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정감독님이 1일 1팩?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내 나이 듦의 1번 교과서
이 남자의 반전 매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매일 팩을 하고 선크림을 바르고 패션에 신경 쓰고 향수도 뿌리신다고 한다.
손흥민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아버지 손웅정감독님이 말이다.
손흥민은 알았지만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감독님에 대해서는 잘 모르던 시절 뉴스기사 제목 몇 개만 보고 선입견을 넘지 못했다. 아마 3년 전쯤으로 기억하는데 손흥민이 축구선수를 하는 동안은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그 기사 제목만 읽고 서른이 다되어가는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간섭을 하는 헬리콥터대디일 거라 생각했다. 대학가서도 엄마에게 수강신청을 부탁하고, 성적이의제기도 엄마들이 교수에게 연락한다더니 아들이 세계적인 축구선수여도 그렇구나 했다.(이래서 뉴스는 절대 제목만 보면 안 된다. 하긴 기사를 읽는 들 그게 진실인지 판단은 어렵다.) 그러다가 2년 전 겨울 유퀴즈온더블록에 출연하셔서 하시는 주옥같은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두 손 모으고 들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 주름진 얼굴. 다부진 몸매, 매서운 눈매까지.
딱 봐도 고집세고 독해 보이는 인상에 단호한 말투까지 더해지니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선입견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유퀴즈에 나온 손웅정감독님의 말들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게 했다. 유퀴즈가 끝나자마자 그의 첫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를 주문했다. 에세이를 읽는데 인문학 책을 읽은 효과를 볼 수 있는 책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런데 그 첫 책을 읽으면서도 나에게 변하지 않는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매섭도록 확고한 철학과 주관. 멋있지만 이런 분에게 한 가지가 부족하다면 유머와 유연함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책을 읽으며 나의 그 마지막 편견까지 산산조각이 났다.
내가 그토록 찾던 롤모델이 여기 있었다. 브런치 연재북을 시작한다면 '잘 나이 들기'에 관련된 글이 될 거라 생각했다. 40대 중반을 넘어 50대로 향하는 나. 쉰이 되기 전에 나이 드는 나를 돌보고 가꾸고 살피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게 모범답안지를 손에 넣었다. 거칠지만, 진솔하고 꾸밈없는 답안지를.
이 책은 김민정시인이 손웅정감독님의 독서노트를 읽고 나누는 대화를 녹취하여 글로 풀어낸 형식이다. 대화체의 말들이라 가끔은 잘 다듬어진 문장이 아니라 아쉽기도 했지만, 또 그 투박함이 매력이기도 하다. 손감독님과는 성향이 완전 다른 시인과의 대화에 끼어있는 느낌이기에. 그의 첫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에서도 언급된 독서노트. 그 독서노트가 너무도 궁금했는데 그 일부라도 엿볼 수 있어 행복했다.
p.20
결국 불편함은 노력이에요. 내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 불편함이 지속된다는 건 한편으로는 내 몸에 좋은 습관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처음에 그 노력은 한 사람의 습관을 만들지만 그다음부터는 그 한 사람을 만들지요. 습관이라는 건 처음에는 얄팍한 거미줄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강철 같은 쇠줄이 되지요. 게으른 자는 하지 않은 일로 평가받고, 부지런한 한자는 한 일로 평가받는다고요.
p.23
큰 부모는 작게 될 자식도 크게 키우고, 작은 부모는 크게 될 자식도 작게 키운다 제가 늘 그러거든요. 예를 들어서 작은 부모는요, 자식이 "아버지 나 저거 사줘"할 때 "그거 돈 없어 못사" 해버리고 만다고요. 그러면 애 생각은 거기에서 끝이 나죠. 근데 큰 부모는 "지금은 돈이 없어서 살 수가 없는데 어떡하지. 너하고 나하고 머리 한번 맞대고 함께 고민해 볼까?" 그렇게 생각하게 하고, 상상하게 하고, 성찰하게 하고, 결국에는 사색하게 만든다고요.
p.23
자식에게 물음표를 주는 사람이 진짜 부모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p.29
겸손은 실력에서 나오고 교만은 무지에서 나온다 하잖아요. 일에 있어 실력으로 진 사람에게는 언제고 기회가 주어지지만, 인성으로 패배한 사람에게는 절대로 패자부활전이 주어지지 않잖아요.
p.33
어리석은 자는 책으로 현명해지고, 현명한 자는 책으로 이로워진다고 했어요.
p.34
사람이 나이 먹는다고 절로 고상해질 수 없어요. 배움이라는 마찰 없이는 품격도 만들어질 수 없어요. 독서의 정의가 뭐예요? 새로운 사실을 알거나 지식 흡수를 위한 행위란 말이에요. 흡수라니까요. 흔히 독서를 콩나물 기르는 것에 비유하고는 하죠. 콩나물에 물 줘봐서 아시겠지만 콩나물에 물 주면 아래로 다 흘러내리잖아요. 그런데 부지불식간에 보면 콩나물 키가 길쭉길쭉 자라 있거든요.
