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네 편이 되고 싶다

by 주윤

주윤이의 학원 수업이 끝날 시간에 맞추어 근처 주차장에 주차를 해두었다. 우린 거의 매일 이렇게 2시간 만에 다시 만나곤 하는데, 나는 매번 주윤이가 반갑다. 저 멀리 반가운 봄비 같은 주윤이가 걸어 나온다. 나는 마치 봄의 마른 흙과 같아서 봄비의 작은 방울에도 들뜨고 부풀어 오른다. 다가오는 주윤이를 보고 손을 번쩍 들어 힘차게 흔들 때마다 봄비를 머금은 덕에 너그러워진 흙냄새와 연둣빛 싹의 향이 뒤섞여 내 마음에 울려 퍼진다.



“주윤!”

주윤이는 내가 보낸 반가움의 목소리에 대한 메아리인 듯 나에게 달려와 와락 안긴다. 나는 내 품에 폭 안긴 주윤이의 엉덩이를 토닥거려주기도 하고, 꽉 안고 볼을 부비기도 한다. 두 시간 동안 애썼을 주윤이의 긴장과 그런 주윤이에 대한 내 안쓰러움은 이 찰나의 순간에 위로를 받는다.



“오늘은 어땠어?”

“음~”

“주윤아, 간식 먹어. 우유랑 크래커!”

나는 여느 때처럼 주윤이와 차에 타서 간단한 간식을 건네주었다. 주윤이에게 간식을 주는 일은 학교와 학원을 다녀온 주윤에에게 건네는 나의 작고 확실한 기쁨이다.



“엄마, 첫 번째 수업은 괜찮았는데 두 번째 수업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어요.”

“응? 어떤 문제? “

평소 같으면, 굿! 한 글자로 끝났을 우리의 일상적 대화에 ‘문제’라는 단어가 끼어들었다. 반가움으로 가득했던 길에 별안간 브레이크가 걸린다. 그리곤 엄마의 주특기인 걱정이 몰려온다.




“그게 있잖아요. 원래 이틀 동안 책 1권을 다 읽고 끝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책을 한번 더 했어요.”

“아 그래? 왜?”

“책을 듣는데, 녹음된 소리가 너무 작아서 잘 안 들렸거든요. 그거 들으려고 하다 보니 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났어요.”

“그래? 그래서 퀴즈를 많이 못 풀었어?”

“퀴즈는 안 했는데, 선생님께서 물어보시는 거에 대답을 잘 못 했어요.”

“선생님께서 이것도 몰라? 하셨어?”

“네, 대답을 못하다니...!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어요. “

“그러면 선생님께 음원이 잘 안 들렸다고 말씀드렸어?”

“아니요. 선생님이 무섭거든요. “

“선생님이 무서우면 주윤이가 선생님과 이야기할 때 말하기가 어려웠겠다. “

“엄마! 대답을 그렇게 못하는 게 말이 돼요? 선생님 앞에서 대답을 못 하다니... “



나는 선생님이 무섭다는 주윤이의 말에 꽂혔다. 영어학원은 말하고 쓰는 곳인데 선생님이 무서우면 자유로운 발화가 가능할까 하는 문제 제기 하나. 무엇보다 과연 어느 정도의 엄격함과 무서움이었을까에 대한 우려 둘. 그로 인해 주윤이가 위축된 채 학원을 다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셋.



친구와 싸우면 친구 잘못만 말하는 일곱 살 같은 마흔 살 엄마는 이렇게 선생님 탓을 하느라 바빴다. 주윤이에게 선생님이 얼마나 무서운지 물었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주윤이가 선생님 앞에서 주눅이 들었다면, 학원 스타일과 주윤이의 성향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지 못한 상황에 대한 우려는 점점 불어나 마침내 학원을 그만 다녀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일방적인 주윤이 편을 하기에만 바빴다.



집에 돌아와 나는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주윤이는 학원 숙제를 하기로 했다. 다른 학원은 어디를 알아봐야 하나 생각하며 쌀을 씻고 압력 밥솥에 쌀을 안치며 주윤이를 보았다. 어라! 주윤이는 의자 옆에 서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숙제를 하고 있었다.

“주윤! 의자에 앉아서 해야지!”

나는 달걀 물에 다진 채소를 넣고 젓가락으로 섞으며 집 가까운 학원을 떠올리며 주윤이 쪽을 보는데, 이번엔 주윤이가 아예 테이블 위에 올라가 문제를 풀고 있다. 나는 순간

“주윤!” 하고 도끼눈에 포효를 담아 주윤이를 불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생님 탓으로 가득 찼던 머릿속으로 가벼운 바람이 훅 하고 불어 들었다.

