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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May 27. 2024

아프니까 마흔이다

  결코 오늘이 월요일 아침이어서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월요일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학교 수업을 마치면, 오후에는 대학 강의를 나가는 날이긴 하다. 작년부터 늘 해오던 스케줄이기에 오늘이라고 딱히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다. 금요일 오후까지 학교 수업 준비를 마치고 퇴근해서 주말 동안은 이번주 강의준비, 브런치에 일요일 연재 글쓰기를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아있기도 했지만, 이 두 가지 일로 온 주말을 보낸 것도 아니다. 토요일엔 아이와 지역의 유산 답사를 위해 시청에서 버스를 타고 지역의 중심지에 다녀왔고, 일요일 아침엔 아이의 과학 체험을 위해 축제 오픈런을 하고 오기도 했다. 야외활동과 노트북 앞 활동 간에 나름 균형 있는 주말을 보냈다.



  아니,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내 목이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내 목으로 하늘을 볼 수가 없다. 조금만 고개를 들라치면 어깨에서부터 시작된 통증이 등을 타고 손가락과 발가락 끝까지 찌릿찌릿 전기가 통한다. 이대로 콘센트에 내 손가락을 꼽으면 내 머리에 전구빛이 반짝할 지경이다. 운전의 매 순간이 두렵다. 정차했다가 브레이크에 발을 떼고 출발할때마다 찌릿찌릿 통증이 온몸에 흐른다. 관성 요놈! 내 차가 부아앙 출발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출발에 대한 반작용으로 몸이 자동차 시트에서 종잇장 하나만큼 떨어지는 순간마다 어김없이 통증이 온다. 얄짤없는 작용 반작용 덕에 정차도 무섭고 브레이크에 발을 떼고 출발하는 매 순간이 두렵다.



  이 순간 모든 것은 이유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괜찮았는데, 머리를 감고 나서 이러는 걸 보면 머리를 숙여서 머리카락을 감는 습관 때문일까? 평소만큼 노트북 앞에 앉아있었는데 뭐가 문제일까? 사실 지난 목요일부터 시작된 통증에 토요일에 수영장에 가서 자유형 팔 돌리기 몇 번 해두니 좀 나아지긴 했는데, 또 수영해달라고 몸이 보채는 걸까? 오늘은 절대 그럴 수 없는 스케줄인, 꽉 짜인 월요일인데. 내 목이 제발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었으면 싶다. 쉬는 시간에 유튜브에 목 통증 스트레칭 검색을 해서 좀 따라 해보며 내 목과 어깨를 살살 달래는 게 최선이다.



  목과 어깨 통증은 나의 불치병이자 반려 통증이다. 아마도 여고 시절부터 발병했던 것 같다. 공부를 하느라 내 어깨는 자주 아팠다. 한 번은 같은 반 친구가 내 어깨를 힘껏 주물러주어 아예 손까지 못 썼던 날도 있었다. 20대 때 온 시간을 나를 위해 쓰던 시절, 피부 마사지를 받으러 가면 어깨 마사지를 함께 해주셨는데 늘 관리사분이 바뀔 때마다 늘 같은 말을 들었다.

  "손이 들어가질 않네요. 스트레칭하셔야겠어요."

  "다른 사람 어깨는 그렇지 않나요?"

  "네, 피로하셔도 이 정도는 아니에요."

모든 사람의 어깨는 나처럼 딱딱한 줄 알았던 내 세계가 깨졌다. 아마도 나는 뼈가 2개 더 있나 보다. 쇄골뼈 위에 단단한 어깨뼈를 더해서 나는 208개의 뼈를 가진 게 틀림없다. 그때부터 내게는 작고 소중한 바람 하나가 추가되었다.

  '말랑말랑한 어깨의 세계를 갖고 싶다.'



