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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Nov 14. 2023

중딩아들이 인형 같은 날

지난주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을 보니

학교 체육복을 두 겹으로 입고 있다.

반팔 체육복 티셔츠 위에

긴팔 체육복을 겹쳐서.

"아들 안에 그냥 면티 입지.

왜 반팔체육복을 입었어?" 물으니

"뛰다가 더우면 벗어도 체육복이니깐

벌점 안 받잖아. 추우면 입으면 되고."

벌점에 벌벌 떨며

상점만 모은 순진한 1학년!


오늘 아침 등교준비하는데

아이가 체육복을 또 겹쳐 입기에

어제 택배로 도착한 겨울체육복이

생각나서 입을 뗐다.

"겨울건 기모집업이더라.

조금 더 추워지면 반팔 위에

긴팔 위에 기모집업까지 입음 되겠다!"

라고 했더니 아들이 웃으며 한마디 한다.

"엄마 내가 무슨 마트료시카야? 계속 같은 거 껴입게."


마트료시카!

왠지 투실한 아들몸매랑도 닮은듯하고

아들의 이런 유머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침부터 아들 방앞에서

깔깔깔 박장대소하면서 웃었더니

출근준비하던 남편이

뭐가 그리 재미있냐고 묻는다.

귀엽고 위트 가득한 이야기를 들은 남편.

"근데 마트로시카가 뭐야?"

아, 왜 그 러시아 인형... 하고

그걸 설명하는 순간 김이 샌다.

티키타카도 쿵짝이 맞아야 하는데

이런 엇박자!

(그래도, 그러니 신랑이지!싶다.

이제 이런 엇박자도 사랑한다.)

 



아들이 등교한 후에도 계속 생각나는 마트료시카.

계속 미소 짓게 하는 쿵푸판다 같은 우리 마트료시카.

모두 다 보내고 고요한 오전.

출근준비를 20분에 끝내고  

10분은 나에게 선물로 준다.

커피 한잔과 아무 소리도 안 듣고

아무것도 안 하는 행복한 미타임.

아들 덕에 마음이 말랑말랑 해졌는지

커피 한 모금에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태어난 지 13년 된 아들.

마트료시카처럼 옷하나 벗기면

한 살 어린 아들이 나오고

또 그 아이 옷을 벗기면

한 살 더 어린 아들이 나오고.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야구 응원가 부르는 네가 그리운 날은

10살 아들을 만나고

엉덩이춤이 보고 싶은 날은

7살 아들도 만나고

혀 짧은 목소리가 듣고 싶은 날은

4살 아들도 만나고!

그립다. 그때의 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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