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P 엄마! 어떻게 살아? 잘 살지.

육아 감사일기 #엄마의생각

by 주윤

고아한 샴페인 잔 바닥에서 황금빛 버블이 분수처럼 튀어올라 수면에서 잘게 부서진다. 조잘조잘 부서지는 버블만큼 우리의 목소리도 이 방에 가볍게 울려퍼진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설레임이 울려퍼지는 여기는 연말의 파리. 마들렌 사원 근처의 한 호텔이다.



"오늘이 12월 31일이니 밖에 한번 나가볼까?"

마들렌 사원 주변에 반짝이는 나무들, 그리고 설레며 오가는 사람들. 문을 닫았지만 거리의 밝음을 위해 남겨둔 듯한 상점의 쇼윈도 속 은촛대와 은식기들 위로 보드라운 크림빛 조명이 내린다. 온 누리에는 이미 은은한 황금빛 축복이 내렸다. 어쩌면 온 우주의 별들이 오늘을 위해 조도를 맞춘 듯 반짝이는 황금빛 별들이 온 나무에 내려있다. 그 거리를 걷고 있는 마음에도 벌써 반짝임의 여운이 담긴다.



마들렌 사원에서 콩코드 광장을 보고 우회전을 한 순간. 샹젤리제의 가로수는 방금까지 내가 마셨던 샴페인잔의 버블이 하늘을 향해 울러펴지고 있었다. 콩코드 광장에서 개선문에 이르는 일직선의 샹젤리제 거리를 둘러싼 양쪽 나무들은 기둥에서 시작된 크리미한 황금빛 버블이 가지쪽으로 반짝거리며 밤 하늘 속에서 부서진다. 나뭇잎에 걸린 반짝이는 푸른 나팔은 오늘의 축복을 온 누리에 터트리고 있다. 그렇게 오늘을 축하하고 다가올 새해를 온 몸으로 환영하는 새해가 샹젤리제에는 울려퍼졌다.



"사랑해"

"결혼해줘서 고마워."

이제 결혼한 지 갓 일주일이 된 나와 남편은 우리의 결혼과 새해를 온 세상이 반짝이는 샹젤리제에서 시작하게 된 것에 감격했다. 모든 호들갑과 축복을 이미 끌어모았는데도 아직 남은 게 있었나보다. 이 시각에 즉흥적으로 샹젤리제를 향해 걸었던 순간의 선택까지 운명으로 끄집어왔다. 나와 남편에게 뿌려진 것이 분명한 축복에 감격했던 밤이었다.



파리에 있던 시간동안 남편과 나는 걷고 또 걸었다. 걷고 또 걸어 에펠탑을, 봉마르쉐를, 오랑주리를, 오르세를, 나의 사랑 튀를리 공원을 걷고 또 걸었다. 목적지가 있던 날도 걷다보면 딴 길로 새어들어가는 게 재미였다. 파리의 골목이라는 유혹이 손을 건네면 덥석 잡는 게 배운 사람으로서 마땅한 에티튜드.



하늘은 시리게 푸르렀고, 건조한 겨울 바람은 우리의 뺨을 얼얼하게 했으나 그와 나의 걸음은 이어졌다. 그와 나는 서른을 갓 넘긴 탄력있는 다리를 가졌고, 투박하고 두꺼운 그의 손과 맞잡은 작고 오밀조밀한 나의 두 손 사이에는 시시한 농담과 신혼의 낭만이 조잘거리며 넘실거렸다. 세찬 겨울 바람이 불고 손과 양 볼은 불이 날듯 빨개지고 부르터도 신나게 노는 아이는 춥지 않다. 감정도 새것이 더 빛나듯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신혼부부의 걸음에 아무리 힘이 쎈 파리의 추위도 우리의 산뜻한 농담과 걸음의 열기에 산뜻히 승화될 뿐이다. 그렇게 일주일동안 대중교통 없이 우리는 걷고 또 웃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에도 아름다움의 유혹이 오면 덥석 잡았다. 쇼윈도의 다이닝웨어를 구경하기도 하고, 여느 잡지에서 보았던 것 처럼 추운 겨울에도 야외 테라스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셔보곤 했다. 걷다보면 가보고 싶던 곳을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그럴때면 마치 연예인을 보듯 그 상점에 미끄러짐을 당했다.



몽글몽글한 디저트를 볼때마다 마음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앙젤리나도 그랬다. 언젠가 가보고 싶던 곳을 이렇게 우연히 걷다가 만난다니. 파리는 그 자체가 어쩌면 운명을 위해 설계된 곳인지도 모른다. 쇼케이스에 진열된 폭신하고 입에 들어가자마자 없어질게 분명하며 가벼운 단맛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줄 디저트 중 겨우 2개를 골라 테이블에 앉았다.



