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불편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그대에게
산디 전공 수업, 특히 '제품디자인' 교과목에서 학기 초 첫 과제로 자주 등장하는 미션이 있습니다.
바로 '평소에 불편한 것 3가지 찾아오기!'
Q_ 저는 불편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A_'불편함'에 대한 오해를 풀어 보시죠
왜 불편한 걸 생각해오라고 하는 걸까요?
'불편한 것=프로젝트 주제'는 아닙니다. 단지 '프로젝트 시작점'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할 뿐이죠.
우선 '불편함'이라는 단어를 한번 짚고 넘어가죠.
영어로는 'Pain point'(페인포인트). 신발 신었을 때 발가락의 아픈 부분처럼, 사용자가 느끼는 '편치 않은, 거슬리는 지점'을 말해요. 물 건너온 이 단어를 우리말로 '불편함'이라고 퉁쳐서 이야기하곤 하죠.
문제는 불편한 '것'을 찾아오라고 하니 여기서부터 오해가 시작됩니다.
'것'을 '사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자꾸 평소에 불편했던 물건만 찾게 됩니다. 나는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데 말이죠. 손에 묻는 케첩병, 안 열리는 음료수 뚜껑 등등. 이런 소소한 것들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을까 하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죠.
이렇게 하나 둘 머릿속에서 검열을 하다 보면, 일상생활에서 그럴듯한(!) 불편한 물건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이 들고, 그 순간 모든 생각이 멈춰버리는 거죠.
'아, 난 망했다. 불편한 게 하나도 없는데...'
일단 '물건'이 아닌, '상황'에 주목해보세요.
특히 나에게 ‘어, 왜?’라는 의문점을 남기는 ‘일상의 한 장면’을 포착해보세요.
그럼, 그 장면을 어떻게 포착해야 할까요? 아래 그림처럼 생각해보세요.
핵심은 '물건' 하나만이 아닌, '상황 전체'를 관찰해보는 겁니다.
내가 일상에서 실제 겪어본 어려움이나 아쉬운 순간과 관련된 것, 그것이 손으로 만져지는 '제품'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는 우리에게 ‘어려움’ 또는 ‘뭔가 부족한데 하는 아쉬움’을 주는 상황들이 소프트웨어의 버그처럼 숨어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발견했다면, 그 상황의 앞과 뒤의 맥락을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과 이어서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 상황을 5W1H(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로 묘사해보세요.
그래도 '불편한 상황'이 잘 떠오르지 않나요? 그렇다면 발상을 전환해보세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분야에서 출발하는 겁니다. 나의 관심을 끄는 흥미로운 '현상'에 주목해보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선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니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누군가의 '불편함'에서 시작된 '혁신'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호불호(좋아하고 싫어함)'에서 출발한 아주 색다르고 니치한 취향이 시장을 흔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바로 그 취향 속 '이런 게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프로젝트의 좋은 출발점이 되는 거죠.
그러니 학기 초 프로젝트 주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아래 두 가지 중 하나에 집중해보세요.
① 사용자가 겪는 어려움을 '포착'하기 (현재 문제 찾기)
② 아직 없지만 필요한 것을 '감지'하기 (미래 기회 발견하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포착하고 감지한 것들을 '나는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가'에 있습니다.
바로 나만의 관점(Point of View)입니다.
세상을 관찰하는 나만의 독특한 시선이자, 모든 디자인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죠.
중요한 건 '사실의 재발견'입니다.
현실 속 '불편함'이나 '새로운 기회'를 어떻게 나만의 시선으로 해석해 내느냐. 있는 것을 새롭게 보고 다르게 읽어 나가는 독특한 생각. 이게 디자이너의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요?
한 번에 찾아지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생각의 근육에도 '훈련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손에 쥔 악력기처럼, 생각의 끈을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조금씩 생각의 힘을 키워가면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형상으로 만들어야 할 때,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머릿속에 형상이 떠오르지 않아요."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게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부터, 그리고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내내 사용할 나만의 ‘영감노트’를 하나 만들어보세요. 불현듯 스치는 소소한 생각들, 뭔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순간들, "어? 왜?" 하고 멈칫했던 장면들... 보고 듣고 생각난 것들을 담아보세요.
뭐든 적고, 그려놓을 수 있기만 하면 됩니다.
어차피 과제로 교수님께 제출할 것도 아니고, 나만 볼 것이니 '사전 검열'도 필요 없습니다.
미래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을 나에게 보내는 '질문'이나 '중요한 키워드'를 적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과거의 나로부터 받는 '질문'이나 엉뚱한 '키워드'들은 때론 현재 멘붕에 빠진 나를 구원해주기도 하니까요.
제일 중요한 프로젝트 러닝메이트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
영감노트를 만드는 순간, 프로젝트는 이렇게 기본 세 명이 함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