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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장역사쟁이 Nov 07. 2016

최순실과 박근혜, 진령군과 민비

대한민국의 현실




역사는 반복되는가?


말 그대로 혼돈의 대한민국이다. 모든 것이 최순실이라는 블랙 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경악을 금하지 못하는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고 있다.
평소 텔레비전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다. 뉴스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매일 저녁시간이 되면 신들린 듯이 텔레비전 앞에 앉게 되고 다시 경악하게 된다.
야당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명명한 이번 사건의 시발점은 현직 대통령과 최태민이라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언론 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 사족을 제외한 큰 뿌리는 권력자와 종교적 영험을 주장하는 자의 만남이다.
역사적으로 이와 아주 유사한 일이 130여 년 전에 이 땅에서 일어났었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고 부른다면 그때는 민비(명성황후)-진령군 게이트로 부르면 될 듯하다.
당시 조선사회를 뒤흔든 사건이었음에도 민비와 관련된 일이라서 그런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이 많지 않아 조선왕조실록의 내용 일부를 인용하고 대부분은 황현의 <매천야록>의 대강을 옮겨 보기로 하겠다.





박근혜와 최태민과의 만남은 육영수의 죽음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었다. 며칠 전 박근혜의 동생 박근령의 말을 신동욱(박근령의 남편) 대신 언론에 전한 내용은 다르다. 육영수의 죽음 전부터 최태민은 박근혜 주변을 맴돌았고, 육영수는 박근혜에게 주의를 줬다고 한다. 



민비-진령군 스캔들의 발단은 1882년에 일어난 임오군란이었다. 흥선대원군 하야 후 정권의 전면에 나선 민씨 일족은 나름의 개화 정책을 추진한다. 개화 정책의 일환으로 신식 군대로 불린 별기군이 만들어진다. 문제는 기존의 구식군대(무위영, 장어영)를 차별했다는 것이다. 당시 군인들은 월급을 받는 직업군인의 성격이 강했는데 자그마치 13개월의 월급을 주지 않았다. 
밀린 월급을 요구했을 때 돌아오는 것은 매 타작이었지만 결국 밀린 월급 중 한 달 치를 받게 되었다. 당시는 돈 대신 현물인 쌀로 받았는데 쌀 속에 모래와 겨가 잔뜩 섞여 있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구식 군인들의 불만이 급기야 터져서 일어나게 된 것이 임오군란이다. 
성난 군인들은 민겸호 등 민씨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죽이고 궁궐에 들어가 민비를 찾았지만 상궁으로 위장해 구사일생으로 궁궐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민비가 향한 곳은 충주였다. 이곳에서 무당 진령군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민비, 충주에서 무당을 만나다.(매천야록)

민비가 충주에서 도피생활을 할 때 한 무당이 환궁할 때를 점쳐 주었다. 그 날짜가 들어맞자 민비가 신기하게 여겨 그 무당을 데리고 환궁한다. 
몸이 좋지 않을 때 무당이 손으로 아픈 곳을 만져 주면 증세가 줄어들었다. 날마다 총애가 더해지니 무당의 말이라면 들어주지 않는 것이 없었다. 마침내 무당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관성제군(관우)의 딸이니 신당을 지어 정성껏 받들라"
민비는 그 말대로 따르고 무당을 진령군으로 봉했다. 무당은 아무 때나 대궐에 나아가 임금과 민비를 뵈었으며, 때로는 남자 옷으로 단장하기도 했다. 임금과 민비는 그를 가리키며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군(군)이되니 믿음직하도다"
금은보화를 상으로 주니 이루 셀 수 없이 많았다. 화와 복이 그의 말 한마디에 달렸으니, 수령 방백들이 자주 그의 손에서 나왔다. 이에 부끄러운 줄 모르는 대신들이 앞다투어 그에게 아부하니, 혹은 자매라 부르기도 했고, 혹은 수양아들이 되기를 원하기도 했다. 조병식, 윤영신, 정태호가 특히 심했다. 무당에게는 김창열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버젓이 벼슬아치들과 자리를 나란히 했다. 무당은 본디 제천과 청풍 사이에 살았다고도 한다.

