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기억 학습심리 공부법 청소년 교육 심리
동네를 걷고 있는 오후, 횡단보도를 마주한 반대편에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익숙합니다. 그 한 사람을 자세히 보니 은성이 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하늘 높이 흔들며 ‘은성아!’하고 부르며 인사합니다. 횡단보도를 건너온 은성이는 “네가 반갑게 인사해 주니 내 기분이 좋아졌어.”하고 말합니다. 내 기분도 따뜻해져서는 두둥실 떠오릅니다.
갑자기 무슨 이야기일까요? 바로 단기기억(short term memory)이 작동하여 우리 삶을 명랑하게 만들어주는 순간입니다.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단기기억
단기기억은 두 번째 기억 저장고로 정보의 임시저장과 활용이라는 2가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합니다. 역할에 따라 단기기억, 작업(작동) 기억(working memory)라고도 불립니다.
첫 번째, 단기기억은 수많은 감각기억 중 주의집중했던 기억이 들어오면 이를 잠시 저장하는 기능을 합니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 10~20초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7±2개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단기기억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를 볼까요?
새로 알게 된 친구가 전화번호를 불러줍니다.
“7899에 5362야.”
“응~7899에 5362! 좋아. 저장했어.”
그날 밤. 여러분은 친구의 전화번호가 정확히 생각날까요? 아마 어려울 겁니다. 저장된 번호를 검색하겠죠.
우리의 단기기억이 짧은 시간 동안 7±2개의 정보를 기억하는 탓에 우리 주변의 주요 번호들은 대게 5~9자리 숫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편번호는 5자리, 휴대전화 번호는 앞의 010을 떼면 8자리, 자동차 번호판은 52나 5678처럼 숫자와 글자를 조합해도 7자리로 이루어져 있죠. 실제 우리 세상은 이런 이론들이 숨어 우리 삶을 섬세히 돕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감각기억에서 들어온 정보를 파악한 후, 장기기억에 저장해 둔 관련 기억을 끌어와 매칭시키거나 활용하는 일입니다. 횡단보도 맞은편에 낯익은 얼굴에 집중하여 감각기억으로 찍은 정보를 보고, 장기기억 속에 ‘은성이’라는 이름을 인출하여 마침내 부르는 거죠. ‘은성아!’ 바로 단기(작동/작업) 기억 덕분에 우리는 기억을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시험은 단기(작동/작업) 기억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순간입니다. 먼저, 시험지의 다른 문항보다 지금 내가 풀 1번 문제에 주의집중하면 시험문제가 단기기억으로 들어옵니다. 이때 공부하면서 장기기억에 쌓아둔 많은 정보 중에서 이 문제와 관련된 정보를 인출해서 매칭을 시켜 답안을 작성하는 과정이 반복되죠. 바로 단기기억(작동/작업기억)이 힘내고 있는 순간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이 될 수 있다고 했죠. 서로의 이름을 불러 의미가 되어주는 순간에도, 힘겨운 고독의 시간을 거쳐 시험을 보는 긴장의 순간에도 단기기억이 우리를 돕고 있었습니다.
단기기억의 한계
우리의 단기기억은 어느 정도인지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1분의 시간을 드립니다. 하단의 그림을 집중해서 살펴보고 최대한 많이 외워보세요. 시작합니다!
1분이 지났다면, 이제 그림을 가려보세요. 빈 종이나 여백에 외운 그림의 단어를 써봅니다. 1분간 몇 개의 그림을 외웠나요? 10개 미만이라면 단기기억을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할 거예요. 16개 이상이라면 축하합니다. 매우 우수한 수준의 단기기억력을 가지고 있군요. 예상보다 덜 외운 사람도 있을 거예요. 우리는 모르는 그림이 없는데도 왜 다 외워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단기기억의 명칭에 힌트가 있습니다. ‘단기’ 기억이잖아요. 단기기억은 저장 기간과 개수에 한계가 있는 기억 저장고입니다.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단기기억은 RAM(Random Access Memory, 랜덤 액세스 메모리)입니다. RAM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정보를 처리할 때 정보를 임시적으로 저장하는 작업공간입니다. 앱을 사용하는 중에는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면 이전 화면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앱을 종료했을 때는 이전에 보았던 페이지가 사라지고 새 페이지가 뜨죠. 이런 현상은 RAM은 작업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정보를 저장하기 때문입니다.
워드 프로그램으로 열심히 글을 쓰고, PPT 발표자료를 만들고 있는데 갑자기 컴퓨터가 멈춰서 재부팅을 했더니 작업 내용이 다 날아갔던 경험이 있나요? 인터넷 사이트에 정성껏 글을 쓰고 업로드 버튼을 누르는데 버퍼링이 걸려서 새로고침을 눌렀다가 결국 글이 삭제된 경험은요? 생각만 해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미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작업하는 정보는 ctrl+s를 누르지 않는 한, RAM에 임시 저장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단기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업하고 있는 내용은 10~20초 동안 7±2개가 저장되고 이후는 사라집니다. 따라서 분명히 마트에 가서 음료수, 과자, 젤리, 화장지를 사러 갔는데 집에 오면 화장지를 사 오지 않거나, 수업시간에 들을 때는 병자호란을 기억해 놓고 돌아서면 병인양요였나? 하고 헷갈립니다. 앞선 간단한 테스트처럼 그림을 보고도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쯤하면 영어 단어를 외워도 다 쓰지 못하는 자신을 ‘그럴 수 있어.’하며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단기기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한 글자씩 읽으며 장기기억에서 저장된 정보를 가지고 와서 내용을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고, 새로 사귄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나는 청바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마다 단기기억은 힘내고 있습니다.
다만, 단기기억은 적은 양을 짧게 기억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계를 알고 인정한다면, 이제 다음 스텝으로 갈 차례입니다. 우리가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가는 이유는 진단만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죠. 치료와 처방을 받고 약을 먹으며 나아지기 위함입니다.
단기기억의 한계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단기기억에게 우리가 할 일은 알고 인정했다면 해결책 탐색입니다. 방법은 늘 있으니까요. 어쩌면 우리의 삶은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은 단기기억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