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에게 시리즈 열 네 번째 이야기
봄에게
3/28 올해 첫 개나리를 봤습니다.
어제밤에는 이수역앞에서 살구 꽃을 봤습니다.
살구 나무 옆 작은 화단에는 봉오리가 맺혀있었어요.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당신은 어느새 곁에 와 있었어요.
기척도 없이 조용히 다가와선
햇살을 조금씩 기울이고,
바람을 살살 풀어 놓더군요.
분명 바람은 아직 찼고,
햇살도 반팔을 허락하진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서
당신이 오고 있다는 기척이 났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계절 중에서 당신이 제일 흐릿한 것 같기도 해요.
눈처럼 뚜렷하지도 않고,
태양처럼 확실하지도 않거든요.
그런데도 참 이상하지요.
당신은 늘 짧게 머물렀지만,
당신을 지나온 날들은 유난히
따뜻하고 부드럽게, 오래도록 남아 있더군요.
마치 한 줄 시처럼 스쳐갔지만,
그 문장이 마음속에 계속 울리는 것처럼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랑에 빠지는 계절도,
헤어지는 계절도 당신이라던데
그 말이 괜히 나왔을까 싶습니다.
당신은 이별의 문장마저
어디론가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답게 만들어버리니까요.
그리고 저 역시 당신에게
몇 번쯤은 괜히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었으니까요.
다시 찾아와 줘서 고맙습니다.
어쩌면 저는
당신을 닮은 사람들에게도 약한 것 같아요.
말수가 적고,
감정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계절을 건네는 사람들.
당신을 보면 그런 사람들이 떠오르고,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또 당신이 떠오르니까요.
올해는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자세히 당신을 바라보고 싶어집니다.
함께 걷고,
차를 마시고,
마음을 쓰고,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 사람들과 작별하고,
그러면서도 조용히 미소 짓는 날들이 되길 바랍니다.
다음에 당신이 떠날 때는
이번보다 덜 아쉬웠으면 해요.
당신이 있었다는 걸
내가 정말 많이 느끼며 보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당신을 기다렸던
한 사람의 마음을 담아
조용히 인사를 남깁니다.
— 봄이란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어느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