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거의 매일 아이의 사회생활이 궁금하다. 아이가 수업이나 학교생활에서 어떤 생각을 발표하고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 친구들이랑은 잘 지냈는지, 급식은 어느 정도 먹었는지가 다 궁금하다. 마치 우리 동네에는 내가 걸어가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는 흥미진진한 영화가 매일마다 펼쳐지고 있다. 나는 나의 연예인을 케어하는 입장에서 매일 그곳으로 나의 연예인을 데려다준다. 하지만 나는 입장권도 입장 권한도 없어서 데려다주고 곧장 나와야 한다. 너무 궁금한 마음에 까만 선글라스에 마스크로 나를 가린 채 담장에 붙어서 까치발을 들고 귀를 가까이 대어 보아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도리어 신고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저 내 연예인이 그 안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주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일과를 마치고 나오는 나의 연예인에게 오늘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친구들과는 잘 지냈는지, 혹시나 아직 서툰 1학년 아이들 사이에서 사소한 다툼은 있지 않았는지 묻는다. 나는 행여 심각하게 물어보면 아이가 감추는 게 있을까 싶다. 그래서 이 물음은 스몰토크일 뿐 별거 아닌 데다 대수롭지 않다는 인상을 주고자 지나가는 말로 툭 가볍게 전달하기 위해 목소리 톤을 좀 약간 높게 조정한다.
역시, 세상은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다 알려주지 않는다. 아이는
“괜찮았어요.”
하고는 내가 준비한 간식을 먹는다. 나는
“아~좋은 날이었네! 오늘 친구가 주윤이에게 싫은 행동할 때 하지 마! 분명히 말했어?”
“네. 근데 엄마! 그만 물어봐요.”
힝. 좋아하니까 궁금한 건데. 너무 궁금했는데. 궁금하다는 것은 애정과 사랑의 다른 말이어서 엄마는 늘 네가 궁금한데. 아직은 나만 궁금한가 보다. 아니 어쩌면 우리 관계에서는 늘 내가 더 많이 너를 궁금할 것만 같다. 그래도 좋은 점은 내가 궁금하면 직접 물어볼 수 있을 만큼 아이와 내가 지금 자주 함께라는 사실이다. 이런 행운을 가지고 내 사랑 아이와 함께 대화할 수 있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 나이기에 이쯤에서 나의 물음은 접기로 한다.
이렇게 아이가 궁금한 엄마인데도 긴장하는 한 마디가 있다.
“어머니, 잠깐 상담하실 시간 되시나요?”
여느 때처럼 수업이 끝난 아이를 데려가려는 길에 아이의 독서교실 선생님께서 부드러운 말투로 상담을 제안하셨다. 먼저 제안하시는 이 친절한 상담 제안에 모든 부모의 답은 정해져 있다.
“그럼요,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을 따라 들어가는 순간, 내 심장이 발바닥에 달린 듯 발바닥에서부터 심장이 두근거린다. 과연 선생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려는 걸까.
선생님께서 먼저 제안하시는 상담은 별일이 맞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아이의 활동에 대한 전문가이자 유일한 성인 관찰자이면서 무엇보다 교육자로서 갖는 선생님의 한 마디는 아이에게뿐만 아니라 학부모에게도 힘이 세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비교적 오랜 시간 아이를 관찰해서 우려되는 부분이 확실하다는 판단이 내려졌을 때 상담을 제안하신다. 그리고 상담 직전까지도 생각을 보다 완만하게 조정하신 후 학부모들에게 말을 건네신다.
지난 4개월간 독서수업을 해주신 선생님은 말씀에 진심을 담는 분이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말을 누구보다 귀 기울여 들어주신다. 그래서 지난 스승의 날에 아이는 스스로 독서 선생님께 감사의 카드를 쓰고 싶어 했다. 그리고 카드에 한 문장을 진심으로 적었다.
‘선생님, 제 말을 잘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이 문장이 너무나 고마웠다. 내가 보지 못하는 수업에서 얼마나 선생님께서 아이의 말에 눈과 마음을 맞추어 주셨을지가 짐작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는 언제나 독서수업에 가는 것을 일주일의 기쁨으로 여기고 있다. 독서수업에 가는 날이 오면 전날 잠자리에 들 때부터 기대를 한다.
‘엄마, 내일은 좋은 날이에요. 독서수업에 가는 날이잖아요!’
그런 밤에는 내 마음이 더 따뜻하다.
그런 선생님께서 먼저 상담을 제안하셨다. 무슨 일일까. 아마도 지난번에 넌지시 건네신 아이의 특성에 관해 말씀하시지 않을까 싶다. 어떤 일에든 늘 전조는 있게 마련이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말로 설명하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아이는 아마도 독서시간에 투머치 토커였을 것이 분명하다. 특히 요즘에 아이는 깊고 넓은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과학의 바다에 매 순간 빠져있다. 그래서 매주 주제가 되는 책을 읽을 때에도 과학이 담긴 부분을 찾아내느라 바쁘다. 예를 들면, 지난주 책은 ‘강아지 똥’이었다. 이 책은 남들이 더럽다고 피하는 강아지 똥이 거름이 되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해낸다는 아름다운 동화이다. 이 따뜻한 의미를 가진 동화를 읽은 후, 아이는 책이 참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묻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강아지 똥에도 과학이 있거든요. 바로 소화와 배설이에요!”