참 나쁜 세상. 너무하다. 예상했던 것보다 아니 애초에 내가 예상할 수 없는 맛과 질감이었다. 나는 겨우 내가 지금껏 먹어온 케이크로만 앞으로 내가 먹을 케이크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앙젤리나의 케이크는 내 세상의 케이크가 아니었다. 오 마이갓. 이러지말아요. 난 이제 아마도 여기에 또 못 올 수 있단 말이예요. 그런데 나는 이미 앙젤리나 케이크를 먹어버린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아예 모르면 몰랐지, 이제 내 케이크들은 어디에서 의미를 찾나요.



나도 울고싶었다. 내가 한 입씩 먹을때마다 눈앞에서 작아지는 내 케이크를 볼때마다 느껴지는 상실감. 디저트와 커피를 마시고 문을 닫고 나올 때 나는 마치 막 이별한 여자였다. 지금의 이 가벼운 단맛의 기쁨을 누리던 내 자아와의 이별. 안녕. 내 앙젤리나 케이크를 먹던 자아는 여기 있으렴. 나는 간다. 아흑...



내 이별 노래의 시퀀스는 박원의 노력에서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인데. 내 세계에서 이별의 이유는 하나, 널 사랑하지 않는 것. 이 확실한 하나였는데 내 세계가 무너졌다. 사랑해도 어쩔 수 없이 헤어질 수 있다. 안녕. 앙젤리나.



"나중에 딸 낳으면 여기 꼭 데려와야겠다. 그치?"

내 이별의 슬픔 앞에 신혼의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가족의 시작에 상상의 인물이 등장했다. 아이. 상상의 동물 해태, 용, 유니콘처럼 내가 한번도 눈으로 보지 못했던 그 것. 그 새로운 세상의 단어 앞에서 내가 한 말은 더 날것의 마음이었다.



"아니, 우리 집에서 여자는 나 하나야."

"응?"

"우리집엔 나만 여자야. 알겠지?"



가끔 말은 현실이 된다. 사소한 스침이나 농담이 현실이 될때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는 서랍에 넣곤 한다. 운명 서랍에 새로운 손님을 들일때마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한땀한땀 의미를 새겨놓는다. 겨울의 파리는 푸른색 앙젤리나는 황금빛으로 한 땀, 갓 부부의 시시한 농담은 보라색으로 한 땀, 나의 아이는 색동으로 여러땀. 그렇게 내 기억의 바늘에 색색의 실을 꿰어 운명 서랍에 자수를 놓으며 산다. 그제야 내 삶도 어쩌면 반짝이는 특별한 이야기를 갖는다. 그 서랍을 닫고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다가도 내가 너무 별볼일 없어보일 때, 그 서랍 속 내 삶의 자수를 본다. 여전히 잘게 반짝이고 있는.



색동 자수를 더해가는 아이가 지금 커다란 침대에 3kg의 48cm가 되어 커다란 침대에 누워있다. 상상의 동물이 이젠 현실이 되어 내 눈앞에, 내 마음 따뜻한 곳을 움푹 패어들어와있다.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내 왼쪽 가슴에 아이의 온 몸을 대어 서로의 심장과 살갗을 맞대고 있다.



낭만의 세계에서 현실 육아의 세계로의 갑작스러운 진입, 아니 세계도 아닌 새로운 행성으로의 진입은 숨쉬는 공기도 발딛는 땅도, 내 몸도 다 처음이었다. 서른이 되어 나는 모든 처음들이 모두 내게 달려들고 처음들로 울려퍼지는 행성에 도착했다.



나는 지금 맹수같이 우는 사자도 만나고, 토끼같은 귀요미도 만나고, 청초한 사슴도 겨울잠 잘 자는 곰도 만난다. 목 길~게 빼고 두리번 두리번 큰 눈으로 관찰하는 기린도, 눈 꿈뻑꿈뻑하는 거북이도 만나는 육아 사파리가 매일, 매 시간, 매분, 매 초 펼쳐진다.



한 시간은 참 길지만, 하루는 참 짧은 육아 사파리의 세계. 이 세계엔 도무지 계획이란 게 들어설 구멍이 없다. 내가 아무리 파워 P라고 해도 이건 아니다.



오늘 나의 계획은 단 하나였다. 아주 소박한 하나. 아이가 늘 자는 시간엔 파리에서 사온 접시에 디저트를 올리고 차를 마셔야지. 사자와 기린과 토끼를 만나 정신을 못차릴 때도, 끝없는 어부바와 분유의 세계를 왕복할때에도 오늘 나는 이 시간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오늘 내 아가는 세상의 균형을 깨트리는 자. 엥~엥~으앙~.아기를 안은 채로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으니

엥~엥~으앙~앙~앙~앙~아~~ㅇ



아...잘 시간이잖니. 넌 어제도 그제도 늘 이 시간에 잠을 자던 아이잖니. 넌 이렇게 우유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넘어갈듯 울면서 오늘의 기쁨인 이 시간에 그리 울다니. 내 하루의 기대가 와장창 장렬히 깨지는 그 순간, 나는 손이 베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깨진 내 실망의 유리조각들을 주워담았다.



