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셀나무 May 01. 2024

열두 살 아들이 군대에 갔어요

-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로버트 먼치

  이사를 준비하며 책정리를 하다가 아이 책장에서 반가운 동화책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큰아이 어릴 때 밤마다 읽어주던  책이었는데  늦둥이 둘째 어렸을 때에도 여전히  잠자리루틴이 되어 주었던 고마운 책이었어요.



책 속 엄마가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요, 아기는 점점 자라 두 살이 되고  아홉 살이 되고 십 대 소년도 되고 어른이 되지요. 그 어느 시절이건  말썽을 부리고 사고를 치며 엄마를 힘들게 하지만 아이가 말썽을 피워 미칠 것 같아도 아이의 행동에 화가 나 동물원에 팔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어도 엄마는 늘 밤이 되면 아이를 안고 자장가를 불러줍니다.  

마치 하루종일 아이로 힘들었어도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면  낮에 더 많이 사랑해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고 잠든 아이가 유난히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엄마품을 떠나 독립을 했을 땐 때때로 밤에 버스를 타고 아들의 집으로 가서 잠든 아들에게 노래를 불러줍니다.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는 늘 나의 귀여운 아기"



큰아이 어릴 때 이 책을 읽어주며,  이웃 마을로 이사한 아들에게 밤에 버스를 타고 가서 잠든 아들을 안고  몰래 노래를 불러주는 엄마의 모습이  좀 과하다고 생각했어요.

다 커서 성인이 된 아들인데, 작가가 엄마를 너무  아들에게 집착하는 엄마로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요.



우리 집 큰 아이는  스물한 살에 군대에 갔습니다.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누구나 거쳐가는 관문이겠지만 훈련소에 데려다주며 모여있는 빡빡머리 훈련병들을 보니 '아니, 그동안 이렇게 어린 청년들에게  나라를 맡기고 편하게 발 뻗고 잔 거야?'라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고요. 머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들 앳된 모습이어서 마음이 무겁고 착잡했지만 고생할  아들 앞에서는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눈물을 삼키며 나라에 아들을 맡기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완전히 마음이 무너지는 사건이 있었어요. 훈련병들의 사진과 동영상이 사단 홈페이지에 올라왔다고 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들의 모습을 찾아보게 되었지요. 그런데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순간 심장이 덜컥 멎는 줄 알았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은 폭포수가 되어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군기 잡힌 훈련병들 사이로 아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앳된 모습의   5학년 때의 아들 얼굴이 보이는 거예요. 평소 노안이란 소릴 종종 듣는 어른스러운 모습이어서 외적으로도 참 듬직한

아들이었는데......

그날 사진과 영상에서는 그냥 딱  열두 살 아들이 군복 입은 모습이었어요.  내 기억에 남아있는 5학년 시절, 아직 소년티를 못 벗은  앳된 얼굴의 아들이 조금은 두렵고 조금은 긴장된 표정으로 열 맞춰 정렬해 있었습니다. 너무 안쓰럽고 불쌍하고 미안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이 뒤엉켜 올라왔습니다. 갑자기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휘몰아치듯 몰려왔고 진정이 되지 않아 추스르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한동안 눈물 마를 일 없는 눈물의 여인으로 살았더랬지요. 늠름하다는 낱말은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을 지나서  아들이 첫 휴가를 나올 때 즈음  겨우겨우 내 생각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어요.



이젠 책 속에서  다  큰 성인이 된 아들을 때때로 찾아가 노래를 불러주는 엄마가 어떤 마음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자녀는 아무리 어른이 되었어도 엄마에게는 여전히 사랑해 주고픈 아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는 모든 나이 때의 아이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다 자란 성인이 되었어도 그 얼굴에서 만나고 싶은  나이 때의 얼굴을 찾아낼 수 있어요.

책 속 엄마도 두 살 때의 사랑스러운 아들,  아홉 살 때의  말썽 부려도 귀여운  아들, 십 대  사춘기 시절에도 가끔은 스윗했던 아들, 성인이 되어 듬직한 그 아들이 문득 그리워지고 보고 싶을 때가 있었겠지요.



엄마는 나이가 들고 늙어갔어요.

너무 나이가 많이 들어 기운이 없는 엄마는 보고 싶은 아들에게 와 달라고 전화를 합니다. 아들은 엄마를 꼭 안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노래를 불러줍니다.

그날 밤 아들은 집으로 돌아가 막 태어난 여자아기를 품에 안고 그동안 엄마가 불러주었던 노래를, 엄마에게 자신이  불러드렸던 노래를  불러주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는 늘 나의 귀여운 아기"


이 노래는 제가 마음대로 멜로디를 붙여서 우리 집 자장가로 많이 애용했습니다. 짧아서 무한 반복하기 좋았고 잔잔한 멜로디를 사용했기에 부르기에 무리가 없었습니다. (모차르트나 슈베르트 자장가는 고음이 많아, 부를 때 숨이 차 반복이 어려웠고 섬집 아기는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 하고 부르기 시작하면 우리 집 아이들은 잠을 안 자고 늘 울었어요.)



소중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듯 참 반가웠고 한 장 한 장 천천히 그림 동화책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어요.

오늘은 앨범에 있는 큰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을,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막내의 더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싶은 날이네요. 잠시 시간 내어 과거로 가서 아이들 좀 만나고  와야겠어요.


사진출처- 픽사베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로버트 먼치

















매거진의 이전글 연결하는 싸움을 위해, 왼발 한 보 앞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