"어머니(육영수)를 잃고 시름에 빠져있을 때 최태민으로부터 몇 통의 편지를 받은 후 최태민을 만났다. 최태민이 어머니가 꿈에 나타난 이야기를 하니 그를 굳게 믿기 시작하고 구국선교단, 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 등의 일을 함께 했다.
최태민은 박근혜를 앞세워 재벌기업으로부터 천문학적인 돈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매일 수없이 보는 사진이다. 이 사진 때문에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계도


최순실은 권력을 등에 업고 자신의 인맥을 만든 듯하다. 문화계, 체육계, 경제계, 정계 등등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오늘도 계속해서 의혹 분야가 늘어나고 있다.


진령군, 측근을 만들다.(매천야록) 

이유인이 귀신 장난을 하여 진령군의 마음을 사로잡다.
이유인은 김해 사람으로 가난하고 천한 무뢰배로 무과에 급제하여 서울 바닥을 떠돌아다녔다. 그는 진령군이 정권을 휘두르며 잡기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을 시켜 "이유인이 귀신을 부리며 비바람도 일으킨다"고 전하게 했다. 진령군이 깜짝 놀라 즉시 그를 불러 귀신을 시험해 보라고 청했다. 이유인이 말했다.
"그야 쉬운 일이지만 무서워 떨 것입니다. 며칠간 목욕재계해야 합니다.
이유인이 밖으로 나와 영남 사람들 가운데 떠돌아다니는 불량배들을 불러다 몰래 계략을 말해 주고, 정한 날짜가 되자 진령군을 끌고 한밤중에 북산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솔숲이 깊고 칠흑 같은 데다가 날아다니는 반딧불이 반짝거려 벌써 사람이 사는 곳과는 달랐다. 이유인이 점잖게 말했다.
"내가 있으니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그러고는 머릿수건을 휘두르며 불렀다. "동방청제장군"
그러자 귀신 하나가 엄숙히 팔짱을 끼고 앞에 나타났다. 온몸이 남청색으로 열 걸음 떨어진 곳까지 다가와서는 더 오지 않았다. 진령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에 뭐가 떨리겠는냐?"
이유인이 말했다.
"조용히 하고 좀 기다리십시오."
다시 불렀다. "남방적제장군"
그러자 키가 십 척쯤 되는 한 귀신이 나타났다. 온몸이 붉은빛이고, 머리는 기성 같으며, 튀어나온 사각 눈은 붉은 유리 같았다. 입으로는 붉은 피를 내뿜어 비린내가 나는 것이 야차처럼 무서웠다. 손을 뻗으며 일어서니 진령군이 잠깐 쳐다보다가 이유인의 발을 밟으며 말했다.
"빨리 거두어라. 더는 보고 싶지 않다."
붉은 귀신은 가면을 쓴 것이었다. 진령군이 돌아가 이 사실을 임금과 민비에게 아뢰자 곧 이유인을 입시케 했다. 그는 일 년 만에 양주 목사까지 이르렀다. 이유인은 진령군과 모자의 연을 맺고 북묘에서 머물렀는데, 추잡한 소문이 들렸다.

"최순실의 측근들 이력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별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입이 더러워질까 언급하지 않겠다."

안효제가 무당 진령군을 죽이라고 상소하다.(매천야록)

7월에 안효제가 상소하여 요사스러운 무당 진령군을 죽이라고 청했다. 상소문이 접수되었을 때 민영주와 박시순이 승정원 승지로 있었는데, 서로 돌아보며 혀를 내두르고는 임금에게 바칠 것인지 의논했다. 
민영주가 크게 소리치며 말했다.
"이처럼 흉악한 상소를 어찌 주상께 올릴 수 있겠소?"
박시순이 말했다.
"이것은 언사인데 어찌 올리지 않을 수 있겠소?"
정인학이 말했다.
"도승지와 의논하는 것이 좋겠소."
그때 김명규가 도승지로 있었는데, 상소문을 가져다 민영준에게 보이며 임금께 올릴지 말지를 물었다. 민영준이 화를 내지 옷자락을 떨치고 나가면서 말했다.
"상소를 올릴지 말지조차 도승지가 결정하지 못하니 세상에 도도승지가 또 있다는 말인가?"
김명규가 돌아와서 말했다.
"내 역량으로는 올릴 수가 없소."
그러고는 마침내 상소를 각하했다. 박시순이 탄식하며 말했다.
"비록 자기는 말하지 못하더라도 남이 말까지 막아서야 되겠는가."
상소문은 관철되지 않았지만 부본이 서울에 두루 퍼져 임금과 왕후도 이미 다 보았다.

