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문득,
엄마도 미술을 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캐주얼하게 나온 발상이었다.
이 말을 들은 엄마는 40년만에 처음으로 붓을 든다며 설레하는 눈치였다.
중학생 때, 학교에서 수업 시간의 일부로 물감을 사용했던 것,
어느 대회에 나가서 입상을 했던 것을 새록새록 떠올리셨다.
당시는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을 전문적으로 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미술은 그냥 미술일 뿐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좋은 추억이 가득한 분야였다.
긴 세월 끝에 다시 만난 붓을 드는 엄마도, 그것을 보는 나도 설레는 마음이었다.
의자에 앉은 엄마에게 뭔가 가이드를 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무려 두 달을 레슨받은 몸이니까.
집에 있는 수채화 책을 두 권 주며, 여기에 있는 것을 따라그려보라고 했다.
엄마는 책을 훑어 보다가 사과를 발견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이 책 보고 그리는 것 말고, '진짜 사과를 앞에 가져다 두고 그려도 돼?'
나는 아차 싶었다.
미술 선생님도 책을 보고 따라그리라는 숙제를 내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눈 앞에 사물을 가져다 놓고 그림그리는 것부터 시작했었다.
엄마의 훌륭한 판단력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준 연필로 스케치를 하는 엄마의 사과는 꽤나 찌그러져 있었다.
동그라미를 잘 못 그리는군.. 하고 그냥 지켜봤다.
1시간 내로 스케치를 빨리 끝내는 엄마의 손은 뭔가 그림을 원래 그리는 사람의 것 같았다.
입시 미술을 배운 사람들의 스케치는 대충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러프한 선의 느낌이 있는데, 엄마 그림에도 그런 느낌이 났다.
스케치가 끝나고, 수채화 채색을 위해 엄마에게 이젤을 보여줬다.
그 위에 올려놓자마자 엄마가 한 말, '사과과 왜이렇게 찌그러졌지!'
그제서야 나도 웃음이 났다. 다른 각도에서 보는 나의 그림도 항상 그렇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가 엄마 자리에 앉아서 사과를 보니 정말 사과가 그렇게 찌그러져있던 것이었다.
사진으로 찍어보니 사과의 못생김은 그 느낌이 살지 않았다.
육안으로 봤을 때에야 그 공간의 왜곡이 느껴졌다. 실제 사과가 그렇게 공간이 휘어진듯한 느낌을 주다니, 너무 웃겼다. 엄마의 그림은 정확했던 것이다.
채색을 시작하는 엄마에게 나는 별다른 조언을 주지 못했다.
괜히 엄마의 상상력을 막을까봐였다.
어떤 크기의 붓을 써야하냐는 엄마에게 아무거나 쓰라고 했다.
결국 엄마는 작은 크기의 붓을 선택했고, 나중에 후회하기도 하셨다. (배경을 칠할 때 얼룩이 너무 많이 생겨서, 나중에 다시 칠했다.)
엄마가 채색하는 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가령, 스케치 단계 때, 엄마가 사과 꼭지가 없는데 어떻게 하지?라고 했을 때, 상상력으로 그려도 된다고 말씀 드렸더니,
옆의 배 꼭지도 그리며 둘이 사이좋게 마주보는 그림을 그리신 것이다.
엄마의 따뜻한 마음이 그림에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게 화가의 생각이 들어가는 부분이구나.. 라고 느꼈다.
이런 순간은 엄마가 색깔을 선택할 때에도, 채색 방법을 선택할 때에도 느껴졌다.
엄마라는 사람, 엄마의 성격이 그림에 반영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채색하다보니 주머니에 손이 자연스럽게 들어간 우리 엄마. 오래된 미술가 같아서 웃음이 났다.그리고 나는 동시에 수채화를 사용하는 방법을 까먹었다.
엄마가 그림을 그리고 간 다음 날도, 그 다음 날에도,
나도 그림을 그리려고 시도해보았지만 뭔가 허전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칠하는 거였는지 처음부터 알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아예 방법을 모르겠는 느낌이었다.
길을 잃은 듯 했다.
두 달간 미술을 배웠고 계속 빠져살았기에,
나도 이번에 배웠던 것을 고스란히 엄마한테 전수해줄 수 있을꺼란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엄마가 미술하는 모습을 보며 적절한 조언을 어떻게 해줘야할 지 모르겠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막연히 엄마에게도 좋은 미술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 기억 이후, 나는 다시 텅 빈 상태로 돌아간 것 같다.
미술은 어떻게 하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