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 고독을 갖는 일

정체성(identity) 나(self) 청소년자기계발 긍정심리

by 주윤

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단 둘이 만난 적이 있어요. 이제 막 수능을 끝내고 난 우리는 식당에서 돌솥비빔밥을 주문했죠. 돌솥비빔밥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었거든요. 겨울에 손을 호호 불고 온 우리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소하고 따뜻한 밥을 보는 순간, 숟가락을 들 수밖에요. 나는 둥근 숟가락을 들고 바닥에 누룽지를 만들 요량으로 위쪽 밥을 살살 비비는 데, 앞에 앉은 친구는 같은 숟가락을 들고 맨 위에 얹어진 다진 고기를 빼는 거예요.

"응? 고기는 왜 빼?"

"아, 난 고기 잘 안 먹어. 아웃백만 가도 고기 냄새가 나면 머리가 아파."


아, 이런 게 세계관 충돌일까요? 고기를 한 번도 사양해 본 적 없는, 그 고소하고 풍요로운 단백질과 지방 냄새에 가슴이 쿵쾅거리기만 해 봤던 저는 놀랐어요. 이럴 수도 있구나. 동시에 이상한 마음이 피어올랐어요. 친구가 좀 있어 보이는 느낌.


'난 이걸 싫어해.'

'난 이걸 진짜 좋아해.'

라고 명확하게 나를 알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어요. 음식은 없어서 못 먹고, 있으면 다 맛있어서 참치김치찌개와 돼지고기 김치찌개도 구별 못하는 나와는 달리, 구별을 할 줄 아는 친구의 선명함이 멋있고 부러워 보였어요.


어릴 때부터 웬만하면 다 괜찮았던 예스 소녀였던 저는 커서 '아무거나 소녀'가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분식점에 가면 '나? 아무거나!'하고 선택하지 않거나 '넌 뭐 먹고 싶어?' 하며 친구의 의사를 먼저 물었어요. 쉬는 시간에 단어를 외우다가도 친구가 '매점 갈래?' 하면 '그래!'하고 따라나섰고, 서운한 일이 있어도 일단 먼저 나오는 말은 '괜찮아.'였어요. 덕분에 저는 매 학년 마음에 맞는 친구 무리가 늘 있었고, 같이 점심을 먹고 나와서 아이스크림 먹으며 교정을 산책하고, 이대로 길이 계속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길보다 더 긴 이야기를 나누며 집에 돌아가는 평화롭고 자잘한 웃음이 반짝거렸던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무거나', '그래', '괜찮아'라는 말을 할수록 나(slef)는 지워지고 있었습니다. 친구와 웃을 땐 몰랐어요. 다만, 문득 심야 라디오를 켜고 책상 앞에 혼자 앉아있게 되는 깊은 밤이 되면 수정테이프로 지워도 반대 면에는 흔적이 남아있듯 마음 한편엔 늘 풀리지 않는 질문이 피어났습니다.

'나는 누굴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 앞에 늘 허둥거리다 잠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하루는 친구들과 자주 가던 학교 앞 베이커리에 혼자 가게 되었어요. 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좋아하며 함께 먹던 딸기 생크림 케이크 한 조각을 사려는데, 입구 쪽 바스켓에 뾰족하게 세워져 있는 까슬까슬한 바게트가 눈에 들어왔어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하다는 그 바게트! 언젠가 SNS에서 파리지앵이 바구니에 넣고 가던 그 바게트였어요. 순간 망설였죠. 안 먹어본 건데, 괜찮으려나? 낯선 선택은 제 아무리 빵 하나도 망설이게 됩니다. 그러다 문득,

'뭐 어때. 1/n 안 할 거잖아. 내 돈으로 나 혼자 먹을 건데.'

하며 딸기 케이크대신 바게트를, 그 옆에 있는 손바닥만 한 투명한 용기에 담긴 생크림도 샀죠. 뭐 어때요. 나 혼자 먹으면 되니 눈치 볼 게 없잖아요.


빵을 사서 가게 테이블에 앉아 먹는데, 아니! 저는 바게트파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어요. 저는 달콤하고 신선한 딸기케이크보다는 겉은 바삭하지만 안은 쫀득하고 부드럽고, 무미처럼 느껴지지만 씹을수록 고소해지는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거죠. 한 입에, 먹자마자. 너무나 쉽게. 함께 노래하면 들리지 않던 내 목소리가 혼자 노래할 때야 들리듯, 1/n의 공유와 배려의 세계에서는 저 밑에 가라앉아 보이지 않던 나(self)는 혼자 있는 시간에야 떠올랐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같은 악기, 같은 곡을 연주하지만 같은 곡도 연주자에 따라 감정과 표현이 다릅니다. 나로 산다는 것은 내 감정과 소리와 태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혼자 연주하고 연습하며 내가 이 곡을 어떻게 느끼는지, 내가 약한 파트는 어디여서 더 연습해야 하는지, 자신 있는 파트는 어디이고 이상하게도 애착이 가는 파트는 어디인지 귀와 마음을 기울여 발견해야 합니다. 그때 누구나 연주했던 클래식 악곡도 나만의 음률과 감성이 담긴 세상에 하나뿐인 곡이 됩니다. 그렇게 의미를 쌓아갑니다.


혼자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함께 연주할 수도 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함께 연주하지만 모두가 단독 연주자입니다. 누구도 대신 내 파트를 연주해주지 않습니다. 함께 있어 의지가 되고 서로를 조율해 가며 격려하지만, 단독 연주자들이 제 악기를 제대로 연주해 주었을 때야 비로소 온전한 하모니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혼자 연주할 수 없는 연주자와 함께하려는 오케스트라는 없습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행복의 자산입니다. 아끼는 관계는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며 아름다운 관계를 지어가죠. 가족의 안온함, 친구와 재미처럼 관계가 주는 안온함과 풍요로움은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산은 내가 만듭니다.


내가 고독을 만들때, 고독이 나만의 뾰족함을 만듭니다. 능동적 고독은 혼자 선택하며 나를 알아가고, 혼자 시간을 보내어 나를 단련하고, 혼자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고, 혼자 차를 마시고, 혼자 독서를 하고, 혼자 산책하는 시간입니다. 그때 내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책의 어떤 구절에 밑줄을 긋는지, 내가 선택하는 책 제목의 목록에 담긴 내 욕구와 관심사는 무엇인지에 대해 눈과 귀를 기울여주세요.


내 마음은 남이 들어주는 게 아닙니다. 내가 들어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내가 내 마음을 들어줄 때, 내 힘이 생깁니다.


우리는 같은 과목을 배우고, 같은 점심 메뉴를 먹고, 모두 같은 곳을 향해 가야 한다고 몰아세우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속 갈증은 내 삶을 나로 사는 것이죠. 내 삶을 나로 사는 것은 고독한 시간을 갖고,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내 세계는 내 시간으로 만듭니다. 혼자 운동하고, 읽고, 생각하고, 노는 시간을 갖는 주말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모양으로 내 이야기를 지어가는 우주에 유일한 사람이 되어가는 오늘입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