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

by 박모카

오늘은 출장가는 날이다.

몸에 끼지 않는 원피스를 입고 기차역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아침 세종 버스는 만차였다. 자리는 모두 꽉 찼고, 서 있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내 배가 덜 나왔는지 아무도 버스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았다.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말하기 힘들어, 그냥 안전봉만 두 손으로 꼭 잡고 힘든 여정을 했다.

임산부같다고 자리를 양보해줬다가 그냥 배가 많이 나온 사람일까봐 당황스러울 앉은 사람의 마음은 이해가 간다.

또, 나도 노약자 자리가 비어있을 때 자주 앉아있곤 했었다. 노약자가 아무도 없을 때에도 자리를 비우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자의 입장이 되고 나니, 자리를 양보받지 못해서 꽤 서운했다.

특히 내가 배가 나온 것이 살짝 티가 나는 단계라서 내심 기대를 했지만,

배가 나오지 않은 임신 초기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지 아찔했다.

임산부 딱지를 받았어도 쓰기가 꺼려지는데..

이건 참 어려운 문제다. 배려를 해달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서 쓰기 꺼려지기 때문이다.

정말 이상적인 사회는, 배려를 요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배려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참 힘든 문제다.

특히 입덧이 없고, 임신 전과 몸 컨디션이 같은 임산부들이 ‘저는 아무렇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다니는게 꽤 신경쓰인다. 이게 일반화되어 다른 사람들도 내가 그럴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들은 내가 예민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신하면 몸 컨디션도 안 좋아질 뿐 아니라, 잠도 많이 자야하고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로 몸을 쓰지 못한다.

오늘 아침 들었던 30분 온라인 요가 클래스가 너무 길어서 힘들었다.

중도포기를 할까 생각을 많이 했지만 이미 여러번 포기를 했던 터라 무리하며 끝냈다.

나는 한여름에 하프마라톤에 나가서 뛰는 것을 즐기던 사람이다.

아.. 나도 임신 극초기인 5주, 그러니까 아기집이 보일랑 말랑 할 때에는 '자전거 타고 출퇴근 해볼까'라고 입밖으로 내뱉은 적이 있다.

하.. 아무 생각이 없었던 적이다..

어제 밤은 20주 1일이 되는 날이었다.

아기가 며칠 째 배 안에서 요동을 치던 중이었는데, 마침 남편이 근처에 있어서 손을 올려보라고 했다.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반짝이가 발로 배를 밀었는데, 남편도 느꼈다고 한다.

남편이 깜짝 놀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못 느낀줄 알았다. 남편도 느꼈는지 물어봤을 때에야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남편은 어디서 그걸 느꼈는지 정확하게 위치를 짚어내고, 아기가 어떻게 밀었는지 나에게 알려줬다.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잠시 시간이 멈췄나보다.

남편도 느낀 첫 태동이었다.


와... 정자세로 누워자다가 죽을것같은(?) 느낌에 깼다.

아기가 450g정도밖에 안되었을 텐데도, 이젠 똑바로 자면 장기가 눌려서 큰일 날 것 같다.

진짜 자다가 누가 목을 조른 것 처럼, 좀 심각하게 위협을 받은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옆으로 돌아서 잤는데 계속 불편했다. 정확하게는 명치부근이나 그 라인 어딘가에 통증이 느껴진다.

오늘은 일어났을 때 머리가 아팠다.

어제 너무 많은 양의 일을 내일까지 해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좀 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오늘 정말 회사에 가고 싶지 않았고, 푹 쉬고 싶었다.

임신하니 눈이 심각하게 안 좋아져서, 조금만 눈을 혹사시켜도 계속 머리가 아프다.

사실 어제도 내내 머리가 아팠지만 오늘도 안 나았던 것이다. 임신하고 나서는 두통이 꽤 잦았는데, 이번에는 눈을 혹사시켜서 나온 두통이라는 것을 알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편두통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사나 싶었지만 내가 그러고 있다. 직접 겪어보니 삶이 많이 힘들어도 ‘죽지 않아서 살게 되는 것’이라고 알게 되었다.

