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대학생 시절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였다. 반갑다는 말이 일본어로 무얼까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니 몇 가지 단어가 있었는데 그 말들로는 반갑다의 극히 일부만 설명할 수 있을 뿐 반갑다와 같은 말은 아니었다. 네이티브스피커인 일본인은 무언가 해답을 찾아 줄까 싶어서 설명을 했지만 반갑다는 말은 없는 듯했다. 만나서 기쁘다거나, 마침 네가 필요했는데 좋은 때 만났다거나, 오랜만이야 라는 말에 텐션을 한껏 올리고 기쁜 표정을 담뿍 담아 반가운 마음을 표현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건 영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반갑다"의 모든 느낌과 뉘앙스가 몸 어느 구석에 확실히 있는 우리는 그런 glad와 nice라는 말로는 반갑다는 마음을 전하기에 어딘가 부족하다.
그런 단어는 비단 외국어 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언어 안에서도 방언사이에도 존재한다. '억수'나 '겁나'가 '매우'나 '정말'이라는 말로는 대체되기 힘들다. 전라도 사투리인 '귄있다'는 표현은 서울 사람에게는 꽤나 캐치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네이버사전에는 귀염성 있다는 말로 번역되지만 전라도 네이티브들 여러 명을 통해 알게 된 '귄'의 느낌은 호감 가는 외모지만 정우성이나 장동건같이 조각 같은 얼굴에는 쓰기 힘든 표현이다. 귀염성이 있으면서도 귀티가 풍겨야 귄있는 느낌이 완성된다. 잘생김이나 예쁨보다 더 난도 높은 퀘스트다.
이렇듯 지역이 달라 그 언어가 다르면 서로 답답하고 오해가 생기는 부분도 생기기도 한다. 실제로 사무실옆자리의 경상도 출신의 후배는 서울토박이 남편과 싸울 때 너무 답답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귀여움이 없는 경상도 말투지만 '뭐라카노'는 때때로 서울 여자들이 애교 섞인 느낌으로 "아웅 뭐야암?"하는 느낌 일수 있는데 경상도 말의 직관이 전혀 없는 서울 남자는 비난하는 듯한 "뭐라는 거야?"로 듣는다는 거다. 이 작은 나라안에서도 같은 말을 쓰는 단일민족도 이럴 진데 한국어와 외국어의 사이에 틈이 없길 바라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른다.
반대의 예도 있었다. 일본에서 기본적인 일본어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니 정말 자주 들리는 표현이 있었다. 懐かしい(나쯔카시이). 사전을 찾으면 그립다는 뜻으로 나오지만 그립다는 말로만 대체되기는 힘든 말이다. 이 말이 명사를 꾸며주는 형용사로 쓰일 때는 대체로 그리운 **, 추억의 ** 정도로 무난히 해석이 될 듯하다.
그런데 그냥 감탄사처럼 '나쯔카시이!'라고 하면 '그리워!'라고 하기엔 꽤나 어색한 말이 된다. 2000년 당시 내가 찾은 가장 비슷한 우리말은 "아~ 옛날 생각난다."정도였다. 어떤 물건이나 이야기가 옛날 생각이 나게 해서 추억을 떠올리는, 그런 느낌인 것이다. 그런데 옛날 생각에는 뭔가 나쁜 기억도 포함될 수 있는 반면 나쯔카시이는 당시엔 안 좋은 일이었더라도 지금은 추억이 된 일에 대체로 좋은 느낌으로 쓰인다. (갑자기 아니면 어쩌나 두렵다. 겨우 일본에서 1년 놀며 배운 어설픈 해석일까 두렵다. - 혹시 틀렸다면 친절하게 지적해 주세요. 수정하겠습니다. )
이 말의 느낌을 거의 알게 되고부터 나도 이 말을 자주 쓰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무언가 향수와 추억을 자극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이 말을 쓰고 싶은데 마땅한 단어가 없어 아쉬웠다. 옛날생각이 난다는 말로 懐かしい가 해갈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딱 맞는 신조어가 나타났다. '추억 돋는다'는 표현이 생긴 것이다. 신조어가 이리도 반갑기는 처음이었다. 가려운데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누군가 정확하고도 시원하게 긁어주는 느낌이랄까.
이렇듯 단어와 단어사이에는 우리가 모르는 공백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 공백들이 외국어로 채워지는 경험은 외국어를 배우기 전에는 하기 힘든 경험이다. 외국어를 배움으로써 감정과 감각이 풍부해지고 사고가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물론 외국어를 배우는 자체가 매우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인지 새로 나온 갤럭시 24에 탑재되었다는 동시통역기능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제 영어나 다른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으며 기대가 큰 듯하다. 물론 AI에게 입력된 데이터값이 많아질수록 통번역은 정교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완벽한 통번역시스템이 나오더라도 나의 자녀들에겐 외국어 학습 내지는 습득을 권하고 싶다. 입시나 취업등을 위해서가 아니므로 영어나 중국어가 아니더라도 좋다. 효율성으로 따지자면 통번역기를 쓰는 것 보다 비효율적이겠지만, 하나의 언어만 쓸 때는 만나지 못한 세상을 마주하리라 확신한다.
우리말로는 느끼지 못한 감정을 느껴보고, 새로운 감각을 깨워내고,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을 생각해 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서양사의 광개토대왕 같은 느낌의 샤를마뉴는 "To have another language is to posess a second soul."이라고 했다고 한다. 언어를 하나 더 가지면 영혼을 한 개 더 가지게 된다는 이 멋진 말이 명언이 된 이유를 몸소 느껴보길 권하고 싶다. 아무리 훌륭한 통역기기라고 해도 단어와 단어사이의 공백까지 메워줄 수는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