p46
손님과 생선은 사흘만 지나도 악취가 난다잖아요. 서로 손님이다, 서로 생선이다, 내 공간은 소중해, 그만큼 자식 공간도 소중해. 전 가족뿐 아니라 사람들도 그걸 축으로 몇 안 되지만 관계를 유지해왔던 것 같아요.
p.48
"실패하지 않고 성공할 수 없다. 하지만 같은 실패를 두 번 하면 성공할 수 없다." 너무 유명한 말이죠. 조지 버나드 쇼요. 이 말이 제 인생에 핵심이거든요.
p.49
일 킬로미터의 전력 질주보다 일 도의 방향전환이, 일 톤의 생각보다 일 그램의 행동이 중요하다고요. 생각의 각도를 아주 조금만 바꾸는, 한 번쯤 그런 가능성으로 자신을 밀고 가봐도 좋은데 솔직히 쉽지는 않죠. 불안하니까, 실패할까 봐. 비겁하면 안전할 수 있지만 절대로 창조는 없어요. 그 밋밋한 데서 창의력이 어떻게 발생하겠냐고요.
p.61
노후대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예요. 돈도 돈이지만 특히나 외로움과 고독을 미리부터 훈련하지 않으면요, 결코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만나 인생 후반이 힘들어질 수도 있어요.
p. 62
[김민정 시인] 감독님이 준비하는 노후가 진짜 궁금해지네요.
육체적으로 오래 건강할 수 있게 그 준비를 하는 것이겠고요, 정신적으로는 지식과 지혜를 부족하나마 챙겨서 지금까지 쌓았던 경험을 토대로 존경했던 어른의 노년을 흉내라도 내보려는 노력 정도라 하겠지요. 정말 어딜 가도 젊은이들이 피하지 않는 노인이 되어야 한다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제가 막 팩을 하고....
[김민정시인] 헐, 팩이요?
아니 뭘 또 그렇게 놀라실까. 저란 놈은 거저 팩하나 줘도 절대 안 하게 생겼는데 웬걸 하는 표정이신데요. 아 저도 팩 해요. 그것도 매일 해요. 여유가 되면 일일이팩도 한다니까요. 선크림도 잘 문대요. 자기 관리에 나이가 있나요. 자기 관리에도 꾸준한 성장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p.65
이렇게 바로 수긍하는 것도 일종의 유연함이라 봐주시면 좋겠네요. 늙어갈수록 늘어나면 더 좋은 거, 그 유연성이 저는 어른이 가질 수 있는 매력 가운데 최고라고 봐요.
p.66
저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의 유연성도 크게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 덕목이라고 봐요. 유연성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바로 결단력과 속도지요. 유연성은 부러지는 게 아니라 휘는 생각이잖아요. 어떤 상황에서든 옳고 빠른 대응을 해내는 것이 품격 있는 어른의 지혜라 할 때 그 속도의 관건은 역시나 심플한 환경에 있다고 봐요.
p.67
돈을 가두고 잠그고 잘 지켜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언제 입을 다물고 언제 지갑을 열어야 하는지 그걸 잘 아는 이가 진짜 어른이구나 싶어요. 최고의 노인은 젊은이들한테 둘러싸여 신나게 대화하는 어른이 아닐까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세대를 뛰어넘어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어른. 물론 저는 책에서 찾죠. 쉽게 찾아지고 많이 찾아지니까요.
p.79
유년에 시작한 공부는 막 솟아오른 아침 태양처럼 창창하고, 중년에 시작한 공부는 정오에 내리쬐는 태양처럼 반나절밖에 그 빛을 낼 수 없으나 무척이나 강렬하고, 노년에 시작한 공부는 촛불과 같아서 태양과 견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앞을 못 보고 헤매는 것보다야 천 배는 낫다. 제가 어디에서 이걸 보고 아주 그냥 달달 외워버렸다니까요.
p.80
죽을 때까지 호기심은요 진짜 버려서는 안 될 마음이에요. 그 마음 다했다 하면요. 내 관 뚜껑에 못질한다 망치 들어도 못 말리는 마음이라니까요. 그게 무기력이니까요.
p.81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다.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겠지만,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라."
p.84
불치하문 수치불문
아랫사람한테 묻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모르면서 묻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요. 내가 보기에 나쁜 건 안 하면 되고요. 내가 모르기에 묻는 건 하면 되고요.