오늘은 출근 할 때 비타민을 먹을까 두통약을 먹을까 고민을 했는데, 속도 울렁거려서 토할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두통약만 먹고 출근하고 있다.

오늘 무리하게 출근했다가 토하고 난리날 것 같아서 무섭다.


어느 날은 버스를 탔다.

그날 입은 옷에 따라 배가 나와보이는지, 안 나와 보이는지의 정도가 심각하게 달라진다. 이 날은 내가 가진 옷 중, 유톡 심하게 배가 나와 보이는 옷을 입은 날이다.

노약자석에 남자 여자 골고루 모두 앉아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자리를 양보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아무리 배가 안나왔다고 해도 6개월 중반이 훌쩍넘은 임산부인데..

임신기간 임산부가 밖에 돌아다니는 것은 참 힘들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짧다면 짧은시간 15-20분, 4일 동안 집 밖에서 있을 준비물을 챙긴 가방을 매고 서있지만, 그리 무겁진 않아서 서 있는게 무리가 아닐꺼라며 자신을 다독이며 휘청거리는 버스 안에서 봉을 꼭 잡고 견뎠다.

짧은 시간이라며 시작한 내 인내는 '아.. 생각보다 멀다'로 바뀌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왜 배가 아픈지.

무리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짜증도 났다.

서서 가는게 고생이었는지 겨드랑이에 땀도 흠뻑 젖었다. 부쩍 땀이 많아져서 창피한데, 타는 불꽃에 기름을 얹었다.

노약자석 개념이 많지 않을 무렵, 노약자께서 지하철을 타셨을 때 젊은이들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허공에 한탄을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분은 정이 없어져버린 현실에 화가 났으리라.

나도 비슷한 맥락으로 화가 나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째려봤다.

사실 불만이 있으면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말하면 되는걸 사람이 이렇게 째째해지나 싶었다.

초기 임산부는 티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배려받지 못하고,

중기 임산부는 애매하다고 해서 배려받지 못하고..

결국 아기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한 두달 전이 되어야 그 때 잠시 받을 수 있으려나 싶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나를 아예 발견하지 못한척 하려는지 눈길조차 안주던데, 그 때도 이럴까..?

기차를 기다리는 곳에 왔다.

멀리서 걸어오는 나를 보고 누군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기차 기다리면서 힘드니 자리에 앉으라고 그러나?!!?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 가방을 놔두고(자리를 맡았다) 다른 곳으로 갔다.

아.......


세사람이 앉는 자리에 한 사람이 가운데에 앉아서 옆에 가방을 올려두어 아무도 못 앉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나도 그 사람이 남긴 의자의 끝에 남편과 같이 걸터앉았는데, 엉덩이가 많이 아팠다.

의자 하나가 한 사람의 영역이라면, 나는 그 부분의 1/4만 끝에 걸쳐서 간신히 쉴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의자 반개의 부분을 남편과 나, 두 사람이 나눠 앉던 뭐던, 가방의 주인은 아무 상관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만 하다가 나중에는 졸았다.

그 사람이 졸던 그 타이밍에는 그 사람이 올려둔 가방이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한 곳에 목발을 짚는 사람이 나타났던 때였다.

가방을 그렇게 여기저기 올려두고 진정 사람이 앉을 자리는 있던지 말던지 상관하지 않던 그 사람. 핸드폰을 하다가, 혹은 졸다가 못 봤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하기에는, 기차가 도착하자마자 너무나도 기가막히게 잘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정차시간은 단 2분여, 그 사람은 기차가 오자마자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고 있던 것 처럼 잘 일어났고 그제서야 많은 사람들이 바라던 의자는 공석이 되었다.

자기의 가방이 많은 사람을 앉게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를 그렇게 바래서 투덜거리기도하고 눈총도 보냈는데,

그 때는 아무 눈치도 채지 못하다가

기차가 오니 기가막히게 번뜩 일어나던 그 모습이 꽤 충격적이었다.

그 사람은 외부 자극에 100%반응이 없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기차에는 신기하게도 예민하게 벌떡 일어서는 것이 믿기지 않앟다.

이기적인 사람이었던걸까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었을까

아니면 그것은 민폐가 아니라고 생각을 했을까.

어찌되었던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괘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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