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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Mar 17. 2022

정성 한도 초과


  “이번 네 생일에 내가 꼬물꼬물 손으로 접어서 생일카드 만들어줄게!

   정말 쉬워! 유튜브에서 생일카드 검색해서 제일 먼저 나오는 걸로 만들면 돼!”

그날 아침, 아마도 봄이 오눈 듯한 아침의 맑음에 기분이 상당히 좋았던 게 분명하다. 이렇게 좋은 기분은 내 마음에 훅-하고 들어와 내 발을 지평선에서 살짝 올려놓고는 모든 것을 다 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세계에 날 데려다 놓았다. 그때 나는 내게 의미 있는 사람들까지 그 세계로 초대하고 싶어 진다. 나의 작은 행동으로.       

   

  아이를 등교시킨 후 경쾌한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아침 꽃 시장으로 갔다. 아침 꽃 시장에 들어서니 내 마음에 봄 빛과 봄 내음으로 울린다.

‘그래! 오늘은 봄 튤립이어야만 하는 날이다.’

 어떤 색의 튤립이 좋을까 하고 둘러보는데 하얀 튤립을 보니 수년 전 겨울의 내 결혼식이 떠올랐다. 그때 저 하얀 튤립을 부케로 들었던 사복 사복 눈 오던 그날. 그 옆엔 노란 튤립이 명랑하게 안녕! 한다. 나도 눈인사를 하며 노랑이를 보니 아이의 임신을 축하하며 시누이가 사주었던 노란 튤립을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꽂을까 고민하던 늦겨울 나의 신혼집 부엌이 떠올랐다. 한 바퀴를 돌고 나서 오늘은 봄날의 생일이니 분홍으로 정한다. 그리고 아쉬우니 우리 집에 꽂아 둘 노랑 버터플라이 한 단도 함께 사서 나왔다.      


  아름다운 것들이 주는 기쁨이 있다. 내 생활비에 애초에 계획되지도 않았고, 그다지 쓸모가 없는 데다 그 용도의 기한이 극히 짧은 것을 사는 것은 일단 망설여지게 된다. 더욱이 그저 내 기분을 위해 가볍게 쓰이는 돈을 결재하기란 여간 무거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 기분을 위해 마음먹고 들인 무쓸모의 물건이 내 일상에 들어오면, 내 일상의 장면과 내 마음은 그 전과 후가 질적으로 달라진다. 마흔이 되어간 내게 다름이란 언젠가부터 기대되고 도전해보고 싶은 것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일상의 익숙함과 권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러한 무쓸모의 것이 아름답기까지 하다면! 그 아름다운 무쓸모의 것이 내 일상에 아름다운 바람을 불어다 준다면! 내 일상은 갑자기 꽤나 근사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꽃이라면! 내 마음은 어느샌가 꽃에 물들어 내가 아름다운 사람이 된 듯하다. 그렇게 나는 꽃시장을 나오면서부터 온 마음에 환한 봄기운을 가진 봄 부자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 친구에게 호언장담을 한 카드를 만들기 위해 유튜브를 검색했다. 오늘의 콘셉트는 자연스럽게 봄 꽃이 되었으니, 오늘은 벚꽃을 모티브로 한 팝업카드를 만들기로 정했다. 하얀 A4 종이를 자르고 접어 같은 꽃송이 7개를 만들고, 각 꽃송이마다 연분홍 그러데이션을 주었다. 그리고 가운데는 연보라 수술까지 더해주었더니 꽤 근사하다. 완성해서 소녀스러운 분홍빛 벚꽃 카드를 보니 내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내 마음 숨어있던 빨강머리 앤을 좋아하던 소녀의 정서가 드러나는 느낌에 괜히 친구에게 이 카드를 주기가 쑥스러워졌다.


