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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Jan 25. 2024

욕구를 충족해야 다음으로 나아간다_캐럴라인 냅[욕구들]

독후감 욕구

  금요일 늦은 밤, 남편과 부딪힌 소주잔에 기분이 좋았다. 투명한 청록의 병 입구에서 또록또록 흘러나오는 맑은 소주를 각자의 작고 하얀 잔에 나누어주는 일.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투명함을 작은 잔에 채울 때 병을 든 우리의 손에는 욕심이 없다. 잔에 대한, 서로에 대한 간결한 배려가 전부이다.



  소주가 한 잔씩 오갈수록 겨울 추위를 견뎌왔던 몸과 마음이 데워지기 시작한다. 뜨뜻해진 마음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따뜻한 곳으로 여행 갈까?"

해남 유선관에 방이 한 칸 남았다. 몇 년 전 봄, 우리가 참 좋아했던 남해의 숙소도 한 칸이 비었다. 평소엔 예약이 힘든 두 숙소가 딱 한 칸씩 남아있다. 이 정도면 우주가 우리의 즉흥 겨울 여행을 돕는 것에 틀림없다. 인생이 타이밍이라면 이건 운명이 맞다.



  검색의 기대와 신남은 내 마음 안에 있었는데 현실로 다가오자 장면은 달라진다. 현실의 결재 버튼 앞에 운명과 접견이 만든 흥분은 망설임으로 바뀐다.



  나는 경험으로 배웠다. 삶엔 내일이 있어서 오늘의 나는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다는 것. 오늘의 내가 하지 않은 일은 내일의 내가 해야만 한다. 오늘의 내가 결제한 카드값은 다음 달의 내가 갚아주어야만 한다. 당장의 기분 좋음으로 그것을 감당하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나 스스로 납득 할만한 많은 이유들이 도와주었을 때 결재버튼을 누를 용기를 얻는다.



  남편과 나는 즉흥여행을 결재를 합리화할 수 있는 모든 이유들을 끌어모은다. 앞으로 여행을 갈 스케줄이 적절치 않다는 것, 타이밍이 맞을 때 안 가면 못 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무엇보다 지금 유선관에 방 한 칸이 남았다는 것 등을 나열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중에서 가장 값진 이유는 공공의 선을 찾는 일이다. 이 즉흥여행을 감당할 충동적 소비가 오롯이 내 개인의 욕구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는 것. 내 욕구를 채우는 일이 가져오는 불편한 이기심을 가리기에 필요한 것은 하나.

  ‘나만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야.’




  결국 우리의 아홉 살을 위해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는 이유를 찾는다.

  "겨울방학을 맞은 아홉 살이 집에만 있는 건 좀 미안하잖아. 좀 짠하지."

  "요즘 걷고 싶어 하잖아. 유선관에서 대흥사 산책하면 신나게 걸을 수 있으니 좋아하지 않을까?"

결국 거실에서 놀고 있는 아홉 살에게 쪼르르 간다.

  "주윤, 엄마랑 아빠가 지금 이야기를 해봤는데 잘 선택해 봐. 1번은 해남 유선관을 가서 한 밤을 자고 산책을 하는 거야. 2번은 남해야. 예전에 갔던 곳 기억나? 그리고 3번은 집에 있는 거야. 어떤 게 좋아?"

이미 매력적인 보기가 정해져 있는 편파적인 문제 앞에 아홉 살은 주저 없이 말한다.

  "1번이요! 1번! 사실 2번도 괜찮긴 한데, 3번만 아니면 돼요. 3번은 절대 안돼요."

성공.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가장 합당한 이유가 체결되었다.



  캐럴라인 냅은 욕구를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부당하거나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욕구의 이면에는 그에 따른 청구서 딱지가 붙는다. 우리는 나의 욕구를 추구하려면 대가나 희생이,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와 상황이 있어야 만한다고 여긴다. 욕구 추구에 따라붙는 개인적 회계 없이 나의 개인적 필요를 추구하고자 할 때 온 마음을 잡식하는 불안과 자기 비난의 야유는 그녀를 마르게 했고 또 마르게 했다.    



  엄마여서, 아빠여서, 아들이어서, 딸이어서, 직장인이어서 우리는 개인의 욕구를 참곤 한다.

'어떻게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사니?' 여러 번 되새겨 이미 마음에 새겨진 문장을 떠올리며 쇼핑 리스트를 삭제하고, 타 지역의 대학 원서를 내기보다 살고 있는 지역의 대학을 선택하고, 보다 가까운 장소로 여행을 간다. 내 욕구를 덮을 때 이 문장을 들춰보며 한숨 한번 먼 산을 한 번 보곤 한다. 이렇게 어른이 되는 건가 하며 위안과 씁쓸함을 함께 먹는다.