  그땐 말랑말랑한 어깨 하나였으나, 마흔이 넘은 지금 내 꿈의 가짓수가 점점 많아진다. 불어나는 나이만큼 갖고 싶은 게 많아지는 이유는 아픈 곳이 늘어서이고, 그 빈도도 늘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주는 일주일 내내 통증의 한 주였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오금 통증에 시달렸고, 수요일과 목요일은 배란통이 찌릿찌릿 내 중앙부를 강타해서 나는 어쩔 줄 몰랐다. 그리고 목요일부터는 목통증이 시작되었다. 하나의 통증이 페이드아웃되면 동시에 다른 통증이 페이드인하며 내 몸을 지나갔다. 새로운 통증에 질 수 없었다는 듯 어김없이 더 강하고 오래 지속되는 나의 반려통증의 목소리에 이젠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봄부터 운동을 한다 한다 하고 말만 했다. 필라테스를 할까 성인 발레를 할까 고민하다가 봄이 지났다. 여름이 오면 수영을 할까 하다가 귀찮다고 접었다. 산책을 할까 하다가 행여 운동했다가 더 피곤해질까 봐 걱정돼서 소파에 누웠다. 거북이처럼 조금 쓰고 오래 살아야 지하는 생각을 품고 내 손엔 스마트폰을 쥐었다.  늘 운동 앞에 나는 나를 너무 아낀다. 그렇게 아끼다 내 몸이 똥이 되었나 보다.



  몸은 봐주는 게 없다는 건 마흔이 되면서 깨닫게 된 것 중 하나이다. 몸은 거쳐간 모든 것의 흔적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라면에 달걀 넣고 밥까지 야무지게 말아 뽀땃하게 먹은 날엔 어김없이 봉긋한 배가 안녕! 하고 인사한다. 맥주를 마신 다음 날 얼굴엔 동그란 보름달이 떠서 팽창된 얼굴에 화장이 잘 먹는다. 날마다 마스크팩을 해준 얼굴이 보름이 지나자 매끈해진다. 의식적으로 물을 마시고, 아침에 올리브 오일 한 스쿱씩 먹으니 가끔 내 얼굴이 물을 준 화분처럼 맑게 보이는 순간도 만난다. 수영을 배웠던 시기에 착 달라붙어있던 내 팔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금 축 늘어진 게 선명하다.



  어렸고 젊었던 시절에도 몸은 그랬다. 한결같이 봐주는 게 없었고 나의 생각과 경험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땐 아파도 흐릿했다면 지금은 선명하고 좀 자주 아픈 게 차이라면 차이이다. 어렸고 젊은 시절이 돈이라면 나는 그 돈을 이미 써보았기에 지금의 아픔이 서글프지는 않다. 다만 가볍고 경쾌한 몸을 누려보고 난 지금, 조금 잃어보니 건강의 힘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그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마흔다운 가볍고 경쾌한 신체를 위해 노력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한번쯤은 건강해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 여긴다.



  품위 있는 생각과 미소가 우아한 인상을 만들 듯, 내가 보살펴 준 몸은 맑은 얼굴과 곧고 탄력 있는 몸을 만든다. 마흔, 이젠 내 몸을 내가 알뜰살뜰 아끼고 보듬어주고 보살펴주어야겠다. 앉았다가 일어서는 단순한 움직임 하나에도 목과 어깨, 어깨 바로 아래의 등, 등 한 가운데 근육이 저릿하는 걸 느낀다. 단순한 몸의 움직임을 위해 그동안 수많은 근육이 애써왔음을 느낀다. 앉는 일, 앉았다 일어서는 일, 상대를 다정하게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일, 잠에서 깨어난 아이를 두 팔 벌려 꽉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는 일의 모든 순간에 내 몸은 온몸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내 몸은 매일 온 몸으로 온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기특하고 고마운 일이다. 이제라도 나를 내가 어여삐여기고 돌봐줘야할 이유이다.



  기특한 나를 위해 빨강, 노랑, 초록의 알록달록한 채소를 먹어주고, 물과 우유도 듬뿍 주고, 운동도 해주어야지. 명랑함과 건강이 나를 스쳐지나갈 수 있도록. 다음 글은 아프니까 마흔이다가 아닌 가꾸니까 마흔이다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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