  사실 친구와 나는 참 다른 사람이다. 맺고 끊음이 확실하면서도 잔정이 많은 친구와 우유부단한데 잔정은 없는 나는 이상하게 어릴 적부터 친했다. 같은 동네에서 같은 학원을 함께 다녔지만 친구는 피겨와 팝스타를 좋아했고 나는 빨강머리 앤을 좋아했다. 서로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함께 학원에 가는 길에도 서로의 화법은 달랐다. 그 당시에 나는 친구의 명확하고 분명한 플랫 한 화법에 당황하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내 고민을 친구에게 말하고 나서 나와 다른 시각과 명확한 친구의 생각을 들으면 도움이 많이 된다. 친구와의 대화는 내 생각을 의심하게 하고 내 생각을 다시 생각해주게 하는 힘이 있다. 이것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각의 방식이다. 내 생각에 대한 의심이 없이는 내 삶이 고루해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가끔 살짝 으음? 할 때도 있으나 그런 사고의 반향은 새로운 일로 여길 수 있다.

난 마흔이니까^^     


  이렇게 다른 우리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내가 간질거리는 이 봄 카드를 그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용기의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그 믿을 구석은 내가 이사를 하거나 책상 정리를 할 때 내 서랍 속에 가장 많았던, 그리고 최근까지 주고받은 카드와 편지의 글쓴이는 그 친구였다는 사실이다. 비록 요즈음 우리 대화의 대부분이

 “그때 코로나로 휴원한 날만큼 원비 돌려주신다고 하셨는데 소식이 없어. 지금은 물어봐도 될까?”

 “우리 남편이... 우리 시댁은...”

 “학원비 얼마 나와? 난 이만큼인데 넌? 와~정말 너무 많지 않아?”

 “우리 애들도 자기들에게 이렇게 돈이 쓰이는 걸 원하지는 않을 거야?”

하는 중년 아줌마의 시시콜콜한 일들도 채워져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녀와 나는 소녀시절의 우리를 기억한다. 친구의 딸이 동계올림픽을 보고 피겨 선수를 열렬히 응원한다는 말에 나는

 “너 미셸 콴을 좋아했잖아. 엄마 닮았네.”

했고 그 친구는 자연스레 그 시절을 떠올렸었다. 또 어느 날 친구는

"빨강머리 앤을 보니 네 생각이 났어!"

하고는 빨강머리 앤 1000피스 퍼즐을 내게 안겨주기도 했었다. (미안하지만 아직 이 퍼즐은 개봉하지 않았다. 오~1000피스라니...)


  그렇게 우리는 서로 쪽지와 편지, 카드를 주고받던 소녀시절의 우리를 기억한다. 그때의 글씨들에 담긴 마음에 대한 기억은 이 간질간질한 카드를 그녀에게 전해줄 용기가 되어주었다.



  그래도 짐짓 간질거리는 마음을 감추고자 친구의 생일을 듬뿍 축하하는 멘트와 분홍빛 카드의 달달함을 살짝 무심히 누르고자 한 문장을 넣어보았다.

‘아! 아무래도 올해는 정성 한도 초과인데!’

내 마흔의 문장에 소녀다움만을 채우기엔 어색하니까.



  친구의 직장에 분홍 튤립과 카드, 작은 선물을 가지고 갔다. 회색의 도시에 꽃을 들고 가는 사람은 낭만적인 걸음을 얻는다. 그 발걸음은 꽃 향기만큼 참 가볍고 화사하다.


  저 앞에 마중 나온 친구가 나를 보고 깔깔 웃는다. 그리곤 내가 오는 걸음을 휴대폰 사진기로 찍으려 한다. 나는 꽃과 카드가 들어있는 쇼핑백을 한껏 들어 올리며 두 팔을 브이자로 쭉 뻗으며 웃으며 걷는다. 마스크로 가려져있지만, 내 입꼬리와 턱은 힘껏 올라가 있다. 일상의 건조한 보도블록이 찰나의 명랑한 봄으로 가득했다.    

  

  사소한 정성의 꼼지락거림이 어딘가 숨겨져있던 소녀스러움을 살살 만져준 날이었다.

  봄을 닮아 간질거리는 그런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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