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그런 날이 있다. 내가 존재하는 이 공간이 나를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날. 온갖 생각들이 나를 조종하려 애를 쓴다. 무기력이 나를 지배하려 하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나는 무기력에 지지 않기 위해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치고 벌떡 일어난다. 대체로 한 번에 성공하진 못한다. 실패하는 날도 있다.
이불속에서 나와 창문을 활짝 열면 서늘한 공기와 햇볕이 기다렸다는 듯 노크도 없이 집으로 들어온다. 그 기분이 싫진 않다. 세탁기에 이불을 집어넣는다. 당장이라도 세탁기가 이불을 뱉어낼 기세지만 욱여넣는다. 쓸데없는 걱정들도 함께. 아무렇게나 걸쳐놓은 옷들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복잡한 생각도 다 개켜버린다. 가구들 위에 쌓인 먼지들을 닦는다. 나를 괴롭히는 모난 생각들도 함께 닦아 버린다. 설거지를 한다. 자조 섞인 농담들이 쏴아- 흘러내려간다. 바닥을 닦는다. 쌓인 분노만큼 바닥은 깨끗해진다. 이것은 삶의 때다. 내 몸의 때가 아닌 삶의 때.
됐다. 이걸로 됐다. 나는 또다시 태어났다.
나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시간이 늘어간다. 포장만 화려하고 막상 열어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선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창문을 열고 삶의 때를 벗겨낼 것이다.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라는 어느 노래의 가사를 참 좋아한다. 어김없이 우리는 오늘을 살아내고 있고, 내일로 나아가고 있다. 이렇게 또 한 꺼풀 단단해진 채,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