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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Jun 13. 2022

셀룰러술 발휘하기

셀룰러 데이터를 꺼보았습니다.

  새로운 습관을 들이려면 세 달쯤 필요한 것 같다. 아무래도 곰이 사람이 되기까지 100일이 걸렸다는 것은 굉장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하나 더, 강압적인 무언가도 필요하다. 곰에겐 마늘이고 나에겐 돈 그리고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은 마음 두 가지였던 것 같다. 너무 거창한 성취였다면 ‘자부심’으로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건 지극히 소소한 습관이기에 자부심이라는 단어가 가진 반짝반짝한 광채가 담기기엔 누추하다. 단지 이 사소한 것에도 무너지는 내가 되고 싶지는 않은 그 마음이었다. 아, 이렇게만 보면 곰에게 좀 미안해진다. 그래, 곰도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은 그 마음, 그리고 자존심이 있던 것으로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렇게 만들고 있는 나의 소소한 습관은 바로 셀룰러 데이터 끄기이다. 쉿! 이건 아무도 모른다. 그저 나 혼자만 지키고 있다.



  작은 습관은 가랑비처럼 내 생활 속에 자잘하게 스며들어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작은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미 녹아있는 일상의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을 모아야했다. 그리고 그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아무것이 되도록 다시 보아야 했다.


          

  어느 날, 남편이 휴대폰을 교체했다. 휴대폰 교체 때는 늘 그렇듯 온갖 할인들을 다 끌어모으는 법. 남편은 여러 조건 중 한 가지로 요금제를 변경해야 했다. 나에게 중요한 환경인 남편의 요금제 변경은 나의 요금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크, 역시 우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가 맞는구나. 하고 부부의 의미를 부여하기엔 내 요금제가 너무 쪼그라들었다.    


          

  1.2GB. 전화는 무제한, 문자는 기본 제공. 나의 요금제는 이렇게 작아졌다. 그동안 무제한이라는 너그러운 요금제 아래에서 데이터 부자로 지내던 나는 앙상한 요금제로 변경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쉽게 말하면 쫄렸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데이터의 절반을 사용했다는 안내 메시지가 왔다. 그리곤 또 며칠만 지났는데 친절하신 통신사는 이젠 데이터의 80%를 썼다고 또 알려주었다. 이후엔 사용한 만큼 데이트 요금을 더 내야 한단다. 이제 고작 10일이 지났을 뿐. 나에겐 데이터가 필요한 20여일이 남아있었다.


          

  처음엔 뭐, 어때? 하며 초과한 데이터를 마구 사용했었다. 남편도 “데이터 올리는 요금제로 바꿔봐.”하고 말했다. 데이터는 너무 필요하지 않나. 내비게이션도 봐야 하고, 맛집도 찾아야 하고, 포털 사이트도 들어가 봐야 하고, 인터넷 커뮤니티 글도 읽어야 하고, 음악도 들어야 한다.



  이 모든 ‘~해야 하고’는 이미 내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요금제 변경을 위해 깔아만 두고 거의 들어가지 않던 통신사 앱을 눌렀다.  


           

  그래, 늘 그런 식이다. 아이디와 패드워드가 생각나지 않는다. 언제나 내 휴대폰은 나를 믿어주면 좋겠다는 소망을 또 한 번 떠올린다. 나는 이렇게 겸손한 소망을 가졌지만, 아이디와 비번은 봐주는 법이 없다. 휴... 몇 번 틀리면 또 안될 텐데. 결국 본인인증과 비밀번호 변경 절차를 통해 로그인을 성공했다. 그렇게 여러 요금제를 보는데, 나에게 맞는 요금제가 무엇인지 도통 간추릴 수가 없었다. 인터넷 쇼핑이 그렇듯, 첫날이니 일단 훑어보고 앱을 종료했다. 내일 하자.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난다. 자연스럽게. 이 자연스러운 미룸을 보고 나는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 급하지 않으니 미룬 거 아닌가?’

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필요하지 않았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나는 내가 데이터를 사용하는 태도를 곱씹어보았다.   


          

  와이파이 존을 제외하고, 셀룰러 데이터를 쓰는 용도와 장소는 어디인가. 그중 필요한 곳은 어디인가. 그리고 불필요함에도 습관적으로, 소위 쓸데없이 사용하는 곳은 어디인가.     


        

  나에게 셀룰러 데이터가 가장 필요한 때는 초행길 내비게이션 작동이었다. 그리고 심신의 안정이 필요한 출근길이나, 신나는 퇴근길에 음원 앱에서 나의 음악 리스트를 듣는 일.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은행 업무를 처리해야 할 때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없었다.  급하지 않았고, 필요하지 않았다.


          

  불필요함에도 습관적으로 셀룰러 데이터를 쓰는 행동은 주로 언제였나 떠올려보았다. 바로 ‘기다릴 때’, 그리고 ‘이동할 때’였다. 아이 픽업을 와서 시간이 남을 때, 약속 장소에 일찍 와서 기다릴 때, 그리고 가장 고쳐야 할 나쁜 습관은 신호 대기를 할 때였다. 그 잠깐의 기다림의 시간을 나는 참지 못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휴대폰을 자연스럽게 열고는 원래 궁금하지 않았으나, 휴대폰을 여는 순간부터 갑자기 궁금해진 것들을 훑어보곤 했다. 아니, 궁금하지 않아도 그냥 보았다. 내 손과 눈은 자석처럼 휴대폰을 붙여두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눈과 생각은 그 직사각형만큼 작아져있었다.    


