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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Feb 16. 2022

04. 수다: 쓸데없이 말수가 많음. 또는 그런 말.


쌓여있는 말들이 너무나 많다. 9척을 훌쩍 넘는 책장이 꽉 차다 못해 그것들이 우수수수 떨어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요즘 나를 만나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고막이 아플 것 같아 남몰래 사과하고 싶다. 입에 모터를 단 듯 와다다다 쏟아내는 말들을 부디 귀담아듣지 말길. 미안해요 내가 많이.


0.

부정적인 감정을 글로 게워내던 날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평탄한 하루 안에서도 할 말이 많다. 이번 호 작업을 하면서는 ‘무엇이 될지도 모르는 무엇을 만드는 일’을 자꾸만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믿고 이 일을 함께하는 걸까, 비어있던 워드 화면은 어떻게 채워지는 걸까. 내가 받는 각종 피드백을 카드 삼아 꼬치꼬치 캐묻고 싶다. 이게 왜 좋아요? 진짜 좋아요? 그냥 하는 말 아니에요? 그럼 뭐가 제일 별로인 것 같아요? 상상만 해도 재미있고 피곤하다.


1.

엊그제에는 개개인이 만드는 얼굴에 대해, 어제는 쇼트트랙 여자 계주에 대해, 또 지금은 쓰고 싶은 말이 많은데 이게 글로 완성되지 못하는 설움을 쓰기 시작만!! 했다. 전부 다 '은의 Notion'에 기록한다. 모든 것을 노션에 기록하기 시작해 거의 내 전부라고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유 모를 바이러스로 노션이 다 사라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행히도 아직 노션이 다 날아갔다거나 버그가 생겼다거나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노션도 백업을 해야 하나? 무튼 글방이라는 강제적 마감이 없어지니 아무런 글도 정돈되지 않는다. 요즘 무늬 글방이 다시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퍽 재미있어 보여 신청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다시 에세이 드라이브라도 합류할까. 에이 몰라. 그냥 나 혼자 읽고 웃어야지. 헤헤.


2.

사람과 사람이 하나의 대화에서 만드는 얼굴들. 그것들이 모두 제각각이고 개인의 특성이 잘 드러나서 흥미롭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한 카페에 네 사람이 있다.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 졸업을 거의 앞둔 학부생, 이제 막 취뽀의 맛을 본 사회 초년생, 오늘도 면접을 보고 온 취준생. 이 네 사람이 자리한 공간에선 무슨 이야기를 해야 적절할까. 어떤 이야기를 해야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모두가 참여할 수 있을까. 신나게 이야기하는 얼굴과 묵묵히 공감하는 얼굴. 직장 내에서의 설움이 부럽기라도 한 얼굴과 아무 생각이 없는 얼굴. 손바닥보다 조금 큰 얼굴 내의 근육들이 움직이며 보여주는 감정들을 자꾸만 보고 싶다. 구석구석 잘 살펴보면 그게 그렇게 귀엽다. 대체로 아무 말이나 하는 대화들이 요즘은 좋다. 그냥 실없이 웃고 맛있는 거나 먹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용기를 주고 받는 듯하다.


3.

점점 주변 사람들이 어른이 되는 것 같아 무섭다. 얘들아 우리 응애라니까. 사실 응애는 그냥 나일 수도. 다들 남몰래 부동산을 공부하고 빡세게 적금을 쌓아가고 미래의 결혼 플랜을 위한 통장을 만들었으려나. 아주 오래전 카페에서 들은 옆자리 20대 후반 친구들의 대화가 잊히지 않는다. “나는 지금껏 모은 돈이 없는데 그 친구는 대학 시절부터 그렇게 조금씩 모아서 지금 이런 돈을 모았대.” 나는 재무제표를 읽고 경제학원론 정도를 어렴풋이 알기만 하지 아무래도 경제관념이 없는 사람 같다. 저만치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의 뇌는 어떻게 굴러가는 걸까. 내 주변 모두가 성숙해지고 이렇게 으른 같아져도. 그래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감정이겠다. 왜 갑자기 이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는지는 모르겠다. 억울함, 슬픔, 그리고 기쁨까지도. 기뻐할 땐 더 기뻐하고 슬퍼할 땐 더 슬퍼했으면 좋겠는데 나조차도 점점 무뎌지는 것 같다. 그만큼 단단해지는 것으로 보이고. 새삼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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