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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Nov 03. 2023

번뇌 IQ에 대처하는 엄마의 자세

나를 키운 엄마의 말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였던 시절 4학년이 끝나는 무렵이었다. 하교 후 선생님을 도와줄 수 있냐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흔쾌히 대답했다. 학원도 다니지 않았고, 선생님의 심부름은 감투 같았던 그때였으니까. 아이들이 모두 하교하자 선생님은 다음 학년 반배정 리스트를 주셨다. 그 리스트대로 학생기록부를 나누는 게 그날 임무였다. 눈치껏 누가 나랑 같은 반 인가를 흘긋거리면서 정리를 하는데 당시 짝꿍이었던 남자아이의 학생기록부를 떨어트렸다. 바닥에 떨어져 뒤집힌 학생기록부를 주워 올리는데 뒷면 모서리에 지능지수 칸이 있었다. 공부도 못하고 늘 말썽꾸러기였던 그 녀석의 아이큐는 147이라고 볼펜으로 예쁘게 적혀 있었다. 2학기 언젠가 지능지수를 측정하는 시험지를 풀었던 게 떠올랐다. ‘아 도형 돌리는 게 엄청 헷갈렸었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공부부심이 있었던 난 내심 내 아이큐에 기대를 품었다. 말썽꾸러기 짝꿍이 147이면 난 더 높은 거 아냐?


선생님이 옆에 계셔서 대놓고 학생기록부를 뒤집어 볼 수는 없었기에 내 학생기록부가 손에 쥐어진 순간 그 귀퉁이를 살짝 들어서 지능지수를 확인했다. 믿을 수 없어. 108. 혹시 168을 잘못 봤나 싶어 다시 봤지만 0이란 숫자 위가 조금도 올라와 있지 않았다. 물론 평균을 넘는 지능이지만 운동도 음악도 미술도 못하는 나에게 공부는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지능이 108이라니.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나에게 1등을 한 번도 내어주지 않았던 여자친구의 지능을 슬쩍 보니 그 친구도 138이었다.


선생님이 준 감투는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터덜터덜 108, 108을 되뇌었다. 백팔번뇌라더니 숫자도 오묘하다. 낙담해서 돌아와 엄마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세상에 내가, 내 머리가 108 이래.”  엄마는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아주 별거 아니라는 듯 나에게 말했다. “아이고, 그게 머리를 첨단기계에 넣어서 재는 것도 아니고 그 테스트한 날 네가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거지 엄마가 볼 때 너 절대 108 아니야. 그리고 지능지수는 변해. 너처럼 머리 쓰기 좋아하는 애들은 점점 지능이 좋아져! “ 엄마의 말이라면 철석같이 신뢰했던  난 그  말에 안심했고, 108 번뇌는 희미해졌다.


그렇게 나의 108 번뇌가 잊혀 갈 즈음, 중1이 되니 학교에서 또 지능 검사를 했다. 그날은 컨디션도 좋았고 문제가 쉽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잘 풀었다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너무나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고, 이게 학생기록부 어느 구석에 기록되는 것을 알고 있는 나에게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왔다. 봄방학 전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러 교무실에 남기시더니 학생기록부 분류를 시키셨다. 선생님 몰래 다른 아이들 기록부의 네 귀퉁이를 살짝살짝 들어보며 지능지수가 있는 위치를 파악했다. 드디어 내 것이 손에 잡히고 떨리는 손으로 들춰서 확인한 지능지수는 109였다. 3년간 내가 노력해서 올린 지능은 1이었던 거다. 기가 막히고 심난하면서도 통계의 신뢰도나 타당도 등에 대해 모를 때였지만, 직관적으로 이 검사는 매우 정확한 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도 집으로 바로 가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 그때 그 지능지수가 맞나 봐. 그때 108이었잖아. 이번에 한 게 109야. 그럼 이거 맞는 거 아니야?” 엄마는 그때보다 더 진지하게 입을 떼셨다. “엄마는 니 아이큐가 108, 109라는 게   여전히   이상하다고   생각되긴   해. 너 하는 거 봐. 똘똘하고 야무지니 담임선생님도 그런 일 너한테 맡기지, 맹하면 그런 거 시키겠니? 또, 그게 니 아이큐라고 해도 그게 네가 하고 싶은 걸 방해하는 지능지수는 아니야. 아이큐 100 안 돼도 서울대 간 사람 엄마는 몇 명이나 봤어. 그리고 머리 좋다고 잘 사는 거 아니다! 외삼촌들 봐봐. 다들 천재지만 아이큐 평범한 엄마가 젤 행복해. 평범하게 좋은 거야. 뭐든지!!! 전혀 신경 쓰지 마!” 지능지수로 시작해 인생전반으로 흘러간 엄마의 말에는 진심과 힘이 느껴졌고 그 말은 엄청 오랫동안 든든한 내 뒷배가 되어 주었다.


108인지 109 즘 되는 아이큐를 가진 중학생은 어른이 되었다. 재미없게도 서울대도 가지 못했다. 100도 안 되는 지능으로 서울대에 합격했다던 그 사람들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적어도 엄마 주변엔 없었지만 서울대를 다 뒤지면 몇 명은 있을 거란 확신은 있었다고 하셨다. 딸이 머리가 비상하지 않다 해도 공부 말고는 다른 길도 딱히 안 보여서 그런 말이 술술 나왔다는 뒤늦은 고백과 함께. 지금의 나보다 다섯 살이 어린 당시의 엄마를 떠올리니 참 귀엽고 또 고마웠다.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시시콜콜하고 별거 없는 내 고민, 시시한 내 생각도 언제나 열심히 들어주는 엄마였다. 그런 엄마에게 온갖 사소하고 자잘한 속내를 보이던 딸이, 그 지능 검사를 했던 그 나이인 중1과 초4의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와의 수다가 행복했던 그 딸은 사춘기 언저리에 있는 아들과 딸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진지하게 들어주며 맞장구 쳐주고, 때론 가볍게 우스갯소리도 섞는 엄마가 되었다.


감히 아이큐 따위가 우리 엄마를 흔들 수 없었다.

물론 나도!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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