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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ux Nov 06. 2018

20대가 떠오르게 하는 F의 문장

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를 읽고

도서서평단에 응모했는데 선정되어, 30대 후반인 지금 평소라면 읽지 않을 책을 손에 들었다. 책을 일본 작가 F가 지었다. 일본 아마존 에세이 분야 1위에 올랐다고 한다. 중간중간 읽다 보면 선문답스러운 부분이 많다. 하지만 문득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이 낯설게 다가오는 지점도 있다.


책을 읽은 뒤 기억에 남는 부분을 발췌하여 생각을 정리해봤다.

좋아하는 데에 이유는 필요 없다. 왜 그것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면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오해를 받으려나? 하지만 그래도 된다.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다 - 20p 

누군가 Why라고 물으면 나는 이제 곧잘 이유를 둘러댄다. 하지만 이유를 대는 순간 말로 표현되지 않는 수 많은 장점이 사라진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위의 문장을 읽으면서 다시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 친구도 같이 만날래?"라고 물어봤다면 그 남자의 행동은 50점, 어느 정도 친해진 다음에 "살 안빼도 될 것 같은데"라고 했다면 65점, 섹스가 끝난 직후 "사랑해"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89점, "직장을 옮길까봐"라고 말을 꺼내면 95점, 결혼해서 잠자리 없이도 사이가 좋다면 99점 - 53p 백점짜리 남자의 말과 행동 중

실명의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면 두고두고 꼬리표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익명이 본인의 생각을 여과없이 말해주는 해우소가 되기도 한다. 최근 회사에도 익명 게시판이 생겼는데, 생각외로 회사 내에도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 있음을 느낀다. 작가의 생각에 크게 동조되진 않지만, 이렇게 활자화된 책을 실명으로 써도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악녀'라는 단어의 첫 번 째 뜻은 예전에는 '얼굴이 참으로 못생긴 여자'였다. 두 번째는 '마음이 못생긴 여자', 세 번째는 '남자를 손안에 놓고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여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요즘 시대의 악녀란, 어디까지나 현실적이며 합법적으로 남자의 목숨을 손에 쥐고 흔드는, 냉정하면서 지적이고 교활한 여자를 뜻한다. 불륜을 저지르고, 쉽게 싫증을 내고, 아니다 싶으면 버리고, 다음의 상대로 넘어간다. - 70p

단어의 뜻은 시대가 변하면서 재조명된다. 우리로 치면, '나쁜 남자'라는 말이 한 때 유행이었는데, 저자가 말한 악녀와 비슷한 면이 있다. 발췌한 글 뒷 부분을 읽다보면 '버림받아 절망한 적이 있는 여자만이 악녀가 될 수 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람은 어떤 계기로 크게 변하게 되는데, 악녀나 나쁜 남자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꽤나 씁슬하다.


선조들은 굳이 '사랑한다'나 '좋아한다' 그 이상의 단어를 만들어내려고 애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유일한 진실은 보편적인 단어로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그리고 이해가 잘 안되는 상태 그대로 두어도 괜찮기 때문이다. - 97p

언어는 생각을 규정한다. 좋아한다, 사랑한다라는 단어를 누군가에게 말하기를 꺼려하는 사람이 있다. 그 단어를 쓰면 그 이상의 말을 진정성있게 하기 어렵다는 생각때문이다. 나도 한때는 그랬던 것 같다. 그 말이 헤퍼서 상대방의 감정에 아무런 파장도 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에서 말이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해마다 늘어날수록 상대방은 나를 모르고, 나도 상대방을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매일 같이 살아도 표현하지 않고, 나의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으면 상대방은 나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적이 한 명이 생겼다면 내 편을 다섯 명 만들면 된다. 세상에 사람은 차고 넘치게 많다. 그러니까 싫어하는 사람과 인연을 끊어야 한다. 지금 당장 자리를 박차고 떠나야 한다. - 114p

세상은 SNS로 인해 관계의 덫에 빠진 느낌이다. 나는 한때는 Twitter, Facebook, Band, 카카오 스토리 등 많은 SNS를 열심히 쓰다가 1년 전부터 SNS를 끊었다. 그것을 끊은 지금, 오히려 소중한 관계가 무엇인지 더 깊이 이해하게된 느낌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싫으면 싫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회복하는 게 아닐까? 


힐러리 진영이 패배한 본질적인 원인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자신감 넘치는 뛰어난 여자들이 자신감 넘치는 뛰어난 여자를 응원하는 모습에 오래전 자신감을 상실한 수많은 사람들이 진절머리가 나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트럼프가 승리한 이유는 오래전에 자신감을 잃은 사람들에게 선택적으로 계속해서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 188p

트럼프의 승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백인 남성들의 열등감을 적절히 건드린 전략이 성공한 것도 같다. 최근 트럼프의 행보를 보면, 이런 또라이가 다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 솔직하구나라는 느낌도 함께 든다. 다양한 정치 역학 관계로 인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가 아닌 주변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살아가는게 일반적인 정치인일텐데, 트럼프를 보다 보면 자기 생각대로 사는구나라고 느껴진다. 그러한 가면 속의 모습에 질린 많은 Shy 보수가 트럼프를 지지한 것은 아닐까?


책은 아무리 많이 빨리 읽어도 '지식' 밖에 안 쌓인다. 이건 의미가 없다. 하나의 사실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을 때 '식견'이 생긴다. 어디에 살면서 무엇을 보든, 체계적인 독서는 자신만의 견해로 세상을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 201p

저자의 생각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이 책을 꼼꼼히 다 읽기가 어려웠음에도(나랑 취향이 잘 맞지 않아서),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생각의 휘발을 막기 위해서다. 무엇인가를 적다 보면 생각은 구체화되고 분산되었던 생각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경험을 하게된다. 그게 개똥철학이든 어쨋든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관점을 얻었다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다.


에세이여서 그런 걸까? 내가 좋아하지 않는 취향의 글이어서 그런걸까? 목적 지향적인 나의 성향 때문일까? 그 답은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된 계기가 되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강추한다. 20대의 나에게, 신입사원의 나에게 전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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