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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Jan 13. 2024

1월, 끝내기 좋은 달

이별 그리고 시작

  초등학교 6학년때인가 언니와 집에서 ‘있잖아요 비밀이에요’라는 비디오를 빌려보았다. 주인공인 하희라 배우는 여고생이었고 불치병으로 죽는 역할이었다. 하희라 배우가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하희라 배우와 김영애 배우가 서로 안으며 체온을 나누어갈수록 슬픔은 커져간다. “내가 이렇게 널 안고 있는데 네가 어딜 가겠니. 걱정 마. 엄마가 이렇게 널 안고 있으면 넌 어디도 못 가.” 슬픔에 잠긴 두 배우의 대화를 들으며 12살 어린이였던 나는 엄마가 꼭 잡은 딸의 두 손이 너무나 확실해서 둘은 떨어질 수 없다고 여겼다. 엄마가 두 팔과 가슴으로 온 힘을 다해 딸을 안고 있는데 딸이 떠날 수 있다는 게, 죽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고시절, 김동률 님과 유희열 님에 빠져지냈다. 내게 정서를 준 두 뮤지션들 덕분에 참 많은 이별노래를 들었다. 유희열 님의 노래에서 화자는 늘 가난해서 연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헤어졌다. 연인의 부모님은 모자란 화자를 반대했고, 가난한 남자는 연인에게 인디언 블루 머플러를 사주고 싶었지만 헤어질 때에야 겨우 그럴 수 있었다. 가난한 남자는 무릎 아래가 없어진 듯한 걸음으로 이별했다. 김동률 님의 노래는 늘 여운이 느껴졌다. 2년 만에 돌아왔지만 결국엔 그녀였다. 다시 사랑할까 말할까 고민했고, 감사했고, 언제나 결국엔 너였다. 그는 오래된 노래 속에 담긴 그녀의 기억에 참 부러워했다.           



  두 뮤지션 모두 이별을 이야기했지만 사랑이 끝난 건 아니라고 했다. 사랑해서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고, 나의 미숙함으로 이별했었지만 결국엔 너라고 했다. 여고생 소녀는 이 말만 철석같이 믿고 자랐다. 사랑은 끝이 없는 일이었다. 마음을 준다는 일은 끝이 없는 실타래를 너와 나누어 가진 일인데 이 실타래는 본디 끝이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문을 닫아 실이 단절될 뿐이지 주고받은 마음은 가위로 싹둑 잘라지는 게 아니다. 잠시 문이 닫혀서 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보지 못하는 상황이라도 내 손에 실타래를 놓은 적은 없는 것. 여고생 소녀에겐 그 영원함이 사랑이고, 아름다움이었다.           



  태생적으로 괜찮은 게 많은 사람이라서 싫은 게 별로 없었다. 싫은 게 없으니 웬만하면 괜찮아서 사람들과 등을 질 일이 없었다. 아무래도 어릴 적부터 우리 집 먹보였던 나는 배가 자주 불렀나 보다. 우유를 잘 먹어서 자주 배가 부르니 마음도 우윳빛으로 매끈하게 큰 것 같다. 웬만하면 다 괜찮았다. 학교를 가도 친구들이 괜찮았고, 학교를 다니는 것은 좋아하기까지 했다. 사교성이 부족해서 친구가 한정적이었던 것이지 마음에 안 들었던 친구는 없었다. 여고시절 7명의 친구들과 친했는데 7명 이름의 성씨는 강, 서, 박, 김, 안, 탁, 이 씨로 다 달랐다. 그 다른 성씨만큼 성격도 다 달랐는데 나는 달라서 더 재미있고 괜찮았다.  


        

  내 마음에 가득 담은 이별노래는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아니, 변할 수 없다. 주고받은 마음이란 영원한 것이 본성이다. 사랑을, 인연을 노래로 배운 나에게 이건 정언명령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아름답고 눈물이 나는 것이다. 이별노래를 들을수록 영원의 정서는 온 마음을 가득 울렸다. 괜찮은 게 많은 소녀는 우정의 영원함이 당연했다.          



