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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는 누나에게(축사)

만물에게 시리즈 열 세 번째 이야기

by 만물에게

결혼하는 누나에게 | 축사


누나와 저는 유년시절에는 참 많이도 싸웠습니다.


20년전이였을 겁니다.


누나랑 싸우다가 누나가 홧김에 던진 보온병에 맞아 쓰러진게 엊그제 같네요.

저를 잘 뉘어놓고는 죽지말라며 엉엉 울었던게 기억이납니다. 자기가 던졌으면서.


자기 화장실 가야하는데, 왜 아직도 있냐고 제게 소리를 지르는 모습도 떠오르고.


가끔 화장실변기가 막히면 저는 이 때다 싶어 누나 방까지 쫓아가서 누나 놀려대곤 하던 모습도 떠오르네요.


그 시절 그 장면 속 13살의 신연희가 저에겐 아직 선명한데, 오늘 결혼을 합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저는 감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불확실함만이 가득한 이 세상 속,

예측 가능한 상수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서로가 되어주는 일.


서로 바라보고 기대며, 실낱 같은 희망을 함께 더듬어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제도.


저는 웬만하면 경험해본 것만 믿는 편이지만.

경험해보지 않은 결혼에 대해 이렇게 믿고 살고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철없어 보이고, 너무 거창하지 않나? 라고 생각하고 있을수도 있는 결혼이라는 단어를 위해.


그리고 저에게는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의미있는 결혼을 위해.


누나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서, 누나한테 하고 싶은 말 몇 마디 적어와서 이 자리에서 전해볼까 합니다.



목요일이 춘분이였고, 이제는 완연한 봄이 찾아온 것 같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꽃이 피어나듯이,

오늘은 누나 인생에서 새로운 꽃이 피어나는 날이야.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고,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듯이,

이제 누나 옆에 계신 멋진 형님과 함께 따스한 시간들을 쌓아가겠지.


어릴 적을 떠올려봐. 겨울같던 나날들, 누나는 늘 내 손을 잡고 눈 쌓인 길을 걸어줬을거야.

분명 누나는 앞장서서 발자국을 냈었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며 누나가 만들어준 길을 밟으면서 걸어왔어.

그때 누나 손은 차가웠겠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온기였을테고.


그렇게 누나는 내게 겨울 속에서도 봄을 보여줬던 사람이야.


그리고 오늘, 누나는 더 큰 사랑 속에서 누나의 봄을 맞았구나.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듯, 누나의 삶에도 이제 새로운 꽃이 피어나겠지?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맞잡고 걷는 이 길은, 때론 차갑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서로의 온기로 녹여내고 그 과정에서 더욱 단단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왜냐하면,


내 주변사람들에게도 늘 말하지만, 누나는 내가 아는 사람중에 가장 순수하고 선한 사람이거든.


나는 멀지만 가까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누나가 늘 행복으로 피어나길 조용히 바라볼게.


누나가 걷는 이 봄길에 햇살이 가득하길.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듯, 누나의 웃음이 매일 가볍게 퍼지길.

겨울의 추억을 간직한 채, 이제 봄의 약속을 안고 살아갔으면.


사랑하고 이 아름다운 시작을 진심으로 축하해.


동생 규철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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