p.86
진짜 품격 있는 어른으로 늙으려면요, 일단은 경청하는 자세부터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p.99
백석 농부는 질투를 받아도 만석 농부는 존경을 받는다잖아요. 나에 비해 저 사람이 조금 많아. 그럴 때는 질투가 발동하는데 나에 비해 저 사람이 게임도 안 되게 많아. 그럴 때는 보통 선망하는 거 아니겠어요.
p.112
지금 제가 화가 나는 게 기본기도 안 되어 있고 볼도 제대로 못 차는 애들 데리고 전술 운운하고들 해서거든요. 주입식으로 애들한테 전략 가르친들 순간순간 상황이 바뀌는데 그게 대입이 되나요? 축구에서 매 순간 똑같은 상황은 발생 자체가 안 이뤄져요. 그러니까 감독이 공부해야 한다는 거예요. "상대와 부딪치면서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고 성찰하라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시행착오 겪으면서 너는 실시간으로 극복하는 거야. 그게 진짜 네 것이 되는 거야." 주입식은 서커스장에서 동물들을 가혹하게 훈련시킬 때나 쓰는 거예요. 제가 전술 훈련을 안 하는 건 상대에 딱 열리고 닫히는 공간이 매번 같을 수 없어서예요. 왜 애들을 기계로 만드냐고요.
p.118
우리는 태어날 때도 혼자고, 죽을 때도 혼자잖아요.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불쌍하게 늙어요. 나 스스로 외로움을 친구로 삼을 줄 알아야 돼요. 그렇잖아요. 나 외롭다고 여기저기 전화하면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다고요. (중략) 자기 삶을 스스로 추스르면서 살 수 있어야 해요.
p.119
공부 안 하면 과거의 나쁜 역사로 이십 년 삼십 년 돌아가는 거, 그거 순식간이에요. 세상이 나빠지는 건 공부 안 하는 사람들이 지도자 노릇을 해서예요. 공부하지 않으면 다음도 없고 내일도 없어요. 힘든 걸 미루고 편한 데 안주하면 그건 죽은 거예요.
p.121
삼류는 내 능력을 사용해서 사는 사람이고, 이류는 남의 힘을 이용해서 사는 사람이고, 일류는 다른 사람의 능력을 사용해서 사는 사람이라잖아요.
p.149 [훔쳐보기-손웅정의 독서노트]
노화를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보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보다
평균 7년을 더 살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단다.
p.151 [훔쳐보기-손웅정의 독서노트]
진짜 리더는 주는 것이 습관인 사람이다.
줄 수 있는 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고
늘 더 주려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p.159 [훔쳐보기-손웅정의 독서노트]
칭찬이나 비방에 휘둘리지 말자.
그들의 칭찬이 날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할 수 없고.
그들이 비방이 널 더 나쁜 사람이 되게 할 수 없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장자가 말하기를 낙출허樂出虛라 했다.
즐거움은 텅 빈 데서 나온다.
p.197
사실 저도 운동하고 독서, 매일같이 이 둘에 집중하는 삶이 진짜 쉽지만은 않거든요. 그런데 이 힘든 걸 계속하다 보니까요, 내 삶이 쉬워지는 거예요. 힘든 운동하고, 힘든 독서하고, 이 힘든 두 가지를 매일 같이 하니까요, 내 삶이 진짜 쉬워지는 거예요.
p.212
그때 비겁하게 굴었으면, 그때 아프고 추울 일은 없었겠죠. 대신 지금 아프고 추웠을지 모르잖아요.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가질 수 있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를 수 있다"라고 [역경易經]에도 보면 나오잖아요. 사람들은 그 어떤 과정에 대해선 생각을 안 해요. 꽃도 강도 생각을 안 한다니까요. 사실 그걸 간과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건데 말이죠.
p.214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그건 다 동의를 하잖아요. 그런데 꼭 다른 사람부터 바꾸려고 한단 말이에요. 제가 보기에 그 순서가 틀렸다는 거예요. 내가 바뀌잖아요? 그럼 세상이 바뀌어요. 세상이 지저분하다고요? 내 집안부터 깨끗하게 청소하면 세상이 깨긋해질 수 있어요.
p.237
저는 아이들 과잉보호 안 하고 약하게 좀 안 키웠으면 좋겠어요. "울지 마, 먹지 마, 실수하지 마, 넘어지지 마, 약해지지 마" 그 '마' 좀 하지 말고 대신 그 '돼' 좀 하면 좋겠어요. "울어도 돼, 먹어도 돼. 실수해도 돼, 약해져도 돼." 자유를 주자는 얘기예요. 그 안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질서를 스스로 만들고 지켜가도록 부모는 돕기만 하면 되잖아요.
p.240
성공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얻는 일이고,
행복은 내가 얻은 것을 누리는 일이라 그랬어요.
나이 든 사람은 많지만 어른은 드물다.
어른스러운 아이는 종종 보지만,
어른다운 어른은 귀하다.
그 귀한 어른을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