  이렇게 이별을 배우지 못하고 컸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별을 선언하는 맺음의 마음과 말을 모르고 컸다. 내가 이별을 고한 적이 없다. 1년이면 진급을 하기에 새로운 학년 반에 올라가느라 올해의 친구들과 이별했다. 직장에서는 4년을 주기로 이동을 해야 하기에 그랬을 뿐이다. 정해진 학기가 있기 때문에 매해 학생들과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내 삶에 많은 이별이 있었지만 마음먹고 내 목소리로 이별을 말한 적은 없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별의 횟수가 쌓였다. 어쩌면 인연이라는 게 영원하지는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속 우물 바닥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고마웠던 기억과 좋았던 정서는 남았지만 오늘 내 휴대폰을 꺼내어 연락하지는 않는 나를 자주 보았다. 어릴 적엔 보고 싶으면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는 게 당연했는데 이젠 그 기억만 곱씹고 있는 나를 경험한다. 동시에 내가 주고받은 말과 마음도 오늘의 정서와 기억으로 남아있겠지 싶다. 더 이상 인연의 끈이 전화와 메시지와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는 삶. 시절인연이라고 부르는 그 오늘들을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진다.



    이별에 반응하며 살다 보니 이젠 제법 이별이 낯설지만은 않다. 모든 이별은 마음에 남지만 살다 보면 오늘은 또 오늘이 있었다. 학년 반이 올라감에 아쉬워 눈물을 흘렸지만 그렇다고 윗 학년으로 올라가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만 이 자리에 남을 생각으로 흘린 눈물은 아니다. 이별 노래의 그들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나는 오늘을 살았다. 반응적 이별을 뒤로하고 오늘을 최선으로 살아가는 데 점점 능숙해졌다.


     

  1월이다. 나는 여전히 이별에 반응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아직도 지난해의 흔적에 질척거리고 있는 걸 보면 새해는 확실한 이별 사유가 되어주지 못했나보다. 아직도 지난해에 수집한 데이터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행여 유의한 결과가 또 나올까 봐 통계 프로그램을 돌리고 또 돌린다. 어떻게 해봐도 결과가 나오지 않지만 차마 익숙한 이 데이터와 이별할 수 없다. 아직은 더 할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벌써 하드디스크의 저 깊은 곳으로 묻어둘 수는 없다.           



  작년에 써둔 원고를 보고 또 본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다듬는다. 브런치 공모전에 떨어진 이유가 시의성, 대중성, 그리고 무엇보다 필력의 부재였겠으나 나에겐 내 생각을 담은 이야기여서 사랑스럽기만 하다. 고치고 한 번 더 고쳐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보고 고치는 데 고칠 게 한 가득이다. 아예 다시 쓴 꼭지도 있다. 고칠수록 이래서 떨어졌지 싶다.           


  작년에 만났던 21명의 학생들과의 기억이 나를 자주 웃게 한다. 올해도 함께 공부하고 싶다는 절대 불가능한 그 일, 작년의 하루들을 다시 갖고 싶다는 바람을 아직 쥐고 있다. 서로의 정서를 나누고, 서로의 말과 행동에 웃었던, 서로 고마워했던, 마지막날 ‘내년엔 어떻게 해요.’하고 서로를 꼭 껴안아주었던 그 학생들을 놓지 못했다. 가위질 하는 단호한 이별 앞에 나는 징징거리며 질척거렸다.




  어제는 원고를 끝까지 다시 한번 읽었다. 오늘은 작년 데이터를 다시 한번 돌려보았다. 문득 내 손에 간식을 쥐어주고 나를 보면 반갑게 웃던 학생들의 얼굴을 또 떠올린다. 좋았던 과거는 변한 것은 없다. 원고도 그 자리, 데이터도 그 상태이다. 띵띵디디딩딩 소리가 난다. 노트북 앞에 앉은 내가 움직인다. 1월의 토요일, 제법 깊게 들어온 오전의 차가운 햇빛에 막 세탁이 끝난 빨래를 탈탈 털어 널어둔다. 내 주말의 루틴이자 마음이 반듯해지는 시간이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마우스를 움직이고 자판을 두드렸던 내 손을 지워간다. 내 마음을 비워간다.



  작년의 데이터, 작년의 글, 아름다웠던 작년의 학생들에게 내가 이별을 고한다. 아직 1월 중순, 끝내기 좋은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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