        

  휴대폰 설정에 들어가 셀룰러 데이터를 껐다. 휴대폰 화면 상단에 LTE라는 문구가 사라졌다. 지붕에 영어 철자 3개가 없어지니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굳이 듣고 싶은 음악이 없는 날엔 라디오를 켰다. 듣던 음악만 듣던 내 음악 리스트보다 한결 다채로운 음악들이 라디오 선곡표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그중 반하게 된 음악은 내 음원 앱에 추가해두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듣고 또 들었다. 팝도 듣고, 가요도 듣고, 클래식도 들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음악들이 더  풍요로워졌다.  


           

  아이 픽업을 기다릴 때는 읽을 책을 미리 가지고 다녔다. 5분이어도 괜찮았고, 30분이어도 괜찮았다. 차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때로는 노트북을 들고 가서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기도 했다. 브런치에 올린 글은 절반 이상이 이때 쓴 글이기도 하다.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은 내 눈과 시선을 소비하던 것에서 내 생각에 문장을 담고 내 문장을 구성하는 시간으로 변했다.


      

  정차 중 휴대폰을 보는 나쁜 습관은 의도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운이 좋았다. 계절은 사랑스러운 소란들로 가득한 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봄의 가로수들은 새 봄의 햇살 아래에서 맑은 빛깔을 팡팡 터트리고 있었다. 노랑 산수유, 하얀 벚꽃, 그리고 새롭게 세상에 나와서 한껏 들떠있는 연둧빛 신록! 어떤 도로에서는 봄과의 블루스에 황홀해하기도 했고, 차로 촘촘한 도로에서는 정신 똑떽이! 차리고 신호와 도로의 리듬에 나를 맞추기도 했다. 무엇보다, 언제나! 안. 전. 운. 전!  


          

  새삼 느낀 한 가지는, 내가 그렇게 매번 내비게이션을 켤 만큼 새로운 곳을 가지도 않았다는 점이었다. 일주일의 루틴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주말 나들이가 아니라면, 나는 고정된 곳을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로 다니던 도로는 이미 내게 익숙해져있었다. 속도를 줄여야 할 곳, 유 턴이 되고 안 되는 곳, 좌회전이 되고 안 되는 곳을 나는 거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때론 정확치 않으면 운전 전, 또는 운전 중에 길을 미리 머리 속으로 생각해보는 태도가 생겼다. 저장된 번호만 검색해서 전화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기억속에서 끄집어 오듯, 운전 전에 생각의 근육을 스트레칭 시키는 기분이다. 아! 교통 표지판을 더 유심히 살피게 된 것은 덤이다.  


           

  집도, 식당들도, 미용실도, 마트도, 관공서나 도서관도, 학교도. 요즘 주로 머무는 곳들에는 대부분 와이파이가 설치되어있었다. 이렇게 와이파이에 너그러운 나라에서 이동시간, 기다리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다. 나에게 그 시간은 대략 30여분 정도. 셀룰러 데이터를 끄고 이동한 후, 목표 장소에 도착하면 대부분의 경우 와이파이가 잡힌다. 그러면 휴대폰 상단에 올라온 와이파이가 참 반갑다. 난 아직 셀룰러 조절 초기 단계라서 갈증이 난 상태인데, 생수 한 병 턱 내어주는 것만 같다. 다만 그때 점 하나면 너무 속상하다. 와이파이야 날개를 활짝 열어주렴...! 그때 띠링띠링! 하고 문자 메시지나 앱 알림이 온다. 난 알았다. 그때 확인해도 늦지 않다.


          

  예전엔 종이 울리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브의 개처럼 알림 소리만 나면 휴대폰을 들었다. 마치 지금 확인하지 않으면 큰 일 나는 듯, 나는 띠링~! 알림 소리만 나면 운전 중 정차할 때마다 휴대폰을 들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휴대폰을 들고는 흐름을 끊었다.   


          

  지금은 초보이지만, 셀룰러 데이터를 약간은 통제하는 셀룰러술이 생긴 것 같다. 내가 필요할 때 켜서 사용하고, 필요하지 않다 판단되면 셀룰러 데이터를 끈다. 그러다 보니 계절이 보인다. 앞에 앉은 사람이 더 잘 보인다. 책의 문장이 자주 보인다. 적어도 직사각형보다는 넓은 면을 입체적으로 본다.



  셀룰러술을 발휘할때, 나는 나의 태도를 내가 괜찮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컨트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의지대로, 내 선택에 따라 필요한 곳에 불을 켰다가 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셀룰러 데이터가 정말 소소한 부분이라서 좋은 게, 그런 소소한 순간들은 참 잦다. 그래서  ‘녀석, 그래도 아직 노력하는 게 괜찮네.’하고 나를 칭찬해 줄 순간도 그만큼 잦다. 세상 사는 게 내 맘대로 되는 게 별로 없는데, 이거라도 내 마음대로 하고 있다는 통제감이 주는 뿌듯함은 꽤 자주 찾아왔다.   


         

  봄부터 길들인 셀룰러술을 발휘해서 얻은 게 많다. 생각을 스트레칭하게 만드는 녀석이다. 가벼워진 통신비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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