"왕조시대 상소라는 것은 목숨을 내거는 것이었다. 왕이 받아들이면 문제가 없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상소 내용은 목숨과 맞바꿔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 정부에 조선의 꼬장꼬장한 선비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나라 꼴이 이 모양은 아니었을 듯"


갑오개혁에 진령군 처벌 내용이 나오다.(매천야록)

1. 갑오년 10월부터 각 항목의 부세는 모두 돈으로 바친다. 은행을 설립해 공전을 공급하며, 미곡과 바꿔서 서울로 보낸다. 원전은 탁지아문에 바친다.
2~9 중략.......
10. 민영준은 정권을 훔쳐 농간을 부리며 임금을 속이고 백성을 못살게 굴었다. 김창열의 어미(진령군)는 신령을 핑계 대고 위복을 조종했다. 민형식은 세 도를 관할하면서 그 해악을 만민에게 끼쳤다. 이들을 모두 죽여야 함에도 그러지 못해 여론이 끓어오르니, 모두 형률을 적용해 신과 인간의 분함을 풀어 준다.

"당시 많은 개혁 정강이 발표된다. 그중 한 정강에 진령군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진령군, 지석영에 탄핵당하다.(조선왕조실록)

신이 전국의 억만 백성의 입을 대신하여 자세히 진술하겠습니다. 정사를 전횡하고 임금의 총명을 가리며 백성을 수탈하여 소요를 초래하고 원병(援兵)을 불러들이게 만들며 난이 일어나자 먼저 도망친 간신(奸臣) 민영준(閔泳駿)과 신령의 힘을 빙자하여 임금을 현혹시키고 기도한다는 구실로 재물을 축내며 요직을 차지하고 농간을 부린 요사스러운 계집 진령군(眞靈君)에 대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살점을 씹어 먹으려고 합니다. 아! 저들의 극악한 행위가 아주 큰 데도 한 사람은 귀양을 보내고 한 사람은 문책하지 않으며 마치 아끼고 비호하는 것처럼 하니 백성들의 마음이 어찌 풀리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빨리 상방검(尙方劍)으로 두 죄인을 주륙하고 머리를 도성문에 달아매도록 명한다면 민심이 비로소 상쾌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 숨어있는 우수한 인재를 모두 뽑아서 각각 합당한 직무를 맡기고 협력하여 충성을 바치게 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나라가 부유하고 군사가 강해질 것입니다."

"무령군은 을미사변으로 민비가 시해된 후 지석영의 탄핵을 받아 사형에 처해졌다."


매천 황현 네 수의 시를 남기고 자결하다.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이 나라가 이젠 망해 버렸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 생각해 보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역사쟁이 네 가족도 촛불 집회에 참가하다.

딸이 만든 피켓 들고 집회에 참가


멀게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현장에 있었고, 가깝게는 광우병 촛불 집회에 한 달 가까이 안산과 서울을 오가며 참가했다.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를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 그 현장을 직접 봐야 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참여했다.
초등학생 아들, 중학생 딸도 알만큼 아는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되었다. 이제까지는 혼자서 갔지만 아들과 딸도 함께 가기를 원했다. 딸은 늦은 시간까지 직접 피켓을 만들었다. 
주말이 더 바쁜 일상이 되었지만, 가족과 함께 했다.




하야가 정답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국정감사장에서 이야기했다. 이 말은 틀렸다. 봉건시대에 있었다. 가슴 아픈 것은 21세기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박근혜와 관련된 여러 사건을 종합하면 정치인, 특히 한 나라를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사람이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은 아버지 박정희(다카키마사오)의 후광과 젊은 날 부모를 잃은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 가져온 결과일 것이다.
아쉬운 것은 10.26이후, 대통령 후보 시절 등의 시기에 끊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5% 지지율의 대통령은 두 번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진정성 없다. 알맹이 없다. 단지 감성에 호소하며 자신과 무관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가증스러움에 또다시 넘어간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을 듯하다. 2대에 걸쳐 대한민국을 유린한 박 대통령 부녀가 우리에게 마지막 선물을 준 것이라 생각하자. 이 기회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당사자 뿐만 아니라 견찰이라 불리는 검찰과 경찰, 재벌, 언론, 어용단체 등을 개혁해야 한다. 그 첫 단추가 박근혜의 '하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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