 하나 더해야 일이 끝냈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



  긍정적인 나를 수집하여 편집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이만큼이나 책임감 있고 내 일에 진심을 다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를  긍정적 자기 개념 하나를 마음에 꽉 쥔다. 그 덕분에 나는 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 가을 아침은 스산하고 나는 추위에 취약한 사람이지만, 나는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밀려드는 시작들을 열어젖히고, 심지어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다. 내 과거의 경험과 나를 다독여주었던 목소리들은 그 확실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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