  잘 덮어진 것으로 여겼던 욕구는 힘이 세서 여기저기에 구멍을 내고 다닌다. 욕구가 내어놓은 구멍을 나는 외현적 물건으로 땜질을 한다. 예쁜 옷을 좋아하는 나는 옷을 사 입는 것에 대한 심리적 청구서에 굴복한 후 그만 사겠다 다짐하고는 쇼핑리스트를 지운적이 있다. 그로부터 한 달째 되던 어느 날 나는 별안간 욕실에 샴푸걸이 링을 사고 샤워기를 검색하는 나를 발견했다. 집에 도움이 되는 소비는 합리적이지! 하는 생각에 나는 쓰지도 않을 물건을 샀고 배송 온 상자를 열어보지도 않는 나를 만났다.



  내 욕구가 그 자체로 이유가 될 수는 없을까. 욕구 추구에 따른 심리적 회계 앞에 나는 이미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 맞다. 또한 나는 내가 엄마인 것이, 아내인 것이, 딸인 것이, 친구인 것이 자주 기쁜 것도 맞다. 나의 기쁜 역할들이 나의 욕구 앞에 놓인 과속방지턱이라면 나는 기꺼이 속도를 낮출 의향이 있다. 내 발로 내 의지로 나의 선택으로 나는 그 앞에서 부드러울 수 있는 브레이크를 밟을 것이다.



  내 욕구를 정의하는 일, 그리고 내 욕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 내가 추구할 욕구를 내가 쥐고 있는 일은 매일의 내 욕구를 잘 쓰다듬어주지 않을까. 내 욕구에 이름을 붙여주고 목소리로 내뱉는 일은 내 욕구를 살려주는 일이 된다. 내 욕구가 좌절되는 것보다 슬픈 일은 내 욕구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일이다. 이름이 있는 좌절된 욕구는 위로라도 해줄 수 있으나 나조차도 알아주지 않는 욕구는 있으나 없는 슬픈 존재가 된다.



  나는 예쁜 것을 좋아하고, 내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소유하는 것도 좋아한다. 지금까지 나에게 그것은 옷이었다. 미술관에 갈 때는 내 옷장에서 가장 근사한 재킷을 입는다. 강의를 하러 갈 때는 셔츠에 슬랙스를 좋아한다. 캠핑을 갈 땐 청자켓이나 남편의 군용 점퍼를 입는다. 장소에 맞는 옷을 입고 그 순간을 즐길 때 나는 온전히 기쁘다.



  나는 개인적 성장에 대한 욕구가 있다.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이론에 따르면 가장 상위의 욕구인 자아실현의 욕구가 나에게 충분히 있음을 이제는 안다. 겸손이 미덕이었던 내 과거의 날들을 접어두고 이제는 말한다.

  "욕심 있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 이 분야에서 더 발전하고 싶은 욕심. 욕심 있어요, 저."

더 이상 누가 물어보면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 "괜찮아요."하지 않기로 했다.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을 때는 내가 선택하고 행동하면 그뿐이다.



  나는 자율성의 욕구가 있다. 내가 할 일은 내가 선택하고 싶어 한다. 어떤 어려운 일도 나에게 먼저 의향을 물으면 나는 괜찮다. 하지만 아무리 가벼운 일도 의사를 묻지 않고 진행하면 굉장히 화가 난다. 신혼 초부터 남편에게도 미리 말해두었다.

  "남편, 나는 김주윤 패싱을 가장 싫어해. 내가 포함된 일에는 내 의사를 먼저 물어줘."



   나는 내 가족, 친구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구가 늘 가득하다. 설거지를 하는 물소리에 한번 다짐한다. 남편에게 오늘 건넨 말의 투박함을 반성하고 더 다정한 말을 건네리라. 아침에 일어나 두 팔을 벌려 나에게 다가오는 저 아름다운 아홉 살을 오늘도 더 꽉 안아주리라. 엄마의 전화에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하리라. 지지고 볶았던 언니도 이젠 휴대폰에 '사랑하는 언니'로 저장하리라. 눈길에 출근이 어려웠을 친구에게 '출근은 잘했어?' 짧은 메시지 한번 보내리라. 그렇게 내 욕구를 채우리라.



  내 욕구 앞에 솔직해질 때, 내 욕구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내 욕구를 내 말로 정의할 때 나는 내 욕구 앞에 당당해진다. 덜 미안해진다. 너무 사소한 평범한 욕구에 귀 기울여줘 야한다. 내 거니까. 내가 내 욕구에 귀 기울여주지 않으면 이 세상 누구도 내 욕구를 바라봐주지 않는다. 내 욕구가 세계평화도, 사회적 기여도 아니어서, 쇼핑이고 청소이고 작은 글이어도 나는 내 욕구를 알아봐 주어야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나를 바라봐주는 거니까.