아...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그럼, 같은 텍스트를 읽어도 사람들은 나름대로 해석하기 마련이지. 그렇지. 그럴 수 있..... 어.
“어머니, 주윤이는 과학과 의학 영역에 관심이 있고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자신이 이해해서 정리한 과학적 개념을 말하거나 자신만의 언어와 표를 이용해서 노트에 정리하는 활동을 할 때 얼마나 몰입하고 신나 하는지 연필이 그렇게 춤을 추는 것 같아요. 그런데 책의 내용에 대한 주윤이의 생각을 물으면 어려워합니다. 그리고 정서적인 부분에서도 아직 표현이 서툴러요.”
내 예상이 맞았다. 평소 주윤이의 일기나 글쓰기를 볼 때 나도 자주 느끼던 부분이었다. 그런 주윤이에게 나는 엄마로서 잔소리를 하곤 했다.
“주윤아, 이렇게 내용을 정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어. 네 글에는 네 생각이 들어가야 해. 그래야 세상에서 유일한 네 글이 될 수 있어.”
나도 내 문장 하나 제대로 못 쓰지만, 언제나 남의 글엔 할 말이 많은 법이지 않나. 나는 그렇게 철저히 자기반성 없는 평가를 하곤 했었다.
“네, 선생님. 저도 그 부분을 알고 있어서 말은 하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여러 번의 관찰과 지도 후 상담을 요청하신 선생님께
‘아직 1학년이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하는 엄마의 회피는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선생님의 상담 제안에 깔려있는 전제는 아이의 현재 특성이 또래 아이들과는 차이가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선생님도 평범한 사실에 대해서 먼저 상담을 요청하지 않는다. 엄마는 이때 선생님께서 알려주시는 사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1학년이어서, 어려서, 남자아이라서.. 이런 것들은 방어이자 회피일 뿐이다.
나의 인정의 말에 선생님께서는 본인도 아들을 키우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이에게 의도적으로 엄마의 감정을 말해준다고 하셨다.
“엄마는 오늘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어서 속상했어.”
“엄마는 네가 이렇게 행동해서 정말 기뻐. 편안해.”
그리곤 남자아이여서 살가운 피드백이 있지는 않지만, 가끔이라도
“엄마, 속상했겠네.”정도의 공감까지는 발전하더라는 자신의 이야기도 나눠주셨다. 그렇게 하세요. 이렇게 하면 됩니다. 이런 솔루션이 아닌 자신의 경험을 조심스레 나눠주시는 그 말씀에 상담 전 보다 부드럽게 다듬으셨을 선생님의 다정한 시간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수업이 어땠는지 묻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를 했다.
“주윤아, 오늘 아침에 엄마가 시간이 돼서 아빠에게 가서 도와주려고 했거든. 근데 아빠가 길이 막히니까 번거로워질 거라고 괜찮다고 하는 거야. 엄마는 그래도 괜찮다고 했는데 계속 아빠가 오늘은 안 도와줘도 된다고 하길래 엄마는 삐졌거든. 근데 되려 아빠가 화를 냈어. 그래서 엄마도 화났어. 엄마 어떻게 해야 해?”
“엄마, 화냈으면 아빠한테 사과해야지요.”
“엄마는 화 안 냈어. 아빠가 화냈지. 엄마는 사과 안 해.”
“아니에요. 아빠도 사과하고 엄마도 사과해야 사이가 좋아지지요.”
“엄마는 아빠가 화낸 게 계속 생각나는데?”
“엄마! 엄마는 깜박쟁이잖아요! 잊어버려요!”
엄마와 아이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아니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나에게 오늘은 무얼 했는지, 얼마나 해냈는지 물어보기만 한다면 어떨까. 나는 분명 잘했던 것만 이야기하고 나의 실수나 잘못은 숨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평가한다는 생각에 불쾌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곤 선을 그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이 만큼만 말하자. 자신을 보여주지 않고 나를 추궁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피하자.
내가 내 이야기와 내 감정을 보여주었을 때 비로소 아이의 말에 마음이 담겨 돌아왔다. 우리는 그날 저녁 자신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그 사람의 생각을 나누었다. 그리고 아이의 조언은 내게 위로와 조언이 되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대화를 통해 하루 동안 남편에 대해 까칠했던 나의 정서도 다소 완만해졌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는 데 독서 선생님께 메시지가 도착했다.
“주윤이의 모든 것이 주윤이의 힘이 되도록. 그 마음으로 만남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선생님 덕분에 오늘 아이와 대화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또 넓은 생각을 보여주신다.
나는 아이의 생활을 궁금해하는 데에는 아이가 잘했으면 하는 마음과 행여 피해를 보지 않았나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개입을 해서 해결해주려는 오만한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는 선을 넘는 생각이 분명하다. 선을 넘는 일이 남기는 것은 서로에 대한 실망일 확률이 높다.
내가 할 일은,
눈을 맞추며 아이의 말에 ‘그랬구나’하고 경청하는 일이다.
‘괜찮아’하고 서툰 마음을 따뜻하게 안심시켜주는 일이다.
도와달라는 말에 ‘그럼!’하고 손을 잡아주는 일이다.
그렇게 아이가 가진 강점도 약점도 결국 아이에게 힘이 되도록 격려하고 지지해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