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메모리, 구멍뚫린 주의력으로 살아요

by 주윤


봄 나들이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아이는 차 안에서 500ml 페트병에 든 이온 음료를 계속 흔들고 병을 다시 관찰하기를 몇 차례 한다. 나는 아이가 하는 이 움직임과 찰랑거리는 소리가 약간 번잡스럽게 느껴졌다. 그만 멈추라고 말할까 싶은데, 아이는 이젠 휴대폰을 달라고 하더니 휴대폰에 타이머를 설정해두고 병을 계속 흔든다. 타이머까지 설정해두는 것을 본 나는 아이의 행동에 의도가 있나 보다 하는 생각에 일단 기다려보기로 한다. 그때서야 나도 약간은 궁금하다. 왜 흔들고 있는지. 그래서 아이의 번잡스러운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10분이 지나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아빠! 10분을 흔들었는데도 음료수는 변화가 없어요!”

“탄산이 아니라서 그런가 봐. 탄산이었으면 보글보글 펑~! 했을 텐데.”

“아~”

“남편, 너무 현실적이다. 그치?”



나는 그 순간 현실적이라는 단어가 불쑥 떠올랐다. 아이는 10분을 쉬지 않고 열심히 흔들며 어떤 변화를 기대했을 테지만 결과는 여지없었다. 물론 10여분의 번잡스러움에 반응해주듯이 표면에 약간의 기포가 맺히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본래의 반투명 연회색의 차분함으로 돌아갔다. 아무리 흔든다고 해도 이온 음료는 탄산이 될 수 없었다. 본래의 고유한 특성이란 이렇게도 단호했다.


그러다 자연스레 나의 고유성은 무엇일까 떠올려보았다. 내 얼굴을 머리 위에 띵! 하고 띄우고 나에 대해 떠오르는 단어들을 하나씩 그 옆에 말풍선을 달아 띄워보았다. 맙소사! 엉망진창이다. 문득 떠오르는 것들은 모두 부족한 면들 뿐이다. 아무리 예쁜 포장지로 감싸고 리본을 예쁘게 묶어 주어도 내 고유성은 세상 부끄럽다. 문제는 이것들을 나만 알고 싶은데, 나는 그렇게 주변에 내 부끄러운 고유성을 잘 흘리고 다닌다.


첫 번째 키워드는 노 메모리. 나는 지금 메모리가 없는 듯한 앙상한 기억력을 겨우 붙들고 있다.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단순히 기억이 안 난다는 사실을 넘어서, 해당 메모리가 송두리째 들려나가고 뇌의 어딘가는 풍덩 하고 비어있는 것 같다. 덕분에 나는 한 번에 집 밖을 나가본지가 언제인지 싶다. 차 키가 없어서, 신용카드가 없어서, 휴대폰이 없어서 그렇게 다시 후다닥 계단을 올라 집으로 돌아가고 또 돌아간다. 언젠가부터 아이는 분명히 엄마는 나갔는데, 2-3분 후 띡. 띡. 띡. 소리에 엄마가 후다다닥 들어와서 물건을 챙겨가는 걸 보고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는 분명히 아이에게도 밑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는 아이를 차에 태우고 집에 돌아오는 길, 아빠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는 나의 말에 뒤에 타고 있던 아이는 답답해하며 말했다.

“엄마! 엄마는 깜빡쟁이잖아요. 잊어버려요!”

이 말에 아~아이마저 내 기억력을 쉽게 보는구나. 하고 굴욕을 느끼며 운전대를 잡았다. 동시에 나는 앙상한 기억력에 당하기만 했지 이를 이용하는 법을 몰랐구나 싶었다.

‘나도 참 일관성 없군.’

아니 그렇게 잘 잊어버리면 나쁜 기억도 잘 잊어야지 나쁜 기분은 계속 기억하는 내가 너무나 일관성이 없지 않은가.



그리고 문득, 나 기억력의 노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의 주도권을 놓쳐버리고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는 내가 보였다.

‘내가 기억하려는 것과 잊어버리면 좋은 것을 의식적으로 구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선별된 각각의 기억을 각 카테고리에 쏙 넣어두는 기억의 주도권을 내가 갖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 나는 아이의 조언을 되새기면서 내 기억의 운전대를 내가 잡겠다는 무모하고도 야심 찬 의지를 품으며 내 차의 운전대를 꽉 움켜 쥐었다. 그 첫 연습으로 그날의 나쁜 기억을 콕 집어서 잊어버리기 카테고리에 넣어 정리해보았다.



두 번째 키워드는 구멍 뚫린 주의력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지갑이 거추장스러워졌다. 이에 더하여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출근할 때 가방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주머니가 있는 날에는 주머니에, 아니면 양손에 차 키와 휴대폰을 들고 다닌다. 휴대폰 케이스에 신용카드 하나 넣어서. 그게 난 홀가분한데 그 대가를 가끔 치른다.