  “욕구는 소멸하지 않는다.”

  캐럴라인 냅은 자크 라강의 말을 통해 욕구를 충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은 잘 삶임을 말해준다. 욕구는 내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사건부터 자잘한 에피소드의 원료이다. 우리는 소멸하지 않는 욕구가 있어 나만의 선택을 하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간다.



  물론 욕구를 채우는 과정은 허기지고 불안하다. 배고프면 음식을 먹으려 하듯 내면의 배고픔인 욕구에는 허기가 필수적이나 무엇을 먹어야 할까, 이렇게 안 좋은 것을 먹으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그 불안은 덤이다. 나만 이렇게 미련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앞에 이 과정을 마른 몸으로 겪어온 그녀는 욕구의 허기를 채우는 데 불안이 당연하다고 말해주었다. 다만, 그 불안의 경험이 남기는 주름살의 가치를 내가 알아주면 된다.



  우리는 해남으로 향했다. 따듯할 거라 기대했던 해남엔 난데없이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오락가락하기에 멈추길 기대했던 비는 우리가 유선관에 짐을 풀자 더 세차게 내렸다. 괜찮았다. 우리는 걷기로 했으니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저녁을 먹기 위해 왕복 40분의 거리에 있는 산장 식당에 걸어서 다녀오기로 했다.



  남편과 나, 아홉 살은 우산을 나눠 쓰며 걸었다. 겨울비가 오는 초저녁 대흥사의 산책로엔 우리 셋이었다.

  "엄마! 풀 냄새가 더 많이 나요. 계곡 진짜 멋지다. 찍어야겠어요."

  휴대폰으로 풍경을 찍는 아홉 살 덕에 우리의 걸음은 더디기만 했다. 아홉 살의 말대로 비를 머금은 숲의 땅과 풀의 향은 진하고 자욱하게 우리의 걸음을 감쌌다. 바람골이 틀림없는 매표소 앞에서 남편의 우산은 뒤집혔고 우리는 신난다고 웃었다. 거세게 내리는 비는 우리의 마음도 자라게 했다. 걸음마다 생각했다. 오늘 우리 잘 왔다.



  오늘 내 욕구를 충족시키느라 내일의 내가 카드값을 내고, 시간을 줄여서 더 일을 해야 하고, 하얗게 밤을 지새워야 하는 내일의 나를 만날 수도 있겠다. 앞으로도 나는 내 욕구를 채우는 일 앞에 망설일 것이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유선관의 겨울을 앞에 두고 곧 차를 바꿔야하는 남편은 물망에 올려둔 지프차 뒤에 붙은 책임의 값을 매긴다. 그 차를 사는 데 한 달에 얼마의 비용을 앞으로 감당해야하는가의 현실적 회계뿐만이 아니다. 갖고 싶지만 내가 과연 그럴만한가. 감당할 수 있는가에 관한 심리적 회계의 무게 역시 동등하다. 욕구 앞에서 보이는 그의 망설임이 낯설지 않다.



  10년전, 소개팅에서 만난 그는

“차를 좋아해.”하고 말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치열했던 시험기간이 끝나면 자신을 위해 자동차 잡지를 사주었다던 그였다. 그 수줍은 목소리를 기억하는 나는 다만 다만 말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해. 남편이 스스로 합리화할 상황을 만들어봐.“




  욕구를 앞에둔 나는 언제나 심리적인 회계를 할 것이고, 불안해할 것이고, 합리화를 위한 상황을 마련하려고 종종거릴 것이 분명하다. 익숙한 망설임이 매번 낯설게 느껴질 것도 맞다.



  다만, 고즈넉한 유선관의 겨울을 두 발로 걸으며 우리는 꺄르르 꺄르르 웃었고, 두 발이 움직였고, 겨울 비가 내린 부푼 붉은 흙냄새와 초록의 쨍한 겨울냄새를 온 몸에 뭍혔다. 그렇게 겨울 이야기를 모았다. 걸음마다 웃었고, 농담을 했고, 숨을 크게 들이쉬며 겨울을 우리 몸 속으로 모았다. 이야기가 생긴 우리의 겨울은 반짝였다.



  욕구는 충족해 본 경험이 있어야 다음 욕구로 나아갈 수 있다. 더 나은 욕구를 채워가며 더 나은 기대와 마음으로 살아간다.






                     #욕구들 #캐럴라인냅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문장음미하기#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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