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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규 Mar 06. 2019

'퇴사학교'에서의
2년 6개월을 돌아보며


퇴사학교와 첫 만남

2016년 어느 여름날 페이스북에 퇴사학교의 포스팅이 올라왔다. 당시에 주류였던 카드뉴스 포맷을 바탕으로 퇴사학교는 콘텐츠를 쏟아냈고 호응도 컸다. 아무래도 3-4년 전만 해도 '퇴사'를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감을 불러내는 콘텐츠가 여러 차례 바이럴이 되다보니 퇴사학교는 금방 유명세를 탔다. 물론, 눈길을 잡아 끄는 강렬한 이름도 한몫했을 것이다. 퇴사학교와 친분이 있던 지인이 에버노트 강의를 퇴사학교에서 한 번 열어보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을 해주었고 그렇게 퇴사학교와 인연이 시작됐다.


2016년 5월, 퇴사학교에서 처음 열었던 수업


당시 나는 퇴사 경험이 없었다. 때문에 직접적으로 퇴사와 퇴사 준비에 대해 할 얘기는 없었고, 다만 도구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에버노트를 지식관리도구로 소개했다. 이에 맞게 사용법을 큐레이션했고, 이게 유의미한 반응이 있었다.



반강제적 성장 

십 수년차의 회사 경험이 있는 분들을 계속해서 만나다 보니 콘텐츠를 더 진화시켜야 했다. 이들에게 함께 성장하는 길을 제시하려면 더 단단하고도 뾰족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했다. 더 가치있는 무언가를 내놓으려 고심했다. 이때부터 반강제적인 성장이 시작됐다. 먼저, 에버노트 강의 경험을 토대로 『에버노트 생각서랍 만들기』라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3개월 후엔, 『에버노트 생각서랍 만들기:실전편』을 만들었다. 전자책으로 나온데다가 도구 사용법을 다룬 이 콘텐츠가 예상 외로 인기가 많았다. 신기하게도 1년이 넘은 지금도 미약하나마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잘된 이유의 절반은 운이라고 본다. 당시엔 리디셀렉트도 없었고, 리디북스에 지금같이 많은 책이 있지 않았다.


이 콘텐츠를 만들면서 배우게 된 암묵지는 다시 수업으로 만들었다. 그게 퇴사학교에서 <생각정리습관 트레이닝>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다. 4주 간 자신만의 콘텐츠를 발굴하고 만들기 원하는 분들에게 코칭과 교육을 병행하며 이뤄졌다. 수업에서 가장 호응이 컸던 지점을 돌아보면, 콘텐츠를 만드는 how-to를 소개한 데 있지 않았다. 스스로를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자각하도록 설득하고,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암묵지를 전달하는 지점에서 반응이 좋았다.


반강제적 성장은 계속 이어졌다. 수업을 통해 얻은 내용은 다시, 작년 12월에『생산적인 생각습관』콘텐츠로  내놓게 됐다.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 필요한 암묵지를 7가지 습관으로 풀어본 것이다. 퇴사학교에서의 2년 6개월 간, 반강제적인 성장은 계속 이런 프로세스였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았고, 고민해보지 않은 영역은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코칭/강의를 통해 함께 납득한만큼을 책에 썼고, 또 그만큼만 코칭하고 강의했다.  이 성장 방식은 지금 준비하는 과정을 설계하고 실행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년 6개월의 여정, 개인적 단상

퇴사학교는 다양한 분들이 찾는다. 만났던 분들은 신입부터 20년차까지, 직군으로는 방송, 엔터, 작가, 연구원, 디자이너, 독서지도사 등으로 다양했다. 이들이 모두 퇴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 한 발 딛고 플랜B를 준비하려는 분들이 가장 많았다. 플랜B는 사이드잡/투잡/퍼스널브랜딩 등의 목적이 가장 많아 보였다. 회사 생활에 더 잘 뿌리내리고 싶어서 오기도 했다. 또, 적지 않은 분들이 막연한 마음으로 수업을 신청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가 누군지 알고 싶다"거나, "막연하지만, 변화가 필요해서"같은 이유였다. 드물게는 회사 선배나 후배의 소개로 신청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는 항상 근처 카페에서 얘기를 나눴다. 이때마다 늘 비슷한 점을 확인했다. 회사 밖에 있으나 회사 안에 있으나, 자아실현을 위해서든 생존을 위해서든,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업을 두고 계속 고민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다만 지금은 다른 계절에 머물어서 고민의 질감이 다를 뿐이었다. 퇴사학교에서 수업을 들으신 분들과 한 발자국, 혹은 서너 발자국 거리에서 업의 본질을 함께 고민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퇴사학교, 혹은 내 수업이 이들에게 답이 될 수 없음을 많이 새겼다. 다만, 나는 그들이 스스로 '고민'을 '문제해결'하는 과정으로 옮겨낼 수 있도록 도우려 했다. 콘텐츠 문제에 대해 각을 같이 봐주었고,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지 도왔다. 스스로가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것은 남이 도울 수 없다. 스스로 발견한 문제를 본인이 풀기 시작할 때라야 수업이든, 코칭이든 들어오기 시작한다. 자신의 문제를 풀기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만난 건 내게도 다시 자극으로 돌아왔다. 이 부분이 가장 큰 보람이고 기쁨이다.