프로 깜박쟁이인 내 경험에 따르면, 신용카드는 참 다양한 방법으로 잃어버릴 수 있다. 차 시트 사이에 빠지기, 도서관 책에 함께 끼워 반납하기, 결재하고 카드 리더기에 놓고 오기, 입던 옷 주머니에 그대로 두기 등등. 매번 참 새로운 방법으로 잃어버릴 수 있다.



토요일 오후, 아이와 동네 도서관에 다녀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분명히 가지고 나간 신용카드가 없다. 물론 이때 다시 기억 회로를 돌려보는데, 모든 가능성을 제로에 두어야 한다. 그 시작은

‘과연 나는 정말 신용카드를 가지고 나간 것이 맞는가.’부터이다.


언젠가부터 스스로에 확신이 없어진 나는 스스로를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그리곤 여기저기 다 찾아보는데도 없다. 그리고 잠시 혼자 부끄러운 마음이 들며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설마, 반납한 책에 끼워져서 내 카드도 반납되었나.’



용기를 내어 도서관에 전화를 걸었다. 이 순간 나는 주책없고 정신머리는 더 없고 주의력 따위도 함께 반납해버린 사람이다.

“네! 방금 찾아보니 파란색 카드가 끼워있네요! 오늘 6시까지 열고 있으니 찾으러 오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감사한 마음에 열심히 액셀을 밟아 문 닫기 10분 전 도서관에 도착했다. 정의는 살아있고, 그걸 생각해 낸 없어진 내 정신머리도 살아있었다.



다음 날 저녁, 아무리 찾아봐도 또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이젠 스스로에게 짜증이 난다. 아, 어디에 둔 것인가. 나는 왜 이모양인가. 왜 기억을 못 하나. 아니 이쯤 하면 주의력 결핍인가. 자책의 끝에 갑자기 통찰이 찾아왔다. 설마...

“저기 혹시, 매장에 파란색 00 은행 체크카드가 있나요?”

“아, 네! 고객님. 어제저녁에 파란 체크카드를 결제하고 두고 가셨더라고요. 보관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을 다녀와서 집 앞 조그만 마트에 들렀던 나는, 결재를 위해 카드 리더기에 카드를 꽂아두고는 결재 완료 후 물건만 들고 카드는 놓고 왔던 것이다. 후다닥 달려가서 매장에서 맡아두신 카드를 받았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점원 분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허리 숙여 몇 번 감사함을 전하고 다시 후다닥 돌아 나왔다.


나도 가끔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실 땐 우아한 중년 여성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말을 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여지없이 커피를 옷에 흘려서 호들갑을 떨곤 한다던지, 도도하게 걸어가다 별안간 턱에 걸리거나 심지어 넘어지기도 했다. 정말 맙소사였다. 때로 다행히 그 순간을 잘 지냈다면, 다른 곳에서 물건을 잊어버려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되찾아오는 일이 생기던지, 또 다른 실수를 하곤 한다.



아, 나는 언제쯤 삶의 기술이 몸에 배어 능숙하고 간결한 움직임으로 우아하게 살 수 있을까. 나의 큰 걸림돌인 노 메모리와 구멍 뚫린 주의력은 도통 나를 쉽게 놔주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내가 좀 괜찮아 보여서 화려한 조명이 내 어깨를 감싸고 내 어깨가 제 맘대로 우쭐거리면, 그 뒷면에 붙어있는 내 부족함들이 우쭐한 나를 쫘악 잡아당긴다. 그리고는

‘여기 좀 봐. 언제나 꼭 그렇지만은 않아.’하고 진실의 형광등을 탁! 켜고는 살짝 알아차리게 해주는 것 같다. 내 고유성을 이렇게나 적극적이다.


부끄러운데도 자신을 드러내는 데 아주 적극적인 나의 고유성 덕분에 나이가 들면서 나는 스스로에 대해 확신이 없어졌다. 스스로를 의심한다. 한번 더 확인해보고 돌다리를 두드려본 후 대답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대에게 솔직히 말한다.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어요. 잠시만요. 확인해볼게요.”

그렇게 시간을 나의 편으로 잠시 빌린다.


대신 겸손이 생겼다. 지금은 내가 잘 해냈으나 나중에 나도 실수할 수 있음을 나는 내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상대의 실수에 어느 정도 너그러워졌다.

“그럴 수 있어요. 나중에는 제가 틀릴 수도 있어요.”


인생은 하루는 내 편이면, 하루는 남의 편이라고 하였다. 내 부끄러운 노 메모리와 구멍 뚫린 주의력은 어쩌면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내 반려 고유성이다. 다만 더 심해지지 않게 관리해가기 위해 나는 자주 정신을 똑떽이! 차리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부끄러운 고유성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얻는 것도 있다. 나에게 그것은 겸손과 너그러움이라는 잔잔한 삶의 기술이다.



또 모른다. 이 부끄러운 두 고유성에 또 하나가 더 붙고, 그러면 동시에 또 삶의 기술 하나를 더 얻을지. 삶에는 공짜가 없으니까. 새로 생겨날 부끄러운 고유성은 좀 부끄럽게 받아들이고, 얻게 될 삶의 기술은 넉넉히 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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