육아 사파리는 자동반사의 세계이다. 지구에서 이 행성으로 들어올 때 나의 자율성은 이미 산화된 게 틀림없다. 아무래도 자율성은 숨쉴 구멍이라서 산소가 꼭 필요했나보다. 이 자동반사 행성의 룰은 하나. 내 아이의 울음과 웃음에 반응하기. 이젠 즉흥적으로 내가 가고 싶은 골목이 나오면 내 마음대로 그 골목에 덥석 들어서서 디저트와 커피를 먹고싶은대로 먹던 생활은 안녕이다.



세상은 내게 이걸 알려줘야했다. 내 선택으로 상황을 컨트롤 하고 있다는 그 상쾌한 통제감. 때때로 즉흥적인 선택이 가져오던 낯선 흥분의 원천인 내 자율성이 곧 사라질거라는 것을. 나는 곧 파블로브의 개 처럼 아이의 울음에 자동반사를 하게 되리라는 것. 아이의 웃음이라는 강화에 그저 내 하루의 쇠약함이 말끔히 승화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모성이라는 누가 쥐어준 적도 없는데 내 마음에 콱 들어앉은 무언의 압력에 힘들어도 힘들지 않다 다독이게 되는 고독의 날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 그때 내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이기적인 사람이 될까봐, 나는 모성이 없는 사람은 아닐까 의심하고 자책하며 행여 누가 알까봐 나의 쇠약을 더 숨기게 될 거라는 것을.



나는 모성에 대한 자기불신에서 오는 불안을 눈에 보이는 사소한 고민들로 채웠다. 나는 눈에 보이는 예쁘고 귀여운 소비로 준비를 대신했다. 체리가 그려지고 오색 땡땡이가 그려진 것 중에 어떤 배넷저고리를 사야할까 고민했고, 요즘 대세라는 분유를 직구하기 위해 직구 사이트에 가입했다. 환경호르몬을 막을 수 있는 젖병을 검색했고, 개월수마다 다른 젖병의 젖꼭지를 알아냈다. 손가락이 쉴새 없이 움직이고 집에 물건이 하나하나 들어올 수록 나는 내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듯 했다.



육아의 시간이 계속될 수록 내 자율성의 자리는 점점 비워졌고 결국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답답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지금 나가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은데 나는 세수도 못한 채, 어제 밤에 수유를 하느라 제대로 자지 못해 까치집 얹은 머리카락을 이고 아이를 안고 있다. 나는 오후까지 쫄쫄 굶었으면서도 아이 3시간 우유텀은 지키고 있는데, 겨우 한 술 뜨려고 하니 아이가 자지러질 듯 운다. 나는 두 끼나 뛰어넘어 배고픈데, 넌 그 조금을 참아주지 않다니! 빈정이 상한다. 안먹어 안먹어.



운전대를 잡고 집에 퇴근하던 길, 즉흥적으로 운전대를 꺾어 카페를 가고 꽃집에 가던 내가 있었다. 전생의 나는 그렇게 내 마음대로 하루의 방향을 꺾을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파리의 골목을 마음대로 걷다가 저 골목 들어가보자! 한 마디에 발길을 돌리던 겨울도 있었다. 다 내 발로, 내 의지로, 내 신남으로 괜찮던, 파워 P의 하루들이 있었다.



어떻게 내 자율성을 확보해야할까. 내 방식을 찾아야할 시기이다. 우리의 생김이 다 다르듯 각자의 육아의 생김도 다 다른게 맞다. 누가 말했는지도 모른 채 세상이 쥐어준 모성이라는 터무니없는 아름답기만한 세상은 어쩌면 나와는 안 맞는 장면인지도 모른다. 이미 나는 잡지와 드라마와 광고 속의 수려한 외모를 가진 엄마가 되기엔 태생부터 글렀다. 나는 내 색으로 내 삶의 무늬를 그려왔듯, 내 육아도 그러해야 맞다.



새로운 행성에, 육아사파리에 들어섰으니 이젠 무를 수도 없다. 젖병, 기저귀, 분유, 아기 모자, 패딩은 무얼 사면 좋을까 손가락 고민을 하는 만큼 내 구멍난 마음을 어떻게 다시 비옥하게 채울 수 있을지 살펴야지. 내 마음의 토양에 다정한 빛이 잘 들어오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어떤 방향으로 창을 내어볼지 궁리해봐야지.



어느날 즉흥의 씨앗이 떨어져 싹을 틔울 때 그 녹색으로 울창한 엄마로서의 삶을 기대해본다. 내 육아가 수놓을 색은 햇빛에 딸랑딸랑 빛나는 연두색일까? 계획은 없어도 기대는 잘하는 나는, 파워 P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