'볼드모트'를 입 밖에 내뱉는 것에 대해서

퇴사는 이제 볼드모트처럼 됐다. 입 밖에 내기가 껄끄럽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닌 그런 존재.

'퇴사'가 대표격일뿐, 업(業)이 재편성되는 시대에는 여러가지 언어를 빌려 그 혼돈이 드러난다.

업의 본질, 포트폴리오 노동자, 버츄얼 어시스턴트(VA), N잡, self-employee, 코끼리와 벼룩, 프리랜서, 1인 기업가, 긱 이코노미, 사이드잡, 사이드 허슬 등.

찰스 핸디가 일찍이 명명한 세계가 이제 정말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퇴사'는 꾸준한 검색량을 보인다. ('퇴사'&'퇴사학교' 검색어 추이 (2016.06-2019.03))


'퇴사'라는 단어 자체는 볼드모트화됐지만, '퇴사'라는 현실은 바짝 가까워진 게 아닌가 싶다. 이미 일상에 소름끼치게 스며든 미세먼지처럼. 이런 상황에 아직까지도 퇴사학교에 대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회사명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서 퇴사학교가 "퇴사를 종용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장수한 대표는 분명하게 "퇴사하면 개고생이다"라고 말한다. 그저 이 담론을 두고 현실적인 타개책을 함께 마련해보자고 외치고 있는 곳이다. (타개책이 필요할 땐 퇴사학교)



얻은 것

회사생활도 그렇지만, 결국 사람이 남았다. 사수가 남고, 동기가 남고, 후배가 남는 것처럼 퇴사학교에서는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분들이 내게 남았다. 대체로 혼자 일하는 상황이므로 일하는 방식과 일을 만드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비슷하다. 이를 밀도 높게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반 발자국 거리에서 느슨하게 함께한다. 이 감각이 나쁘지 않고, 힘이 된다.


마지막 수업 전


수업에 참여하신 분들이 남았다. 변화의 시대에 업을 두고 함께 고민하는 동료들이다. 물론 2년 6개월 간 만난 400여 명을 다 기억할 순 없지만,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혼자 일하는 내게 느슨하게 이어진 소중한 사람들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각자 처한 맥락이 달라지면서 업을 두고 고민하는 일을 친구랑 하기란 어렵다. 업을 두고 고민하는 일은 그 주제로 묶일 수 있는 별도의 부족tribe이 필요하다. 이들이 내게 그런 존재가 되어준다. 4일 전, 퇴사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을 진행했다. 이들 역시도 느슨한 부족으로 남을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 수업을 한 다음 날, 마침 작년 5월에 수업에 함께하셨던 분이 반가운 소식을 알렸다. 출판계약서를 쓰셨다고 한다. 함께 성장한다는 감각을 다시 확인시켜준 큰 선물이다. 퇴사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값지게 느껴지는 이유다.



현대 사회는 항상 인류의 경험을 특징지어왔던 사회적 유대를 심각하게 훼손했고, 각종 재난과 재해는 사람들로 하여금 좀 더 고전적이고 유기적인 ‘관계 맺기’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 프리츠의 이론이다. 그러니까 재난은 ‘고통받는 자들의 공동체’를 만들고, 이 공동체는 개개인으로 하여금 타인들과의 엄청나게 마음 든든한 일체감을 경험하도록 해준다는 생각이다.   -- 『트라이브』, 세바스천 영거



앞으로

성공 방정식은 모르겠다. 다만, 성장 방정식을 만들었다. 이걸 토대로 더 앞으로 가보려고 퇴사학교와의 고맙고 반가운 인연에 쉼표를 찍었다. 또 하나의 부족으로 남아줄 것임을 안다.

앞으로는 본격적으로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화두를 갖고 내 부족들을 찾아나서려고 한다.

업을 두고 고민하는 모두가 먼지 없는 한 점의 푸른하늘을  만나기를 바라고, 응원하며.

 



서민규

- 책 《콘텐츠 가드닝》 ,  《회사 말고 내 콘텐츠》  저자

- 콘텐츠 기획자, 콘텐츠 코치


커리어의 궤도를 이탈하고 콘텐츠를 자전축으로 삼고 있는 창작자. 창작 경험이 개인의 변화와 성장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 아래 콘텐츠 코치로 일하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창작을 경험하고 콘텐츠를 기를 수 있도록 교육과 코칭을 통해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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