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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Mar 06. 2024

결혼은 괴롭고 비혼은 외롭다.

'따로 또 같이'의 미학

큰 아버지 팔순에 만난 아빠의 사촌동생들인, 나에게 오촌고모들 세분과 고모부 한분과 같이 앉게 되었다.(아빠의 형제들이 적어서인지 모든 대소사를 함께하고 있고 친고모는 나이가 너무 많으셔서 어릴 적부터 오촌고모들과 더 편했던 거 같다.) 그 테이블의 고모 두 분은 자식들을 다 결혼시켰고, 한 분은 아들은 결혼을 했고 딸은 미혼인데, 앞뒤가 안 맞는 대화를 하고 계셨다.


30대에 들어선 딸이 결혼을 안 해서 답답하다며 주변에 괜찮은 남자가 없냐고 한숨을 쉬시다가 이제 결혼은 선택이 된 지 오래라는 나의 말에 고모부를 한번 흘끗하시고는

"그래, 나도 다신 하고 싶지 않은 걸 왜 내가 내 딸이 안 한다고 안달복달인지 모르겠네. 넌 어때? 결혼하길 잘한 거 같니? 동생들한테 결혼 추천하고 싶어?"


고모들의 자녀들은 이제 결혼하거나, 얼마 전 아이를 낳아 영유아들을 키우고 있는 30대 초중반이니 40대 후반이 되어가는 나의 결혼생활이 궁금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고모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결혼한 지 16년이 되어가는 나는 결혼 30년이 훌쩍 넘는 고모들과 이제 결혼한 동생들의 딱 중간에 끼어있으니 그 중간세대의 생각이 궁금하셨을 수도 있겠다.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는 선택이죠.

괴로움이냐 외로움이냐의 선택!

결혼을 하면 괴롭고 안 하면 외롭잖아요?

각자 더 잘 견딜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거 아닐까요?"


고모들은 웃으셨지만 농담으로만 한 말은 아니다. 결혼준비기간에도 싸운 적이 없는 우리 부부는 꽤나 서로 잘 맞는 편이어서 갈등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비교적 무난하고 큰 일없이 지내왔지만, 이 세상 모든 부부가 그렇듯 우리도 그랬다. 혼자였다면 생기지도 않을 일들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합쳐 하나로 모아 해결하는 과정에는 오해도 상처도 있었고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지나갔다.


일정 부분 감사하고

일정 부분 이해하고

일정 부분 인정하고

일정 부분 실망하고

일정 부분 폭발하고

일정 부분 포기하며

서로가 서로에 맞추어 가고 익숙해져 왔다.

(사실 그 부분 부분의 비율이 궁합이고, 결혼생활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게 아닐까?)


"근데 그럼 결혼 안 하는 게 맞는 거네. 어차피 결혼해도 인생은 외롭지 않니?"

"전 혼자 안 살아봤지만 누군가 곁에 있어도 느끼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 말고, 말할 사람도 없고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는 외로움은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요? 혼자 있는 시간도 하루, 이틀, 길면 일주일은 좋겠지만 그게 10년이라고 생각하면 못할 거 같아요. 솔직히 저는 괴로움과 외로움 2개 중에 골라야 하는 건 줄 모르고 골랐지만 다시 고르라고 해도 외로움보다는 괴로움을 고를 것 같아요. 외로움이 훨씬 더 무서워요. "


"아우 얘,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외롭고 싶다."

고모의 괴로움의 깊이와 폭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지 못한다. 고모부의 인상이 좋고 아이들이 잘 컸다고 해서 고모의 괴로움과 행복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건 아닐 테니.




비혼자에게 외로움만 있지도, 기혼자에게 괴로움만 있지도 않다. 비혼자는 혼자라서 가볍고 편하고 '따로'와 '같이'를 나에게 맞게 잘 조율하는 노력만 하면 어쩌면 가장 '나답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혼자들의 스펙트럼은 너무 넓어서 함부로 결혼은 어느 정도로 괴롭고 어느 정도로 행복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반려자와 아이들의 온기가 주는 위안과 안정감이라는 것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얄궂다. 혼자 오래 있으면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고 누군가와 함께 오래 있으면 혼자 있고 싶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가장 절실한 것이 '미타임 (Me Time)'. 즉, 혼자 보내는 시간이다. 나도 그랬다. 아니 사실 중2, 초5와 47세를 키우는 지금도 그렇다. 물론 아이들이 어릴 적에 비하면 이제 각자 친구들과 나가 놀기도 하니 잠깐씩의 미타임은 가질 수 있지만, 엄마의 혼여(혼자여행)는 사춘기 아들을 제외하고는 절대 허락불가라는 초5와 47세는 아직 좀 더 키워야 할 듯하다. 같이 있어도 행복하고 따로 있어도 행복한 그런 건강한 어른이 되려면 아직 남편과 딸에게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듯 보인다. 아니 나부터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부르짖다가, 다들 어른이 되어 내 곁을 떠나고 나면 그땐 내가 그들이 그립고 함께하는 시간만 오매불망 기다릴까 두렵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피할 수 없는 변덕이랄까.


쇼펜하우어는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어서 생긴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지만 또 틀린 말이다. 우리의 많은 행복은 함께여서 생기는 것이기도 하니깐! '혼자'와 '함께'의 건강한 균형인 '따로 또 같이'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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