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두 번뿐이었는데, 쌍둥이도 낳은 적이 없는데 애가 셋이다. 분명히 어머님아들은 오빠였다. 그런데 그가 왜 아들이 되어있는 건가.
'남자들 다 똑같아.'
'남편이 아니고 큰 아들이야.'
결혼 전 혹은 결혼초기 언니들이나 고모들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그녀들이 남자를 잘못 골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저 말은 나에게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다 똑같다는 말은 남자들이 다른 남자들이랑 똑같다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장점도 단점도 다 다르니깐. 다만, 어느 남자도 아내 앞에서는 자라지 않는다는 말은 아닐까.나이가 들면 노화도 일어나지만 '성숙'도 함께 일어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집에서 보는 남편은 육체적 노화만 보일뿐 정신적 성숙은 찾아보기 힘들다.
1년전 휴가때. 이제 덩치로는 남편과 아들 구분이 어렵다.
내가 낳은 아들이 크는 걸 보면서 늘 신기했다. 내 아들은 점점 자라고 성숙해지는데, 왜 어머님아들은 그대로인 건가. 다시 시댁으로 보내 좀 더 키워서 돌려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언젠가 친언니 같은 사촌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내 새끼는 크는데 어머님새끼는 왜 안 크지? 돌려보내고 싶어."
"아서라, 그 옆에는 더 큰 아기가 계시다."
이 이야기를 시어머니께 전했더니 어머님이 박장대소하신다. 정말 환하게 웃으며 그간의 스트레스를 상당 부분 해소하신듯한 표정이다. 어머님도 당신의 어머님아들인 아버님보다 당신이 낳은 아들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낫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어쩌면 인류진화에 큰 기여를 한듯한 보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들을 키우며 조금은 알 것도 같은 느낌이 든다. 중학생만 되어도 엄마보다 더 큰 몸을 가지게 되는 아들들. 몸이 더 커지고 사춘기 허세가 더해지면더 이상 엄마한테 아기의 모습을 보이기 힘든지도 모르겠다. 강한 척, 센 척, 남자다운 척하는그 허세는 사춘기가 지나도 버리기 힘든 남자들의 자존심인지도 모른다.
아들이 고르기에 같이 읽어보려 두권을 사왔다.
일상을 잘 살피니, 14살이지만 4살과 14살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아들을 볼 수 있다. 방학 기념으로 대형서점에 데리고 가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라고 하니 '노인과 바다'를 고른 예비중2아들. 신기하고 기특해 이유를 물으니 어른스러운 얼굴로 영어지문에서 읽은 헤밍웨이의 이야기에 헤밍웨이 작품이 궁금해졌다고 한다. 이 정도면 책 고르는 수준도 남편보다 월등 높은 게 확실하다. '우리 아들 진짜 잘 크고 있구나!' 뿌듯함도 잠시, 그 다음날회사에 있는데 넷플릭스 영화 한 시간만 보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키즈모드로 되어있으니 유해한 건 아니겠지 하고 허락했는데 30분 후즘 딸이 전화를 했다.
"엄마, 오빠 중학생이 맞아?"
"왜?"
"지금 뽀로로 극장판 바이러스 어쩌구 보면서 아주 난리 났어. 혼자 웃다가 긴장했다가, 소파에서 구르다가 쪼그라들었다가 진짜 웃겨. 딱 6살 같아."
그렇다. 키는 아빠랑 비슷해져도 아직 열네 살 아이에겐 더 어린아이마음이 사라진 게 아닌데 사회적 체면상 어린아이 노릇을 할 수 없는 지도 모른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키처럼 선형(linear)으로 자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약간씩 퇴화도 했다가 성장도 하는 나선형(spiral)으로 자라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몸이 커진 이후 사회적 체면상 뒤로가기를 마음대로 하기가 힘든 것이다.
그렇게 강한 척,센 척,남자다운 척하면서 내면아이의 어리광은 해소되지 않은 채로 어른으로 자라나서 결혼을 하고 나면 안전한 아내를 어리광 부릴 엄마로 삼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 사는 어머님아들도 어머님 앞에선 세상 듬직하고 든든한 아들이다. 그러니 엄마눈에는 내 아들은 자라는 걸로 보이고 남편은 아이로 보이는 게 아닐까?
그렇게 어머님 아들보다는 내 아들이 낫다는 가슴 벅찬 착각과 뿌듯한 느낌은 대를 이어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