‘학원에서도 딴짓했겠구나!’



주윤이의 딴짓에 가장 엄한 사람은 결국 나였는지 모른다. 숙제와 연산공부를 하기 싫을 때 주윤이는 책 모서리를 구부린다던지, 연필을 자주 떨어트리는 행동을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와락 뜬 눈과 모래주머니 잔뜩 채운 목소리로 주윤이를 부르며 주의를 다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윤이의 딴짓이 계속되는 날에는 주윤이의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을 냈었다.



과연 주윤이는 그때의 내가 더 무서웠을까, 아니면 오늘 학원 선생님이 더 무서웠을까. 확실한 건, 아마 내가 혼낼 때 주윤이는 더 무서웠을 것이다. 뒤가 없이 혼내는 나는 야멸찼고, 주윤이가 울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화가 먼저였고, 내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주윤이를 안아주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안다. 가장 가까운 사람, 그래서 결국 가족이 가장 큰 상처를 남기곤 한다는 것을.



나는 내로남불의 전형이 되어있었다. 내가 엄하게 혼내는 건 잊고 선생님의 지도만을 탓했다. 주윤이의 딴짓은 잊고 선생님의 엄격함의 의도를 곡해했다. 나는 그렇게 주윤이 편을 하느라 내 아이를 살피지도, 나를 살피지도 않았다. 모른다. 그 곡해에는 어쩌면 선생님이 내가 가장 엄하게 혼냈을 때처럼 주윤이를 혼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지도. 결국 사람은 제 만큼 상상하기 마련이니까.



일방적인 주윤이 편을 멈추자 이제 주윤이가 보인다. 다시 생각해 보면 주윤이가 속상한 것은 선생님 앞에서 대답을 못했다는 것이었다. 제 딴에는 영어를 좋아하는 덕에 그동안 칭찬을 듣고 다녔기에 낯선 경험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주윤이 편을 한답시고 결국 진짜 주윤이를 돕지 못했다. 소중한 널 걱정한답시고 내 속상함과 남 탓을 키우느라 정작 네 말을 듣지 않았다. 이건 진짜 네 편이 아니다.



“주윤이가 대답을 못해서 속상했구나. 그걸 보고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한다.”

“자존심이요?”

“응. 내가 이만큼 가치 있는 사람인데 상대가 그걸 몰라주었다는 실망감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

“선생님이 물어보는데, 대답을 못 하다니!”

주윤이는 또 같은 말을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홉 살 주윤이는 해결되지 못한 문제에 아직도 속상하다.



주윤이의 sos에 내가 응답해야 할 것은 주윤이의 구겨진 자존심을 돕는 일이지, 남 탓을 할 게 아니었다.

“주윤, 어떤 책이었어? 그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오자. 그리고 다음 시간 전까지 그 책을 다시 읽어가는 거 어때?”

“도서관에 없으면요?”

“엄마가 지금 검색해 보고 없으면 사줄게. 하루면 배송되는 거 알지? 다시 차분히 읽고 가면 내용 정리가 돼서 대답할 수 있을 거야. “

“맞아요. 엄마. 책 구해주세요. “

결국 책을 구매했고, 주윤이에게 내일 도착예정임을 알려주었다. 주윤이는 그제야 얼굴이 다시 피어난다. 하나는 해결. 이젠 두 번째 문제가 남았다.



“주윤아, 공부할 때와 놀 때는 다르잖아. 그렇지? 근데 요즘 주윤이를 보면 공부할 때도 큐브생각을 하는 거 같아. 뭐랄까 방방 떠 있는 느낌? “

“음...”

“우리 이번달에 이걸 실천해 보자. 공부는 차분히! 놀이는 신나게! 이 두 개를 분리하는 거야. 이게 좋은 점이 있어. 뭔지 알아? “

“음, 놀 시간이 빨리 오는 거? “

“그렇지! 공부하면서 놀면 공부가 안 끝나. 실력도 안 늘고 피곤하기만 하거든. 서로 꼭 분리해 보자!”



나는 가끔 바란다. 내 안에는 네가 보낸 신호를 또렷이 잡아 경청할 수 있고, 치우침 없이 여러 각도의 생각을 고려하는 데 도움이 되는 둥근 접시를 가진 접시 안테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고작 내 경험으로만 할 수 있는 생각에만 꽂히지 않고 문제를 둥근 각도에서 들춰볼 수 있는 지혜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편 먹기에 바쁜 네 편이 아닌, 진짜 네 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난 너의 진짜 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