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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Feb 28. 2024

수학이 잘못했네!

수학과 골프가 가르쳐주는 인생

예비초5인 별이는 5학년 1학기 수학문제집을 풀면서 한숨이 푹푹 나온다.

아 진짜 이놈의 수학... 너무해. 너. 


왜 뭐가 잘 안돼?

그냥 날 짜증나게 해.

아우 초등 수학이 원래 쫌 그래. 개념은 몇 가지 안 되는데 그걸로 문제를 내야 하니깐 연산만 꼬아놓고. 

(사실 이건 심화서이야기 아닌가? 기본서를 풀면서 왜 그리 짜증을 내는지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멀고 먼 옛날 기억을 더듬어 보면 친정엄마의 기억으로는 수학을 좋아하고 잘했다던 나도 항상 수학이 재미만 있었던 건 아니니까 아이를 이해할 수 있다. 조금이나마 아이들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엄마인 이유는 기억력이 좋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


별아, 초등 수학은 약간 기술 같은 거야. 숙련이 필요해. 멋진 집을 지으려면 무거운 자재도 나르고 못질도 해야 하고 나사도 조일 수 있어야 하잖아. 근데 그런 걸 잘하는 기술을 익히는 건 아주 어려운 건 아니지만 재미가 없어. 진짜 재미있는 부분은 집을 디자인하고 설계하는 걸 배우는 거지. 설계나 디자인은 어렵기도 하지만 해놓고 나면 성취감도 있어서 재밌어. 하지만 기초기술 없이는 집을 지을 수 없듯이 초등학교 수학을 거치지 않고 중고등학교수학을 할 수가 없어서 종종 버티는 시간이 필요해.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 정말 재미있는 개념들이 늘어나고 그것들을 연결해서 예술 같은 문제를 풀기도 해. (물론 입시 수학은 그 예술을 시간 내에 해야 해서 또 다른 기술문제가 되지만 그런 매운맛 현실은 지금은 알려주지 않기로 한다.) 

문제에 있는 실마리들을 연결해서 하나로 이어 문제가 풀리면 그땐 기술보다는 예술이란 느낌이 들어. 그러니깐 초등엔 쪼금 지루해도 견뎌야 해.  


큰아이가 듣고 있는데 둘째가 마주할 앞으로의 수학을 너무 미화했나 살짝 찔렸다. 작은 태블릿에 포켓몬을 포획하며 나와 별이의 대화를 듣고 있던 큰 아이 강이가 말을 보태어준다.

올~~ 엄마 진짜 학교 다닐 때 수학 쫌 해봤구나.

별아, 엄마말이 맞아. 초등 수학은 쉽지만 귀찮아서 짜증 나고 중고등으로 올라갈수록 어렵지만 그래서 해냈다는 뿌듯함도 있어. 그렇게 재미도 있다가 또 어려워서 힘들기도 해. 하루는 할만하다가 그다음 날은 못해먹겠다가, 또 그다음 시간에는 혼자 풀어낸 성취감이 너무 기분좋다가 그다음 시간이 되면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하면서 욕이 나오고 때려치우고 싶기도 해. 그게 계속 반복돼. 아마 고3까지 그럴걸? 그 뭐냐, 애증의 관계? 그런 관계가 되는 거야. 그러니깐 못해먹겠는 날은 그냥 지나간다 생각하고 하면 또 할만한 날이 와. 이런 시간이 지나야 수학을 잘 하게 되겠지.

(역시 아들 넌 엄마아들이다!!!)


어머~ 아들! 누가 들으면 예비중2 아니고 얼마 전에 수능 본 고3인 줄 알겠어!


1년간 수학에 올인해 본 느낌은 암튼 그래.

(초등 졸업까지 수학학원도 다녀보지 않고 선행도 안 해본 큰 아이. 동네 웬만한 학원들은 초6 겨울방학에 제일 진도가 느린 반이 중2-1 시작이라 겨울방학에도 학원도 못 다니고 혼자 개념서 읽고 풀다가 중학교에 입학했다. 수학 선생님의 선행 진도 실태 파악하는 수업 첫날 아이는 적잖은 충격을 받고 자유학년제 1년을 수학에 써보겠다고 선언하더니 정말 생각보다 더 열심히 수학을 해왔다.)


이제는 내가 손댈수 없는 영역으로 가버렸다. 근데 글씨 어쩔...


하하하! 강이 이야기 들으니깐, 유튜브에서 가수 성시경이 골프에 대해서 했던 말이 생각나네. 성시경이 골프는 약간 사이코 애인 같다고 했거든. 어제는 달콤한 말을 속삭이던 (실제로는 달콤한 첫 키스라고 했으나 아이들 앞이라 순화했다. ) 다정하고 사랑스럽던 애인이 다음날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니 갑자기 니킥을 날리고 때린다고. 수학도 골프 같은 거구나!


푸하하하 골프도 그렇데? 그래서 아빠가 때려치울 거라고 하면서도 계속 다닌 거구나. 수학이랑 골프랑 비슷한가 보다.


어쩌면 수학도 골프도 인생을 가르쳐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날은 살맛 난다 싶다가, 그냥 할만하다가도 또 못해먹겠다 싶은 날도 있고, 뭐든 내 계획과 노력대로 되는 듯도 하다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거 같은 날도 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걷다 보면 또 괜찮은 날, 좋은 날이 오니까. 아이들은 수학을 배웠고 나는 아이들에게 또 한 번 인생을 배운다. '수학이 잘못했네'로 시작해서 '수학이 잘하고 있네!'로 끝난 대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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